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눈
제해만
파릇파릇 새싹 돋는 날
봄눈 내린다.
몰래몰래 내리려다
밭고랑에 빠졌다.
우리 이웃 동네에 양곰이 있었지요. 털투성이었어요. 나이는 마흔쯤 됐고, 키가 컸지요. 겉보기에는 건장해 보였지만 실은 4살배기 아기 수준이었어요. 걸음도 서툴렀고, 말도 어눌했지요. 우리들은 그를 만나기만 하면 놀려댔지요.
“곰아, 곰아, 양곰아.
양지짝에 앉아서 불알을 설설 긁어라.”
그러면 그는 뭐가 좋은지 헤헤헤헤 웃었지요.
양곰은 우리 마을에 와 공짜로 밥을 얻어 먹으며 살았는데, 봄눈이 오던 그 날은 달랐어요. 어머니가 아침밥을 그릇을 건네자, “바바바깝!” 하며 등 뒤에 숨겨온 밥값을 내놓았지요. 진달래꽃 한 묶음이었습니다. 늘 얻어만 먹는 게 양곰도 미안했던 모양이지요.
“고맙기도 해라. 이렇게나 비싼 밥값을!”
어머니는 반색을 하며 망가진 꽃묶음을 받았지요.
한겨울 동안 밥을 얻어먹은 게 고마워 진달래꽃을 꺾어왔는데, 하필 그날 봄눈이 내린 거지요. 지금 생각해도 참 착한 사람이었어요.
이 시를 쓴 제해만 님은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셨고, 동시집 <갈매기 소년>등이 있어요. (소년 2011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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