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하늘은 가지마다 붕대를 감는다

권영상 2012. 12. 20. 08:38

 

하늘은 가지마다 붕대를 감는다

권영상

 

 

 

 

어제 기상 예보에 오늘 정오부터 눈이 내린댔다. 고향에 사시는 사촌 형님의 자녀 혼사가 수원에서 있다. 아침을 들고는 부랴부랴 수원으로 향했다. 예보대로 정오가 지날 무렵부터 눈발이 날렸다. 금정역에서 4호선 전철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선로엔 적지않은 눈이 쌓이고 있었다. 하늘이 깃털뭉치같이 굵은 눈을 푹푹 떨어뜨렸다. 수원역에서 택시를 타고 다시 예식장으로 향했다. 좀 늦었다. 고향분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드렸지만 강릉으로 내려갈 사람들이나 집으로 돌아와야 할 나나 모두 푸지게 내리는 눈이 걱정이었다. 예식이 끝나자, 서둘러 헤어졌다. 나도 못다한 일을 집에 놓고 왔기에 부지런히 돌아섰다.

 

 

대문 앞에 서서 문을 열려고 가방 안의 열쇠를 찾았다. 없다. 문을 두드렸으나 아내도 없다. 혹시나 하고 가방을 다시 뒤졌다. 역시 없다. 열쇠를 챙겨 나오지 못한 모양이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가 하는 인사동 그림 전시회 오픈에 갔단다. 돌아오려면 두 시간은 걸리겠단다.

낭패다. 뭔 일을 좀 하려고 부지런히 돌아와 보면 이렇게 나를 가로막는 것이 있다. 열쇠를 챙겨넣지 못하는 내가 답답하기도 하다. 1층 현관에 다시 내려와 마당에 쌓이는 눈을 하염없이 본다. 마땅히 갈 곳이 없다.

 

 

‘그럼, 산에나 갔다오자.’

경비실에 가방을 맡기고 아파트 뒷문을 나섰다. 눈은 벌써 발목에 채일만큼 쌓였다. 산으로 가는 방향의 느티나무길로 들어섰다. 잘 조림된 느티나무 가지마다 소복소복 눈에 덮혔다. 마치 하늘이 나뭇가지마다 찬찬히 붕대를 감아놓은 것 같다.

‘그래, 붕대를 감고 있구나.’

그간 나무들은 자신들의 가장 소중한 몸의 일부인 잎들을 다 버렸다. 잎은 나무들의 꿈을 펴는 날개였으며, 이상이었으며, 언어였다. 그런 아름다운 것들을 버렸으니 나무들의 상처가 얼마나 클까. 상실의 슬픔을 겪어본 사람은 그걸 알겠다. 상실한 자의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그 상처가 얼마나 깊은 자국을 내며, 또 얼마나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지를.

 

 

 

하늘은 나무들의 그런 고통을 외면하지 못한다. 그 때문에 겨울 중에서도 좋은 날을 받아 그 상처에 붕대를 감는다. 한 해 동안 부지런히 일 한 나무든 아니든, 마음의 그늘을 가진 나무든 아니든, 지친 나그네의 땀을 식혀준 나무든 아니든 하늘은 굳이 나누지 않는다. 나무라는 이름으로 이 땅에 살고 있는 한 그가 어떤 나무로 어떻게 살았든 가지마다 하얀 붕대를 감아준다.

그럴 때의 나무들 마음은 얼마나 좋을까. 그런 깨끗하고 순결한 하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의 나무의 심정은 얼마나 황홀할까. 그런 하늘의 총애가 있기에 나무는 겨울이 추워도 불평하지 않는다. 나무들만인가? 아니다. 한 해를 사느라 밟히고 지친 맨땅이며, 마른 풀이며, 땅거죽에 떨어진 마른 풀씨 한 톨까지 찾아내어 하늘은 그들 몸에도 칭칭 붕대를 감아준다.

 

 

소복소복 쌓이는 눈길로 자전거가 지나갔다. 눈 위에 자전거 바퀴 자국이 있다. 나보다 먼저 이 길을 간 누가 있다. 자전거의 주인과 태연히 이 길을 간 바퀴 자국 끝에 남부순환로가 나온다. 나는 이쪽 인도에 서서 우면산을 건너다본다. 눈 속에서도 우면산의 수목띠가 완연하다. 팥배나무 군락과 은은하게 붉은 오리나무 군락, 아카시아와 참나무 띠가 뚜렷하다. 눈을 맞고 있는 야산이어도 산에는 수목의 질서가 있다. 그런 단순하고 일목요연한 질서 때문에 먼데서 산을 보면 산은 지엄하다.

 

그러나 그런 산도 그 안에 발을 딛고 들어서 보면 아픔이 많다. 여름날의 태풍에 꺾이고 뿌리째 뽑혀난 나무들,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해 병약한 몸으로 서 있는 나무들도 있다. 참나무숲에서 쫓겨나는 핼쓱한 소나무가 있고, 비탈에 선 늙은 산벚나무도 있다. 산에도 세속의 세상처럼 생로병사가 있다. 햇빛을 더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처절한 경쟁이 있다. 하늘은 그들의 상처까지 다 기억하여 두었다가 골고루 그 아픔을 쓰다듬는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지난 세월을 살아오느라 눈물 흘렸던 우리들의 상처가 생각난다. 우리들이라고 나무와 별다른 세상을 산 게 아니다.

나도 나무처럼 산길을 오르며 마음껏 하늘이 보듬어주는 손길을 느낀다. 머리 위에, 어깨 위에, 손등에 내리는 이 눈이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눈을 맞는 순간 내 안에 있던 상처들이 녹아내리는 듯 하다. 그 순백의 빛이 지어내는 치유의 힘을 본다. 그런 때문일까. 눈 속을 걸어도 도무지 힘들지 않다. 새 힘을 자꾸 내려받는 것 같다.

이때를 느끼라고, 오늘 내 가방엔 열쇠가 없었다.

 

 

소망탑까지 오른 후에야 다시 산을 내려온다. 내려오며 생각해 보니 오늘 혼인을 한, 내게 조카뻘 되는 신랑이 떠오른다. 어쩌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다. 그런 까닭에 어머니 손에서 큰아들로 조신조신 컸다. 아버지를 닮아 점잔한 모습이지만 그런 그에게도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상처가 마음 깊은 곳에 얼룩져 있겠다. 어머니 곁에, 아버지 자리를 비워놓고 혼례를 하느라 속으로 눈물을 흘렸을지 모른다. 오늘 눈은 그를 위해 내렸을 것 같다. 상처있는 그의 마음을, 따뜻이 붕대를 감듯 하늘이 어루만져 주기를 기원해 본다.

집에 돌아오니 그제야 아내가 와 있다. 인사동에서 사왔다는 보성차를 내놓는다. 그걸 한잔 마신다. 찻잔에 푸짐히 내리는 겨울눈이 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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