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횡포

권영상 2012. 12. 25. 21:27

횡포

권영상

 

 

 

 

 

 

이발을 거의 마쳐갈 때다.

내 머리를 손봐주던 미장원, 그러니까 ‘헤어컬러’ 주인 얼굴에 느닷없이 긴장감이 돌았다. 아니나 다를까 작달막한 키의 다부진 50대 중반의 여자가 문을 열고 미장원에 들어섰다.

“어어, 어서 오오세요.”

헤어컬러 여자가 누굴 보고 하는 건지 마지못해 바싹 마른 인사를 했다. 작달막한 키의 여자가 대답도 없이 미장원 소파에 끙, 하고 몸을 내려놓았다. 내가 보기에도 머리를 하러 들어온 여자가 분명 아니었다. 거울에 비친 그녀가 다리를 꼬고 문 바깥을 내다보며 앉았다.

 

눈썹이 팽 돌아간 그녀가 몇 번이나 헛기침을 했다. 헤어컬러의 얼굴이 하얘졌다. 다른 때 같으면 이쯤에서 내 커트가 끝날 일인데 계속 한 손으로 머리칼을 쓸어모아 가위질이다. 전운이 감돈다는 말이 이런 분위기를 이르는 모양이다. 어서 오세요, 이후 냉랭한 침묵만 감돌았다. 둘 다 내 머리가 끝날 때를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나는 이 두 사람 사이의 문맥을 아내를 통해 대강 파악하고 있었다.

 

“가겟세 올려주기 싫으면 나가라는데 내 말 그렇게 못 알아들어요!”

결국 참지못한 사람은 작달막한 여자 쪽이었다. 헤어컬러가 들어있는 건물주다. 건물은 5층이다. 우리 아파트 후문에 있는 건물이다. 1층 두 칸은 세를 놓고 있다. 한 칸은 부동산, 나머지 한 칸이 헤어컬러다. 부동산도 문을 연 지 반 년이 못 돼 문을 닫고 있는 상태다. 숱한 사업체가 들어왔지만 두 달을 못 넘기고 문을 닫았다. 같은 골목이어도 100미터 위의 네거리엔 상권이 제법 있다. 그런데 이 건물만은 다르다. 부동산을 차려도, 사설학원을 차려도, 생수가게를 내고, 옷가게를 내도, 아니 세탁소를 내도 안 됐다. 장사가 되는 목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었다. 오직 지금의 이 헤어컬러만이 일 년을 넘기고 있었다. 그 덕분에 나도 여기에 와 간편하게 이발을 한다.

 

 

“이제 일 년 하고 두 달밖에 안 지났잖아요.”

헤어컬러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불만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이유를 내가 몇 번이나 얘기해야 알아 듣나요!”

건물주인 여자가 헤어컬러를 매섭게 꼬나봤다.

“보시다시피 손님도 많지 않은데 어떻게 세를 더 올려드릴 수 있나요. 사정이 좀 좋아지면 제가 굶는 한이 있어도 원하는 대로 해드리겠습니다.”

헤어컬러가 마치 쥐고 있는 가위에다 대고 말하듯이 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놀리는 거야! 대체 그 사정이란 게 언제 좋아지는데?”

건물주 여자가 홱 일어섰다.

“정 그러시면 아까 말씀드린 대로 마음대로 하세요.”

헤어컬러가 가위로 빗을 챙, 하고 때렸다.

 

 

그와 동시에 내 머리도 끝이 났다.

나는 슬그머니 일어났다. 헤어컬러를 따라 세면대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헤어컬러는 자전거여행을 즐겨하는 여자다. 커트를 하러 올 때면 자전거 여행 이야기를 가끔 했다. 강릉까지 자전거를 싣고 가 거기에서 묵호, 삼척 장호원 평해 포항까지, 때로는 서해안 길을 따라 부부가 자전거여행을 한다는 거다. 지금 이 가게도 사당동에서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헤어컬러 망하는 꼴을 내가 보여주지.”

주인여자가 헤어컬러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런 꼴은 차마 사내가 볼 일이 아니었다. 나는 찔끔 눈을 감았다. 건물주가 씩씩거리며 미장원을 나갔다. 갑자기 싸늘해졌다. 벌써 몇 달 전부터 저런다는 거다. 저러는 데는 무슨 속내가 있겠지, 하다가도 자신의 건물에 들어와 영업을 지속적으로 하는 미장원이 고맙기도 할 텐데, 모를 일이었다. 사람이 좀 꾄다 싶으면 가겟세를 올리지 않고 못 참는 성미인 모양이다. 나는 미장원 주인인 헤어컬러의 싹싹하고, 그러면서도 씩씩한 모습이 좋을 뿐이다.

 

 

그런 일이 있고 이틀 뒤였다.

헤어컬러 옆의 문 닫은 부동산의 집기들이 실려나가기 시작했다. 또 누가 이 어려운 시절에 괜히 사업밑천을 말아먹으러 오는 모양이었다. 다음 날, 퇴근할 때에 보니 부동산 집기가 빠져나간 자리에 새로운 집기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언뜻 보아 미장원 집기들이었다. 웬걸 다음 날 아침 출근을 하며 보니 ‘헤어다이아스’라는 간판이 올려져 있었다. 열린 출입문에 천으로 만든 입광고도 하나 세워져 있다. 나는 멈추어 서서 유심히 봤다. 이 미장원을 운영할 ‘헤어디자이너’에 대한 소개였다. 남자였다. 그것도 두 명이었다. 압구정동 어디에서 헤어숍을 운영했고, 이 분야에서 주는 어떤 상을 받았고, 지금 어느 대학에서 헤어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망하는 꼴을 내가 보여주지!”

그러던 건물주인 여자의 말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헤어컬러 옆에다 막말로 빡센 미장원을 끌어와 헤어컬러를 이 건물에서 내쫓겠다는 뜻 같았다. 그 방법으로 젊은 두 명의 잘 나가는 남자 헤어디자이너를 끌고온 셈이다.

‘그러나 그건 안 될 걸!’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출근길을 재촉했다.

 

아무리 그런 작전을 쓴다 해도 싹싹하고 건강한 헤어컬러 여주인을 내쫓지는 못할 거라고 믿었다. 사람이 수수해서 얼굴을 가리는 아내까지도 오랫동안 거기서 머리를 했다. 아내 말에 의하면 이웃분들도 다들 그녀를 좋아한다는 거다. 그것도 그거지만 누가 봐도 미장원이 있는 제 건물에 미장원을 내쫓자고 새로운 미장원을 끌어들인 건물주의 부도덕한 횡포를 곱게 볼 사람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한 닷새쯤 지났을까.

퇴근을 하며 오는 길에 보니, 헤어다이어스 앞에 화환이 잔뜩 서 있었다. 얼핏 가게 안을 들여다 보니 의자가 차도록 손님들이 앉아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퇴근길에 안을 들여다 보면 사람들이 찼다. 없던 사람들이 어디서 모여드는 걸까. 이쪽 헤어컬러 안을 들여다 보면 텅 비어 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나는 열려있는 헤어컬러 안으로 들어섰다.

의자에 앉아 손톱을 다듬던 헤어컬러가 나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힘센 사람 등쌀에 어디 힘 약한 사람 살아내겠어요.”

허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옆집 총각들이 철부진지, 아님 손님들만 믿었던 내가 철부진지......”

그 말 속엔 여러 의미가 들어 있는 것 같았다.

“힘 내세요. 지금은 저렇지만 다들 돌아올 겁니다.”

그러고 돌아나왔다.

 

 

정말 내 말처럼 다들 돌아올까? 

헤어컬러는 이 주일이 넘도록 버티다 결국엔 짐을 쌌다. 한길 건너 천주교 성당 쪽으로 이사를 갔다. 나는 거기까지 안 가지만 아내는 좀 멀어도 꼭 거기로 간다. 한번 맺은 정의를 저버리기 싫다는 거다. 퇴근을 하고 미장원에 가면 8시쯤에 머리가 끝난다. 밤길이 어두워 나는 머리를 마치고 오는 아내를 데리러 간다.

저쯤 불이 켜진 헤어컬러를 바라본다. 손님이 있어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