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문지방

권영상 2022. 10. 7. 11:09

 

문지방

권영상

 

 

가끔씩은 물걸레를 부착한 막대걸레로 방을 민다. 내 생각으로는 청소기보다 그게 방청소를 한 것 같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거실서부터 이 방 저 방 차례대로 치울 건 치우면서 좀 느긋한 마음으로 닦는다. 그때마다 떠오르는 게 있다.

문지방이다. 아파트 건물엔 문지방이 없다. 그 때문인지 평수에 비해 방이 넓게 보인다. 그러나 옛날 가옥들은 방마다 높은 문지방이 있다. 그 탓인지 방이 한결 좁아 보이고 답답하여 갇힌 느낌이 든다. 그 때문이겠다. 어른들은 문지방에 앉는 걸 질색했다.

 

 

거기 앉으면 복이 나간다.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들어온 금기어다. 문지방에 올라서면 엄마가 죽는다는 말도 있다. 이들 모두 문을 가로막으면 그러잖아도 좁은 방이 더 좁아 보여 경계한 말일 수 있겠다. 실제로 좌식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문지방은 걸터앉기에 딱 좋은 자리다. 거기 앉으면 우선 상체의 무게를 덜게 되어 몸이 편하다. 바깥을 한 눈에 내다볼 수 있어 마음이 시원하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바깥 풍경과 마주하는 즐거움이 있다. 그뿐인가. 바깥 공기가 방안으로 들어오거나 방안 공기가 바깥으로 나가는 통로가 문이고 보면 문지방은 한 채의 집에 있어 그야말로 가장 쉬기 좋고, 전망 좋고, 시원한 곳이다.

 

 

그곳에 누군가가 떡 가로막고 앉아 있다.

이건 방안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못 참을 일이다. 그럴 때에 ‘문지방에 앉으면 엄마가 죽는다’거나 ‘벼가 죽는다’는 말이 태어났겠다.

근데 아무리 그렇기로 ‘엄마가 죽는다’는 말로 경계를 삼을까.

우리 조상들에겐 나름대로 아름다운 미덕이 있다. 좋은 음식은, 좋은 술은, 좋은 날은, 좋은 자리는 인간이 아닌 신에게 바쳐왔다. 그해 가장 좋은 8월 한가위 날, 새로 거둔 햅쌀로 밥을 짓고, 술을 빚어 제일 먼저 신에게 드려왔다.

 

 

그처럼 집안에서도 제일 좋은 자리인 이 문지방은 신에게 내주었던 거다. 그러니 신이 머무는 자리에 사람이 앉는 건 무례다. 신은 방 안과 방 바깥의 경계인 이 아슬아슬한 문지방에 거처한다. 옛사람들은 방의 바깥세상은 인간과 신이 함께 하는 곳으로 보았고, 방 안은 인간만이 거처하는 공간으로 여겼다.

신들 중에는 좋은 신도 있지만 잡귀나 역신도 있다. 이 신들은 늘 문 앞에 와 인간이 사는 방안을 넘겨다보는데 신들도 그곳이 산 자만의 공간임을 알아 쉽게 경계를 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이 거기 문지방에 걸터앉아 있으면 그의 몸을 타고 방안으로 들어선다고 보았다.

 

 

늦은 저녁 식사 중에 밖에서 기척이 나면 아버지는 문을 탁, 여셨다. 그 때 우리는 거기 마당에 성큼 와 서 있는 시커먼 어둠 때문에 놀라곤 했다. 방안의 불이 없었다면 어둠은 방안으로 와락 들어섰을 것이다. 아버지가 기침을 한번 하시고 탁, 문을 닫으실 때면 우리는 어둠으로부터 안도하곤 했다. 다시 안온해진 방안과 우리 식구들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밤일수록 방 안은 어둠이라는 신의 침입과 위협을 느끼는 공간이다.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낮이면 부모님은 잔소리삼아 문지방에 앉지 못하게 했다. 행여나 사람 사는 공간인 방안으로 컴컴한 존재가 들어오는 일은 곧 불행이다. 엄마가 죽는 일만큼.

 

 

문지방이 있던 옛가옥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그건 사람과 함께 거주하던 신들이 사람들 곁을 떠나가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 곁에서 신이 사라지고 있다는 말은 자연과 우주에 대한 경외심이 사라지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방청소를 마치고 쉴 겸 소파에 앉는다. 문지방에 올라앉는 기분이 이렇겠다.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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