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온 아침
윤석중
온 세상이 하얗게 된 아침
나는 동화 속의 아이가 되어
아무도 걷지 않은
눈 위를 걸어 봅니다.
한참을 걷다가 뒤돌아 보면
움푹움푹 나를 따라오는 발자국
숲 속의 요술쟁이 할멈을 만나도
무섭지 않아.
나는 다시 걸어갑니다.
이렇게 자꾸만 가면
이 세상을 하얗게 만든 분을
꼭
만날 것만 같습니다.
자고 나면 누군가 내게 선물을 가져다 줄 것만 같은 밤입니다. 그런 날은 잠이 오지 않지요. 하나 둘 셋 넷....숫자를 세다가 그만 깜물 잠이 듭니다. 늦은 아침에 일어나 문을 열면 마당 가득히 눈이 내려 있습니다. 하얀 겨울 선물입니다. 나는 아침도 먹지 않고 빈 속에 강아지와 함께 윗마을까지 뽀독뽀독 눈을 밟으며 걸어가 봅니다. 추위에 떨던 마을이 온통 아침 햇빛에 반짝입니다. 마치 별나라에 들어선 것처럼 낯설고 신기합니다. 어른들 말처럼 눈 귀신에 홀린 세상에 온 기분입니다.
발로 눈 위에 꽃잎을 찍고, 또 눈 위에 벌렁 누워 눈사진을 찍습니다. 강아지는 그러는 내가 우스워 내 곁을 빙글빙글 맴을 돕니다. 윗마을에는 예배당이 있었는데 그 예배당을 한 바퀴 돌고 옵니다. 돌아올 때도 강아지가 앞장을 섭니다. 강아지는 저만큼 앞서 가다가는 돌아서서 나를 기다리고 또 달아나고 또 기다립니다. 그러며 둘이 같이 집에 옵니다.
“손 다 얼었겠구나!”
엄마가 밥을 차리던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아줍니다.
눈 내리는 날의 아침은 그렇게 시작되었지요.
이 시를 쓰신 윤석중 선생님은 1911년 서울에서 태어나 2003년에 돌아가셨습니다. 1956년에 새싹회를 만드셨고, 많은 동요와 동시를 쓰셨습니다. (소년 201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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