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가 한 일
민현숙
메주를 쑤던 날
화덕에 큰솥을 걸고
할머니는 아궁이에
장작을 밀어 넣었어요.
불이 붙지 않아
한참 애를 먹던 할머니는
방에서 부채를 내왔어요.
난 그 때 처음 알았죠.
더위를 쫓던 부채가
꺼져 가는 불을
벌떡 일으켜 세운다는 걸.
메주를 쑤는 계절입니다. 메주는 메주의 원료인 콩 수확이 다 끝난 초겨울에 쑤는 게 제격입니다. 미안한 질문인데 혹시 메주로 무얼 만드는지 아시나요? 아신다고요? 아, 다행입니다. 고추장, 된장, 막장 등을 만듭니다. 장은 한번 담그면 여러 해 동안 먹기 때문에 대여섯 말씩, 한 가마씩 쑵니다. 그러기에 장작불로 큼직한 가마솥에다 쑤지요.
“엄마, 메주콩 좀 주세요.”
이제 아궁이에 막 불을 들였는데 벌써 메주콩을 내놓으라고 아이들이 성화입니다. 오래도록 푹 삶은 콩은 무르고 구수해서 맛있습니다.
“동네 한 바퀴 뛰고 오면 주지.”
엄마들은 그러며 아이들을 달래시지요.
“엄마, 동네 한 바퀴 뛰고 왔어요. 콩 주세요.”
그러면 엄마는 웃으며 손사래를 치시지요.
“열 바퀴, 열 바퀴 더 돌고 오면 주지.”
메주콩이 먹고 싶은 아이들은 엄마 말대로 또 동네 길을 달립니다.
요즘의 아이들도 그 옛날의 아이들처럼 메주콩이 먹고 싶어 동네 길을 뛰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소년 201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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