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간밤의 유에프오

권영상 2022. 9. 29. 17:39

 

간밤의 유에프오

권영상

 

계절이 가을에 와 있다.

이 즈음이면 한낮 풍경이 넉넉해 좋다. 근데 한낮 풍경만인가. 밤 풍경도 좋다. 밤 풍경 중에도 야심한 새벽 풍경에 나는 관심이 많다.

새벽잠에서 깨면 불을 켜지 않은 채로 커튼을 걷고 가만히 창문을 열어 바깥을 내다보곤 한다. 그건 어김없이 새벽 3시다. 오래된 습관이어서 내 몸의 시계는 1분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때마다 이 깊은 밤 새벽 풍경을 엿본다.

 

 

다들 잠에 든 이 시간의 풍경은 신비하다. 풀벌레들은 달빛을 받으며 쉼 없이 운다. 행여 달빛을 따라 온 고라니가 마을길을 배회하다가 돌아가는 모습을 볼까 싶어 마음이 설레기도 한다. 부엉이는 지금 건너편 숲에서 무얼 하는지, 뜰앞 꽃복숭아나무며 뜰보리수, 배롱나무는 이 밤에 어떤 빛깔로 별들과 소통하는지, 그런 상상만으로도 새벽 풍경은 신비하다. 평소에 침묵하는 것들은 어쩌면 이런 시간에 낯선 생명활동을 할지 모른다.

누가 아는가. 건너편 산의 나무들이 우리 집 뜰 마당에 걸어와 놀다가 이 시각에 뿔뿔이 돌아가는지. 나는 그런 풍경과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조용히 창문을 열어왔다.

 

 

근데 요 며칠 전부터다.

바깥 풍경이 낯설어졌다. 보이지 않던 큰 별 하나가 동쪽 하늘에 떠 있다. 2년마다 밝아지고 있는 화성이란다. 한 달간 저렇게 빛나다가 곧 사라질 모양이다. 뚱딴지 같이 나타난 뚱딴지 같이 큰 별 때문에 가을밤 세상이 낯설다.

건너편 숲에서 공룡이 불쑥 나타날 것 같다. 산 너머에 짓는 대형 영상센터 때문인 듯하다. 짓고 있는 건물의 크기가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어마어마하다. 숲 위로 솟구쳐 오른 아파트 크레인이 마치 길다란 목을 세워 이 쪽 마을을 건너다보는 백악기의 브라키오 사우르스를 닮았다. 철제 빔 부딪히는 굉음 또한 그들의 울음소리처럼 산을 울린다.

 

 

정말 그 때문이었을까.

새벽 3시. 소리 없이 창문을 열자, 별 총총한 하늘이 담뿍 눈에 들어왔다. 물론 그 낯선 화성도, 그리고 또 하나 이지러진 하현달. 풍경이 교교하거나 신비롭거나 좀은 야릇하다, 하는 그 순간 빠르게 이동하는 투명물체가 보였다. 길 건너집과 우리 집 사이의 빈 허공을 가르며 부메랑을 닮은 그것이 소리 없이 날아서는 휙 사라졌다. 내가 헛것을 보았나, 하는 그 순간 건넛집 개가 놀란 목청으로 짖었다. 분명 그 투명한 물체를 향하는 소리였다. 서너 번! 그러고는 멈추었다. 그러니까 개도 그걸 본 셈이다.

 

 

나는 긴장했다.

어쩌면 유리 창문이 만들어낸 빛의 얼룩일 수도 있겠다 싶어, 창문을 닫았다가 다시 가만히 열어 보았다. 아까와 같은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순, 밤 풍경이 신비롭기보다 베일에 휩싸인 듯 약간 비밀스러워졌다.

창문을 닫고 잠자리에 누웠다. 그냥 단순한 해프닝이라기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밤의 세계의 은밀한 이변같았다. 불을 켜고 시계를 보니 3시 13분.

 

 

투명한 물체는 다시 생각해 보아도 40센티 정도의 부메랑을 닮았다. 윗부분은 엷은 빛을 은은히 반사하고 있었고, 아래는 어두웠다. 낮은 데서 높은 데를 향해 날아가는 밤새라면 날갯짓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건 날갯짓이 없는 분명한 비행체였다.

나는 평소 유에프오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간밤 소리 없이 이동한 그 물체는 분명히 유에프오였다. 9월 25일. 탁상달력에 유에프오라 쓰고 별표를 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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