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빈병
문삼석
바람이
숲속에 버려진 빈병을
보았습니다.
-쓸쓸할 거야.
바람은 함께 놀아주려고
빈병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병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보오, 보오
맑은 소리로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찬비가 내리던 날입니다. 우산을 쓰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깊옆 배수로 안에서 뭔가가 고개를 내밉니다. 가만히 보니 줄무늬 고양이입니다. 나를 보자 고양이가 얼른 고개를 내리고 숨어버립니다. 나는 배수로를 들여다 봤습니다. 고양이가 찬비를 맞으며 웅크리고 있습니다. 등허리엔 흙물이 누렇게 배어있습니다. 아마도 누군가 내다버린 고양이 같았습니다. 고양이는 나를 흘낏 쳐다보더니 고개를 뚝 떨어뜨립니다.
“아저씨, 너무 추워요.”
꼭 그러는 표정입니다.
나는 그만 가던 길을 그냥 갔습니다. 조금 가다가 돌아보니 고양이가 배수로에서 고개를 내밀고 나를 우두커니 보고 있습니다. 그걸 보니 우산을 쓰고 가는 내가 미안해졌습니다. 나는 발길을 되돌려 고양이 곁에다 우산을 가만히 내려놓았습니다. 버려진 고양이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지요. 지금 생각해도 그때 그것밖에 못한 내가 참 미안합니다. 이 시 ‘버려진 빈병’도 ‘버려진 고양이’처럼 쓸쓸합니다. 무엇보다 함께 놀아주는 ‘바람’이 부럽습니다.
이 시를 쓴 문삼석 시인은 전남 구례에서 태어났으며, <산골물>,<가을엽서>등의 동시집이 있습니다. (소년 2011년 2월호)
'시인이 들려주는 동시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씨 (0) | 2012.06.20 |
---|---|
의자와 어자, 그리고 걸상 (0) | 2012.06.20 |
봄눈 (0) | 2012.06.20 |
꿈 (0) | 2012.06.20 |
눈 온 아침 (0) | 2012.06.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