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서 좋은 내 짝꿍
신경림
내 짝꿍은 나와
피부 색깔이 다르다.
나는 그의 커다란 눈이 좋다.
내 짝꿍 엄마는 우리 엄마와
말소리가 다르다.
나는 그애 엄마 서투른 우리말이 좋다.
내 외가는 서울이지만
내 짝꿍 외가는 먼 베트남이다.
마당에서 남십자성이 보인다는
나는 그애 외가가 부럽다.
고기를 잘 잡는다는 그애 외삼촌이 부럽고
놓아기른다는 물소가 부럽다.
그애 이모는 우리 이모와
입은 옷이 다르다.
나는 그애 이모의 하얀 아오자이가 좋다.
고향집 동네에 베트남에서 시집 온 아줌마가 있지요. 어른들은 그 아줌마를 ‘월남 새댁’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릅니다. ‘깜언 아줌마’라 부릅니다. 아줌마 이름 뭐예요? 하고 물으면 ‘깜언’하고, 아줌마 고향이 어디에요? 하고 물어도 ‘깜언’했지요. 처음엔 우리 말을 잘 몰랐기 때문에 마냥 ‘깜언, 깜언’ 했지요. 그래서 ‘깜언 아줌마’가 됐습니다. ‘깜언’은 우리 말로 ‘감사합니다’란 뜻의 베트남 말입니다.
깜언 아줌마는 매우 부지런합니다. 깜언 아저씨의 소 일곱 마리와 과수원 일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아침이면 깜언 아저씨보다 먼저 일어나 복숭아 과수원에 가 과수원 일을 돌봅니다. 휘파람을 잘 부는데 우리 마을에서 휘파람을 부는 여자는 깜언 아줌마 밖에 없습니다. 휘파람소리가 들리면 어김없이 그곳엔 깜언 아줌마가 있습니다.
“아줌마,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하고 물으면 아줌마는 큰 소리로 대답하지요.
“또이 라 응어이 한꾸웍.”
요사이는 우리 말을 잘 알면서도 일부러 베트남 말로 대답합니다.
한국 사람이라는 거지요. 놓치지 않고 국경일엔 태극기를 답니다. (소년 2011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