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루묵에 대한 추억
권영상
지난 12월 18일이다.
신춘문예 심사가 있어 춘천 강원일보사에 들러 일을 보고, 길 건너 파도회집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여러 차례 들렀지만 음식점 가운데에 연탄화덕이 있는 소박하고 운치 있는 집이다. 가벼이 먹는 음식 중에 파전이 나왔고, 뒤이어 동태찜이 나왔다. 눈을 헤치고 캐왔다는 더덕구이도 나왔다. 음식이 끝나고 이제는 수저를 놓을 때였다.
“겨울에 오셨으니 이거는 드시고 가셔야지요.”
주인이 들여오는 걸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도루묵이었다. 며칠 전 뉴스에 나온 그 도루묵이었다. 속초에서 차로 방금 날라온 거랬다. 익힌 도루묵을 앞앞이 한 대접씩 놓아주었다. 연말이 다가오는 12월, 영하의 한겨울밤, 온돌방 전깃불 아래에 놓인 밥상. 그런 시각, 그런 자리에서 도루묵을 먹는다는 것. 도루묵은 그런 분위기에 먹는 것이 제격이고 그래서 겨울이 제철이다. 도루묵은 한겨울 주로 동해에서 잡힌다. 고향이 강릉이고 보니 도루묵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 시절이다.
눈이 내리고 파도가 거센 날이면 해안가에 사는 친구들과 함께 바다를 따라 집으로 갔다. 파도 끝에 도루묵 알들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걸 주워 그냥 깨물어도 맛이 있었다. 이빨 끝에서 알이 터지면 짭쪼롬한 바닷내 끝에 비빗한 맛이 있었다. 간식이라고 없던 6,25둥이들에게 도루묵 알은 흥미있는 먹을거리였다.
“이거 정말 고향 맛입니다.”
나는 도루묵 대접 앞에 바짝 다가앉았다. 불룩하도록 알을 가진 도루묵들이 한 대접에 대여섯 마리씩 들어있었다. 나는 숟가락으로 알을 들어올렸다. 알을 감싸고 있는 점액이 누에실처럼 달려 올라온다. 입안에 넣는다. 처음엔 미끈거리지만 이내 알맛이 돈다. 도루묵은 알에 독특한 맛이 있다. 그 탓에 수컷보다는 암컷도루묵이 인기있다. 꼬득꼬득 그 옛날의 소년처럼 알을 씹는다. 비린 맛 하나 없이 고소하다.
알을 다 먹고 나면 살을 발린다. 워낙 작은 생선이라 알을 빼고나면 살이랄 것도 없다. 그렇지만 살맛을 보면 이게 또 흥미롭다. 무엇보다 맛이 가볍고 얕다. 혀끝에서 고소함이 살짝 느껴지다 이내 사라진다. 음미할 여지가 없다. 비린 맛 하나 없이 담백하고 깨끗하다. 나는 땀을 흘리며 두루묵 한 대접을 맛있게 다 먹었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동서울행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아침에 도루묵 이야기를 했더니 퇴근 길에 아내가 슈퍼에 났더라며 도루묵을 사왔다. 나는 군침을 흘리며 춘천에서 먹던 도루묵을 생각했다.
동해안, 특히 고성 속초 거진 양양 주문진 강릉 삼척에 줄을 대고 사는 이들치고 도루묵 맛을 모르는 이는 없다. 특별히 비싼 생선도 아니고 고급스러운 녀석도 아니다. 아니, 특별히 고급스런 맛을 가진 생선도 아니다. 가장 서민적이고, 없는 반찬 대신 짭짤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난한 이들의 소박한 생선이다. 그것도 한 마리씩 앞앞이 구워놓고 먹는 게 아니라 여럿이 떠먹기 좋도록 만든 졸임이다. 무를 뭉턱뭉턱 썰어 냄비에 깔고, 그 위에 도루묵을 얹는다. 양념이라곤 고춧가루와 파를 썰어 얹는 게 전부다. 그렇게 국물을 만들어 졸이면 먹을 수 있는게 도무룩 졸임이다. 도루묵 맛도 맛이지만 도루묵 맛이 은근하게 밴 무맛을 또한 도루묵 졸임에서 빼놓을 수 없다.
나는 아내가 솜씨있게 졸여내온 도루묵 냄비의 뚜껑을 열었다.
한 무덕 김이 물씬 오른 사이로 숟가락을 들었다. 도루묵은 남보기에 좀 그렇긴 하지만 젓가락을 쓰기보다 숟가락을 쓰는 게 좋다. 알도 숟가락으로 떼어내 먹는 게 좋고, 연한 살도 숟가락으로 슬슬슬 들추어 먹는게 좋다. 선조 임금님은 왜 의주에서 먹던 도루묵을 궁궐에 돌아와 맛없다며 도루 물린지 모르겠다. 아내가 만들어온 도루묵 졸임은 여전히 춘천에서 먹던 맛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다음 날, 춘천에서 먹던 도루묵 이야기를 고향 친구에게 했다.
그 친구의 도루묵 사랑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도루묵 철에 도루묵을 안 먹으면 음식맛을 잃는단다. 그래 고향에 전화를 걸어 택배를 부탁하거나, 아니면 도루묵국을 먹으러 일부러 주말마다 내려간다는 거다.
이 무렵에 나오는 잊을 수 없는 생선 중에 양미리가 있다.
마음을 먹고 저녁을 먹은 뒤 가까운 동네 슈퍼에 갔다. 겨울이라 그런지 이 먼 서울까지 양미리가 올라왔다. 영동지방 사람이라면 이 겨울 누구나 못 잊는 생선이 이 양미리다. 볼펜만한 작은 생물이지만 한겨울 주머니가 가난했던 시절 포장마차에서 소주 안주로 대접을 받던 게 양미리다. 양미리도 이 한겨울이 산란시기다. 어묵국물이 끓는 포장마차에 둘러앉아 희미한 불빛 아래 소주 한 병에 양미리 대여섯 마리를 구워 먹는 맛이란! 청년시절 방황의
아픔을 겪어보지 못한 이들이라면 이 값싼 안주를 씹는 맛을 알지 못한다.
나는 슈퍼에서 사온 양미리 한 두름을 예전 아버지가 그러셨듯 비닐끈으로 엮었다. 그러고는 베란다에 내다 걸었다. 한 사나흘 지나면 물기가 사라지고 뽀독하게 마를 거다. 너무 마르면 졸여도 이가 아프고 절은내가 난다.
베란다 화분에서 크는 행운목에 엮은 양미리를 걸어놓고 창밖을 내다본다. 밤이 컴컴하다. 이 다음에 눈 내리고 좀 더 춥거든 그걸 구워 소주 안주로 한 잔 할 참이다. 30여 년 전, 아내와 강릉의 용강동 시장골목 포장마차에서 먹던 청년 시절의 겨울을 추억하고 싶다. 얼른 눈이라도 한번 실하게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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