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
이혜영
날마다
조금, 조금씩
종탑을 기어오른다,
담쟁이가.
댕 댕 댕
하늘빛처럼 맑은 소리
‘나도 종을 치고 싶어.’
담쟁이는 쉬지 않고
기어오른다.
파랗게 솟은 종탑을 향해
뻘뻘뻘.
종을 치고 싶어서.
땡,땡,땡,땡,땡,땡......
어렸을 적, 아버지를 따라 읍내로 가는 도중이었지요.
난데없이 마을 종탑의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었습니다. 아버지도 나도 놀라 가던 길을 멈추고 마을을 돌아다 봤습니다.
“불이다! 불!”아버지가 다급하게 소리쳤습니다. 마을에서 흰 연기가 치솟아 오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달렸습니다. 나도 달렸습니다. 불난 집은 다름 아닌 우리 집이었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달려온 마을 사람들이 우물물을 날라 불을 끄고 있었지요. 한참만에 집 귀퉁이를 태우고 불은 꺼졌습니다. 철없는 아이들이 장난삼아 낸 불이었습니다.
그 후, 종탑 밑을 지날 때면 종을 치고 싶다는 충동을 가끔 느꼈습니다. 불을 꺼준 종소리의 위력을 알았기 때문이지요. 또 하나 답답한 내 마음의 불을 끌 수 있을 거란 생각도 있었다지요.
참 모를 일입니다. 누가 종탑 끝에 종을 매달아 놓을 생각을 했을까요. 종을 보면 이 시의 ‘담쟁이’처럼 왠지 치고 싶은 이끌림에 빠집니다. (소년 2011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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