그림 백향란
개미
김소월
진달래꽃이 피고
바람은 버들가지에서 울 때
이러한 날 하루도
개미는,
허리 가는 개미는
골몰하게도 부지런히 집을 지어라.
봄이 오면 날이 좋아지지요. 꽃도 피고요, 버들개지 눈도 뜨고요, 봄바람도 살랑살랑 불고요, 처녀들 마음마저 싱숭생숭하고요. 아무리 일이 급해도 이런 날은 놀아야지요. 좋은 옷 차려입고 산보를 하며 꽃구경을 하고, 싸가지고 간 맛있는 밥도 먹고 그래야지요. 아빠는 노래를 부르고, 아이들은 휘파람을 불고. 그러다가는 풀밭을 뒹굴며 놀다가 집에 들어오면 기분이 좋아지지요. 그래야 하건만 일만 아는 아버지는 그런 거 아랑곳하지 않고 밭에 나가 일할 생각만 합니다.
“아버지, 일 내일 하고 우리 놀러가요.”
그렇게 떼를 쓰면 아버지는 그러지요.
“옛 어른들 말에 일은 당겨하고 노는 거는 미루라 했다.”
아버지는 그 말을 어길까봐 겁이 난 사람처럼 일을 하러 갑니다. 누가 일 그만 하라시면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뭔 일이든지 다 때가 있지. 때를 놓치면 농사 망치지.”
그러시지요. 하긴 그렇지요. 감자씨 넣을 때 감자씨 넣고, 강낭콩씨 넣을 때 넣지 않으면 일년내내 농사가 그만큼 늦어집니다. 그렇게 일만 하시며 들에서 살아 아버지 얼굴은 씻어도 씻어도 새까맣고, 아버지 손은 로션을 발라도 발라도 거치릅니다. 개미를 닮았지요.(글 권영상 2013년 3월 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