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뜰의 모란
권영상
3월 29일(화)
12시 35분. 5층 식당에 올라가 점심을 먹고 내려오는 길에 고등학교 뒤뜰로 갔다. 고등학교는 중학교와 한 울타리 안에 있다. 이 시간이면 중학교는 점심시간이지만 고등학교는 5교시 수업 중이다. 그러니 뒤뜰은 자연히 조용할 수 밖에 없다.
뒤뜰엔 짐작하던 대로 진달래가 폈다. 어제만 해도 강원도 산간엔 눈이 내렸다. 그런데도 학교 뒤뜰은 다르다. 학교가 북향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뒤뜰은 자연히 남향이다. 학교가 도심에 있어 뒤뜰이 좁다. 좁다고 다 나쁜 건 아니다. 내 마음 안에 깃들어 있는 고향의 뒤란 같아 아늑하다.
뒤뜰엔 꽃나무들이 많다. 라일락이 네 그루 있는데 꽃눈이 통통하게 불었다. 목련도 꽃부리를 잔득 빼물었다. 그러나 피려면 아직 이르다. 담장 가에 선 늙은 살구나무도, 벚나무도 가지 끝끝이 붉기만 하다. 감나무 한 그루와 사과나무는 한밤중이다. 그들 깊은 잠을 깨울 수 없어 이쯤에 서서 진달래꽃을 본다.
4층 교실에서 수업하는 소리가 진달래꽃 속에서 울려나온다. 콘스탄티노폴이며, 동로마며 서로마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둔탁한 남자 선생님 목소리다. 세계사 수업인가 보다. 진달래꽃이 오후의 투명한 햇빛에 속이 다 들여다 보인다. 사람으로 말하면 실핏줄 같기도 하고 명주실 같은 맥이 투명하게 보인다. 저쪽 높은 담장 위에서 참새 예닐곱 마리가 조약돌처럼 후두두 뛰어내려와 땅바닥에 앉는다.
풍요한 여인처럼 작년에 보았던 모란이 생각난다.
3월 31일(목)
아직 춥다. 목 폴라에 겨울옷이다. 그러고도 이 뒤뜰에 꽃이 부풀기를 바란다. 가만히 뒤뜰로 들어서는데 저쯤 벚나무 밑에서 아이들이 소란스럽다. 가만히 보니 어른 두어 길 되는 벚나무 가지를 향해 서로들 신발주머니를 던져 올린다.
나는 아이들 곁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뭐가 걸렸니?”
“선생님이 내려주세요.”
아이들이 나를 돌아다 보며 달라붙는다.
사물함 열쇠가 가지에 걸렸단다. 누가 사물함 열쇠를 가지고 까불대다가 거기에 던져 올린 모양이다.
“결자해지란 말이 있다.”
그러고 나는 물러섰다.
“결자해지가 뭔 말이에요?”
“곰곰이 생각해 보렴.”
그러고 그들 곁을 떠났다. 해가 진다는 뜻? 아니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는 뜻인가봐. 애들이 등 뒤에서 그 낯선 말을 가지고 분분해 한다.
나는 슬슬 걸어 화단 쪽으로 걸었다.
이틀 전에 보았던 진달래가 활짝 폈다. 상사화 두 포기는 내가 모르는 사이 30센티미터쯤 쑥 몸을 키워올렸다. 술 마시는 걸 보면 술이 생각나듯 꽃 피는 걸 보면 모란 생각이 또 난다. 모란에 대한 기억이 강하다. 모란을 못 잊겠어서 내 걸음이 자꾸 뒤뜰을 향하는가 보다. 모란 꽃줄기가 한 7센티미터쯤 올라왔다. 손가락을 대어보니 가운뎃손가락 보다 훨씬 길게 빼올렸다. 실궂하다. 꽃 대궁이가 실궂해야 꽃이 크다.
이쪽에선 또 한 패의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벤치에 앉아 조잘댄다. 금방 점심을 먹었는데 또 아이스크림이다. 식후에 그걸 먹는 재미가 그들에게 또 있겠다.
나는 그 중 한 녀석을 데리고 다니며 이거는 향나무, 이거는 사철나무, 이거는 보리수나무, 이거는 메타세쿼이어, 이거는 불두화, 이거는 팔손이, 이거는 벚나무, 이거는 꽃살구나무 하며 뒤뜰 나무이름을 일러주었다.
올 때에 보니 벚나무 밑이 조용하다.
나무에 걸린 열쇠를 내린 모양이다. 결자해지의 뜻은 어떻게 풀었는지 모르겠다.
4월 5일(화)
음력 삼월 삼짇날, 청명이다. 삼짇날이면 제비가 온다. 예전 고향 집엔 마당을 가로지르는 높고 긴 빨랫줄이 있었다. 그때가 삼짇날인지는 몰라도 그 빨랫줄엔 이르게 제비들이 날아와 울어댔다.
찌찌이배찌찌이배.......
웬만한 새들은 목을 길게 빼고 배족배족 우는데 제비는 똑바르게 앉아 단정한 자세로 요란하게 운다. 청명의 날씨처럼 우는 소리가 맑았다. 그 소리가 너무도 똑똑해 책을 읽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럴 무렵 빨랫줄 아래엔 볍씨독이 있었다. 두어 독 가득히 볍씨를 담그어 두었다가 할끔할끔 볍씨눈이 나오면 못자리 모판에 내다 흩뿌렸다.
그때가 40 여년 전의 일이다.
뒤뜰 목련이 기어이 꽃을 피웠다. 붉은 벽돌 건물을 배경으로 피어난 목련꽃이 눈부시다. 나무 밑에 서서 꽃을 쳐다본다. 목련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쳐다보는 게 좋다. 파란 하늘과 흰 꽃의 순결한 어울림. 꽃잎이 무두질을 잘한 가죽같이 두툼해서 품위있다. 턱이 아프도록 쳐다보는데 그쪽 3층 교실에서 종이 한 장이 날아온다. 누군가 교실 바깥 세상이 그리운 모양이다. 종이가 목련나무 가지 사이로 휘청휘청 내려온다. 그게 무슨 신성한 하늘의 메시지인양 화단에 들어가 줍는다.
종이에 쓰여진 글씨를 본다.
‘어떤 갠 날, 사랑.’
종이가 날아온 교실을 목련꽃 사이로 올려다 본다. 이걸 써서 창밖으로 날려보낸 녀석은 누구일까. 어떤 날 좋은 날, 여자 친구랑 함께 걸었던 일이 지금 떠오르는 모양이다. 그는 그게 사랑이라 생각하는 걸까. 아님 창밖에 피고 있는 목련을 보니 헤어진 여친이 생각난다는 건가. 징그러운 공부에 대한 도전이거나 바깥 봄날에 대한 그리움인가. 얼마 전 아이들에게 던져 주었던 ‘결자해지’가 생각난다. 그 아이들처럼 나도 헛다리를 짚는 건지 모르겠다.
모란 곁으로 다가갔다. 꽃줄기 끝에 몽우리가 통통하다. 오버코트의 소매 단추만 하다.
오는 길에 나무 벤치에 앉았다.
내 앞으로 한 떼의 비둘기들이 날아와 뭔가를 줍는다. 내 눈에 뵈이지 않는 것들을 그들은 분명 보는 모양이다. 그들을 바라보는데 비둘기 한 마리의 발에 뭔가 붙어다니는 게 있다. 그물 조각이다. 그물 조각에 두 발이 묶여있다. 반 걸음만 내디뎌도 고꾸라진다. 다른 비둘기들에 비하면 그의 걸음이 너무 답답하고 안쓰럽다. 다른 비들기들도 자세히 보니 발이 정상인 녀석이 없다. 한 쪽 발가락이 없거나 아예 발이 잘려나간 녀석도 있다. 독성이 강한 물인 줄 모르고 길거리에 고인 물에 발을 디디고 먹이를 찾다가 사고를 당한 모양이다. 도회에서 목숨을 부지해 내는 일이 비둘기나 사람이나 다를 게 없다.
4월 11일(월)
월요일. 2교시가 비었다. 차를 한잔 끓여 마시고는 마치 무슨 볼일이나 있는 것처럼 뒤뜰로 갔다. 일요일에 마신 술기운이 아직 머리에 남아있다.
나오기 잘 했다. 뒤뜰이 온통 꽃천지다. 벚꽃이 폈는데 펴도 이렇게 황홀히 필 수 없다. 늙은 벚나무인데 하늘을 가릴 만큼 꽃이 그득하다. 마치 잘 생긴 계집이 맨몸뚱이로 거기 꽃나무 위에 누운 것처럼 곱고, 화려하고, 이쁘고, 향기롭고 놀랍다. 벚꽃만이 아니다. 저쪽 끝 쪽에 있는 꽃살구나무엔 꽃두서니빛 꽃이 눈이 매울 정도로 요란히 폈다. 예전 고향 어머니가 무명천에 물들이던 그 꼭두서니빛이다.
진달래꽃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목련은 한두 잎 지긴 했지만 아직 그 자태가 훌륭하다. 넘실거리는 꽃들을 바라보려니 눈이 어리다. 여기 뒤뜰에 한참을 더 서 있다가는 정신이 흐트러지고 머리가 흔들릴 것 같다.
얼른 돌아서려니, 두고 가는 꽃이 또 아쉽다. 저처럼 꽃 피어 좋은 세상을 등 뒤에 두고 가는 일은 여인을 놓고 돌아서는 것만치 서럽다. 다시 돌아서서 천상의 세상을 올려다 보듯 벚꽃을 본다. 고요히 마음을 진정시킨다. 벚꽃이 발산하는 찬 기운을 내려 마신다. 맑고 서늘한, 눈 같이 차가운 꽃기운이 내 속으로 시리게 들어와 나를 움켜쥐고 있던 혼탁함을 몰아낸다.
모란을 두고 그냥 갈 수 없다. 저쪽 끄트머리 화단에 앉은 모란을 깨끗한 마음으로 찾아가 들르다. 꽃몽오리가 손톱끝 만치 터졌다. 그 터진 사이로 자줏빛 한 조각이 이쪽을 내다본다. 한 일 주일은 더 있어야 필 것 같다.
4월 22일(금)
내일이면 노는 토요일이다.
그때에 모란이 피면 그 고운 첫 자태를 놓칠 것 같아 출근을 하자마자 책상 위에 메모를 해 두었다.
‘시간을 내어 모란을 꼭 보고 옵시다.’
나는 언젠가부터 내게 하는 글에 존칭을 쓴다. ‘담배 피지 말아요’, ‘오늘 모임 있다오’, ‘오후엔 박용래 시 읽어요’.....
나는 오랫동안 ‘원고 보낼 것’, ‘퇴근할 때 우체국에 들러 등기 부칠 것’ 이런 투의 메모를 써왔다. 그러던 것이 어느 날부터 그 방식을 바꾸었다. 왜 남들에겐 꼭꼭 존대말을 쓰면서 나는 내게 유독 인색하나 싶었다.
6교시 수업이 끝나자, 메모가 말해주는 대로 뒤뜰에 나갔다. 청소도 다 끝난 뒤라 학교가 물밑처럼 조용하다. 수돗가를 지나면 정면에 매점이 있다. 매점에 아직 몇 아이가 남아 뭔가를 사 먹고 있다. 그 중 한 아이가 나를 보고 끄떡 아는 체를 한다. 나도 오냐, 답례를 하며 왼쪽으로 꺾어돈다. 목공실이 나온다. 목공실 끝에 고등학교 교사와 남쪽 담벼락 사이에 뒤뜰이 있다.
열하루 만에 왔다. 그 좋던 벚꽃이 다 졌다. 목련도 졌다. 아무리 아름다운 것도 다 한 때를 넘기지 못한다. 발 아래 떨어진 꽃잎과 붉은 꽃받침들이 어수선히 떨어져 있다.
어디서 남은 꽃잎이 한 장 떨어진다.
국어 교과서에 실린 이형기 시인의 ‘낙화’가 떠오른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지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을 꽃답게 죽는다.
이 시를 외라고 숙제를 내주었다.
꽤 많은 아이들이 외었다. 살면서 이별하고 작별해야할 때가 있을 때 그때 이 시를 떠올려 보라고. 살아보아 알지만 살아가는데 있어 작별할 때에 작별하는 일은 만날 때에 만나는 일만큼 결단이 필요하다. 16살 중학교 3학년 아이들에겐 어려운 인생의 노래다. 그래도 살다가 맞는 어느 봄날, 벚꽃이 ‘하롱하롱’ 질 때 문득 오늘 외운 이 시가 떠오른다면 그만큼 더 행복할 수 있겠다.
꽃살구꽃은 화기가 길다. 꼭두서니 물들인 미농지로 꽃을 일구어 매단 것 같다. 암만 색깔이 유난해 이쁘다 해도 은은한 토종 살구꽃빛만 못하다. 그 생각은 농경시대를 살아온 나의 편견인가.
모란을 다시 찾았다. 한 일주일이면 필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 이르다. 대신 꽃몽오리가 잔뜩 불어있다. 꽃몽오리 사이로 내비친 자주빛만으로도 모란은 기품있다. 역시 모란은 꽃 중의 꽃이다. 통통한 꽃몽오리에 귀를 가져다 대어 본다. 그 안에서 넓고 우아한 꽃잎을 만드느라 가위로 천을 재단하고, 재봉틀로 달달달 박음질 하는 소리가 들려나오는 듯 하다. 아니, 여인들의 천을 다림질 하며 주고 받는 이야기며 웃음소리까지도.
귀를 뗀다.
일 주일을 기다려도 이 정도라면, 아무래도 두어 주일을 기다려야 될 것 같다. 꽃을 잉태하는 시간이 길수록 꽃이 크고 아름답겠다. 이러다가 그만 무슨 일이 생겨 영영 모란을 놓치고 말까 조바심이 난다. 그 꽃을 볼 때가 언제일까.
“때를 놓치지 않으마.”
이삼 일에 한 번씩은 보러 와야할 것 같다.
5월 2일(월)
음력으로 삼월 그믐이다.
모란을 보려고 뒤뜰을 기웃거린지 35일이 지났다.
아침에 출근을 하면 내 방에 들어가 컴퓨터를 켠다. 그러고는 물병을 들고 교무실에 가 정수기 물을 받고, 어제 마신 컵 두 개를 깨끗이 씻어 들고 온다.
그 물로 차를 우려 마신다. 담임이 있을 땐 이런 시간도 없었다. 아침 자율학습을 하러 허겁지겁 교실로 올라갔다. 하루가 시작되기 무섭게 수업과 청소지도와 방과후 지도를 마치고 허겁지겁 퇴근을 해왔다.
지난 해부터 담임을 면제 받았다. 그제야 하루 일상을 사람답게, 내 목숨에 대한 품위를 생각하며 하루를 연다. 밥벌이의 고단함이 나를 수십 년 동안 짓눌렀다. 차를 마시면서 인터넷 포털에 들어가 ‘모란’을 쳤다.
‘화중왕’이라는 정보가 뜬다.
내가 열대여섯 살에 읽은 문일평이라는 분의 <화훼만평>이 떠오른다. 목단을 평한 그의 글에 그런 말이 있었다. ‘화중왕’. 설총의 ‘화왕계’에서 인용한 말로 기억된다. 꽃 중의 으뜸이라는.
모란을 그린 모란도를 골라 연다. 격조있는 꽃이다. 꽃 중에 곱지 않은 꽃이 있을까만 마음이 풍요해진다. 생명에 대한 기품과 오롯한 권력을 느끼게 한다.
비는 2교시를 틈타 연인의 집을 방문하듯 뒤뜰을 찾았다.
내 눈은 벌써 거기 있는 수많은 나무들 너머 모란이 있는 데를 넘겨다 봤다. 피었다. 저쪽 아직 무덕무덕 심은 철쭉보다 대여섯 뼘을 높게 목을 빼고 꽃이 피어 있다. 확연히 그의 모습은 남다르게 우뚝, 하다.
치마폭을 우아하게 두른 서른 고개를 넘긴 풍만한 여인이다. 인생을 알만한 나이다. 땅의 이치와 세상의 이치를 터득한 그윽함이 그에게 있다. 혜원의 ‘단오풍정’에 나오는 그네 뛰는 여인의 회장저고리빛처럼 샛노란 수술과 고고한 자줏빛 꽃잎, 그리고 배경이 되어주는 연녹색 잎사귀들. 그 셋의 색상이 서로 어울려 모란의 품격을 살린다.
가까이서 마주 해도 좋고, 서너 발짝 뒤로 물러서서 보아도 좋다. 아주 멀찌기 떨어져서 보면 그 도도한 기품에 제압당한다.
학교의 뒤뜰에 모란은 맞지 않다.
나이로 치면 청춘의 고개를 넘어선 흐벅한 여인의 모습이며, 그 자태에 아이들을 제압할만한 여성적 위험이 있다.
짙붉은 바위 끝에
손에 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받자오리다.
3층인가 4층에서 여자 선생님 목소리가 들려온다.
<헌화가> 속의 철쭉 또한 매우 위태로운 절벽 위에 머물며 매우 위태로운 사랑을 요구하는 꽃이다. 꽃 중에는 아주 위험한 향기와 성품으로 제 자태를 세우는 꽃이 있다.
5월 11일 수요일
점심을 먹고 오는 길에 뒤뜰을 잠깐 들렀다.
이미 모란은 지고 말았지만 그래도 모란에 대한 여운이 있다.
이제 초록물이 들어가는 뒤뜰을 걷는데 화단에 화분 하나가 뒹군다. 교실에서 실려나온 버려진 화분 같다. 환경미화를 하겠다며 모은 화분들이 돌보는 손길이 없어 벌써 죽어 나온다. 화분도 아깝지만 그 안에서 말라죽는 난이며 철쭉의 목숨이 가엽다. 유월 볕이라 볕이 야단스럽다. 버려진 화분의 꽃들을 외면하기가 뭣하다. 저들도 필요할 땐 저만한 목숨 값으로 제 자리에 놓였을 게 분명하다. 그런 생각을 하니 그냥 돌아설 수가 없다.
나는 쪼그리고 앉아 살려낼 만한 놈을 뒤졌다. 이파리 다 떨어지고 중둥이마저 꺾인 부켄베리아가 눈에 띈다. 언젠가 남인도 고야에서 본 그 부켄베리아다. 쓸만한 화분을 골라 젖은 기운이 도는 흙을 담는다. 그러고는 간신히 목숨이 붙어있는 그 녀석을 옮겨 심었다. 목숨이 붙어있다고 해봐야 죽은 뼈처럼 말라붙은 줄기가 전부다. 딱한 마음으로 흡족히 물을 주어서는 내 방에 데려다 놓았다.
나는 자식인 양 정해진 시간마다 그의 목마름을 달래준다. 함부로 물을 많이 주면 뿌리가 상한다. 물은 양면성이 있다. 이것이 부족하면 목숨을 잃지만 너무 풍족해도 글버딛고 사는 능력을 빼앗고 만다. 그런 까닭에 물을 줄 때면 화분 흙에 깊숙이 손가락을 찔러넣어 보고난 후에야 알맞추어 준다. 틈만 나면 나는 이 기척없이 사는 가난한 목숨을 살려보려고 애쓴다.
6월 20일 월요일 맑다
한 달 전에 들여다 놓은 부켄베리아가 살아난다.
푸른 빛의 기운이 답답할 만큼 느리고 감돈다. 살아나오기 어렵지 살면 부쩍부쩍 달라진다. 마른 가지 끝에 손톱만한 잎이 나왔다. 답답하게 기다리던 내게 있어 그 잎은 감동 그 자체다. 그것은 나의 감동이며 동시에 부켄베리아의 감동이다. 하루 한 움큼씩 건네는 물로부터 받는 감동. 나는 내 보잘 것 없는 손길에서 되살아나는 부켄베리아의 초록빛 감동에 놀란다. 가난한 목숨은 작은 도움에도 쉽게 감동한다.
내가 감동하는 것은 부켄베리아의 의지다. 버려졌을지언정 제 몸 속에 한 조각 목숨의 끈을 놓지 않던 의지. 마른 볕 아래서도 그는 초록빛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희미하게나마 그걸 붙들고 마른 볕과 온종일 싸워냈다.
요 며칠 동안 나는 근육통으로 고통받고 있다. 그게 파스 한 장 붙여 나을 게 아니었다.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주저앉을 만큼 괴롭다. 그런 중에도 참을 수 있는 건 내 곁에 부켄베리아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내 고통에 대면 몇 곱절 더 큰 죽음의 낭떠러지까지 경험하고 헐벗은 몰골로 돌아왔다.
그런 그가 창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초록잎을 흔든다. 살아 있는 것은 유연하고 부드럽다. 그게 신의 축복이다. 퇴근을 하면서 화분을 창밖에 내다 놓는다. 비와 별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주기 위해서다. 머지않아 필 그의 화려한 꽃을 벌써 보고 싶다.
11월 5일, 토요일 맑음
점심을 끝내고 내려오다 운동장을 내다본다. 운동장 가에 서 있는 10여 그루의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다. 노랗다 못해 황금빛이다.
이 무렵 메일을 보낼 때면 그 메일 안에 나는 이 불붙듯 익어가는 은행나무를 이야기한다. 가끔씩 편지를 하는 수녀님이나 전주의 스님, 그리고 글쟁이들에게도 저 눈부신 가을을 빠뜨릴 수 없다. 저런 아름다움이 내 인생에서 몇 번이나 있었을까, 그 생각이다. 나무는 해마다 황홀한 가을을 연출해 낸다. 그러나 나는 그걸 바라보기나 할 뿐 내 인생을 황홀하게 가꾸지 못한다.
뒤뜰로 나갔다.
아늑한 뒤란 뒷뜰이어도 가을의 손길에서 벗어날 수 없다. 벚나무며, 사과나무, 목련, 살구나무 등이 다들 잎을 떨구었다. 감나무만이 굵고 실한 감을 익혀놓고 있다. 천천히 걸으려니 3층 교실에서 기타소리가 들린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삼백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선생님이 기타를 치고, 아이들이 따라 부른다. 음악시간은 아닌 듯 하다. 점심을 먹고난 5교시니 식권증에 빠진 아이들의 정신을 일깨우려는 모양이다.
어느 학교나 다 그런가 보다. 30%의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잠을 잔단다. 공부를 많이 해서 그런 게 아니라, 공부를 포기한 아이들이 그만큼 된다는 이야기다. 이 아이들이 3년을 교실에서 자고 졸업장을 받는다. 이 30%의 아이들은 처음부터 실업계 고등학교로 갈 성적도 안 된다. 그러니 우리나라 현실로 보면 이 하위권 아이들이 갈 학교가 없다. 그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후기인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을 한다. 이들에게 있어 학교란 자신들의 인생에 있어 아무 도움이 안 된다.
나는 기타소리를 들으며 뒷길을 걷는다.
오래전 봄날, 내가 쫓아다니던 모란이 다시 생각난다. 생각에서 벗어나면 잊혀지고 마는게 일상이다. 그 동안 이 뒤뜰을 수없이 다녀갔지만 그 동안 나는 모란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건 모란에 대한 꾸준한 내 집념에도 문제가 있지만 그보다 더 강렬한 또 다른 나무들의 삶이 나의 시선을 잡았기 때문이다.
나무들 속에서 모란이 섰던 자리를 찾았다. 무성하게 커오르는 유월의 모습은 사라지고 성근 잎을 몇 잎 달고 있다. 초록빛이라곤 찾을 길 없는 잎들이 마른 가지 끝에 엉거주춤하게 매달려 있다. 누가 이걸 보고 모란꽃을 피우던 나무라고 하겠는가. 그렇다고 쓸쓸하기만 한 건 아니다. 모란에게도 찬란하던 ‘한 때’가 있었으니까. 교실에서 수업 대신 잠을 자고 있는 아이들에게도 언젠가는 ‘한 때’가 오기를 기원한다.
이제 뒤뜰 나무들의 생장활동은 끝이다. 벌써 대관령에 눈이 내린다는 예보를 들었다. 이곳도 겨울을 비껴갈 수 없다.
11월 25일 흐림
점심 시간이다.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며 한 녀석이 내 손을 이끈다. 국어 시간에 만나는 2학년 아이다. 우리 계발활동반이다. 내가 맡은 계발활동반은 배드민턴이다. 잠시라도 학교를 벗어나게 해주고 싶어 남산배트민턴장에서 만난다. 아이들은 버스나 전철을 타고 남산도서관 앞까지 와야 한다.
그래도 싫어하지 않는다. 나도 좋다. 남산배드민턴장은 남산분수대를 넘어 도보길로 한 2백여미터를 가면 있다. 그 길이 좋다. 서울의 사계를 만날 수 있다. 거기서 함께 운동을 하며 친해진 녀석이 효빈이다.
남산배드민턴장에서 내가 사주었던 음료의 빚을 갚는다는 거다. 나는 효빈이가 사준 음료를 들고 같이 뒤뜰을 걸었다. 여기 뒤뜰에 모란이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나는 모란 앞에 멈추었다.
“모란이 얼마나 멋있는지 저도 알아요.”
잎 다 떨어진 모란을 보고 실망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그랬다.
우리는 서로 따로이 본 모란에 대해 이야기 했다.
“이제 겨울이 오면 쓸쓸해지겠지. 여기도.”
내가 그랬다.
“선생님, 아니에요. 여기 팔손이 보세요. 꽃 폈잖아요.”
그가 몇 걸음 가더니 나를 불렀다.
나는 뒤뜰을 걸으면서 왜 팔손이를 못 보았을까.
싱싱하게 잎을 단 팔손이가 있었다. 잎이 싱싱하다 보니 연두빛의 보잘 것 없는 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저기 봐요. 저기 동백꽃요!”
효빈이가 또 다른 곳을 가리켰다.
석류나무 뒤에 동백나무가 있었다.
뒤뜰도 겨울을 맞고 생명활동을 끝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나의 사계절에 대한 고정관념이 나의 시야를 가로막은 것이다. 나는 내가 아는 것 너머의 것에 대해 무심하다.
“고맙다. 내가 못 보는 걸 보게 해주어서.”
“고마워하실 것까진 없어요.”
효빈이가 그 말을 하고 달아난다.
갑자기 뒤뜰과 나, 단 둘이 남는다.
이제 이 뒤뜰로 머지않아 눈이 내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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