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

고래의 꿈, 김마리아 동시집 해설

권영상 2022. 7. 12. 09:52

<김마리아 시인 동시집 해설>

 

고래의 꿈

권영상 

 

 

징검다리입니다

철새가

앉았다 가고

앉았다 가는

 

 

김마리아 시인의 동시집 <갯벌 운동장>에서 발견한 ‘섬’이라는 시입니다. 시가 뛰어나다거나 감명을 주어서라기보다 시인의 지구를 보는 대범한 눈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섬을 바다에 떠있는 외로운 대상으로 보는 시인은 많지만 철새들이 건너뛰는 징검다리 정도로 보는 혜안은 분명 남다릅니다. 짧은 시 속에 수없이 많은 철새들이 내려왔다가 또 날아가는 시간이 길게 느껴집니다.

예사롭지 않은 점은 또 있습니다. 우리 시단에 바다와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이야기를 이처럼 진지하게 그려낸 시집이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이 시집 원고를 끝까지 읽는 동안 나는 시인이 들려주는 바다 이야기에 푹 빠졌고, 시집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내 몸에서 바다냄새가 물씬 나는 걸 느꼈습니다.

이 시집을 읽은 이들이라면 그 누구도 예외 없이 김마리아 시인의 바다에 풍덩 빠져 온몸으로 그의 바다를 껴안고 뒹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시인 김마리아는 오랫동안 같은 문단에서 낯익혀온, 이제는 중견시인의 대열에 들어서는 분이지요. 2000년에 아동문예문학상 수상으로 등단하셨으니 무려 2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동시를 써오셨지요. 그 동안 <빗방울 미끄럼틀>을 비롯해 8권을 동시집을 내셨고, 그의 동시는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하였지요.

최근작으로 <강아지 흉내를 낸 당나귀>(리잼 2019)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등과 같은 서양 동화들을 시로 재구성해낸 역작입니다. 그 이듬해에 나온 <내 방이 생겼다>(리잼 2020)는 가족을 배경으로 하는 따뜻한 가족 구성원들의 사랑을 다루었고, 또 그 이듬해에 나온 <오늘보다 신날거야>(브로콜리의숲 2021)는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가 떠나가는 자연 현상을 짧은 형태의 시로 그려낸 바 있습니다.

그러니까 김마리아 시인은 긴 호흡의 이야기시도 다루어 보았고, 반대로 극히 짧은 단형시도 다루었다는 점입니다. 그 말은 그가 다양한 그리고 낯선 영역에 두려움 없이 접근하는 대범한 시인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 대범함이 이번에는 바다로 달려가 바다시 <갯벌 운동장>을 엮어 올렸습니다. 시인은 어항으로 잘 알려진 방어진 꽃바위라는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바다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성장했습니다. 이 또한 새로운 영역으로 쉽게 다가가게 된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모래벌은 저의 놀이터였습니다. 바다를 보며 학교에 가고 바다를 보며 집에 왔고 ... 넓고 넓은 바다를 보며 꿈을 키웠습니다.’고 했습니다.

 

 

1. 바다 이미지

 

 

썰물이 만든

갯벌 운동장에

게들이 나왔다

 

볼볼볼

볼볼볼 볼볼볼

볼 볼 볼 볼 볼 볼 볼 볼

볼 볼 볼 볼 볼 볼 볼 볼

 

게들의 왕국이다

게들의 세상이다

볼볼 기다가

뽈 멈추다가

 

볼볼볼볼볼볼볼

볼볼볼볼볼볼볼

볼볼볼볼볼볼볼

 

게들이 신났다

 

 

이 동시집 제 1부에 배치된 첫 동시 ‘갯벌 운동장’입니다.

썰물이 빠지자, 여기저기 숨어있던 게들이 비어 있는 갯벌로 몰려나오네요. 이 시간을 게들은 또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을까요. 거칠 것 없는 갯벌로 몰려나와 자유로이 기어다니는 게들이 눈에 선하네요. ‘볼 볼 볼’은 게들이 기어다니는 시늉말이지만 동시에 한 마리 한 마리의 게이기도 합니다. 저렇게나 많은 게들이 ‘볼볼 기다가/ 뽈 멈추다가/ 볼볼볼볼볼볼볼’ 기다가 ‘뽈’ 멈추다가 하면서 마치 얼음땡 놀이를 하듯 지금 신이 났습니다. 지구가 연출해내는 바닷게들의 축제의 무대 같습니다.

이게 김마리아 시인이 펼쳐 보이는 첫 바다 인상입니다. 파도를 밀어낸 바다는 그걸로 멈추고 마는 게 아니지요. 그 빈자리에 또 다른 생명들을 불러들여 그들을 먹이고 살리고, 신나게 놀게 하지요. 바다는 아주 먼 옛날, 생명이 처음으로 생겨난 곳이잖아요. 마치 거대한 그림을 보듯 이미지가 선명하고 또 강렬하고, 바다가 얼마나 큰 모성 같은 존재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닷가 할머니 집에서 자던 날

철썩,

철썩,

철썩,

바다는 온몸이 바다라서

숨소리도 크다

 

철썩,

철썩,

철썩,

할머니 안방까지 들렸다

 

 

‘갯벌 운동장’ 다음 자리에 놓여있는 ‘바다가 숨 쉬는 소리’입니다. 앞의 시가 한편의 거대한 그림이라면 이 시는 바다가 연출해 내는 한 편의 거대한 소리의 공간입니다. 앞의 시가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모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이 시는 형상을 가늠하기 힘든 거인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인에게 있어 바다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양면성을 두루 갖춘 거대한 생명체입니다.

바다는 온몸이 거인 같은 바다라서 숨소리를 내어도 철썩, 철썩, 하는 그 숨소리가 불을 끄고 누운 할머니집 안방까지 밀려옵니다. 파도는 살아있는 지구의 숨소리입니다. 화자는 그날 할머니 안방에 누워 거인 같은 지구를 느꼈을지 모릅니다.

 

 

2. 바다의 힘

 

 

철썩 콰르르

모래밭을 지나

철썩 콰르르

자갈밭 지나

마당으로 올라왔다

바다가.

 

철썩 콰르르

마루를 지나

부엌으로, 안방으로 겁도 없이 들어온다.

 

어?

어쩌지, 어떡해?

집, 집, 집 두고

피난 가자

보따리만 안고 가자

빨리빨리 어서 나와.

 

동네에서 제일 낮은 곳

바다와 맞닿은

희야네 집.

 

그날 희야네 식구들은

보따리 싸 들고

높은 데 사는 고모 집에서 잤다.

 

 

‘태풍 부는 날’이라는 시입니다.

그날입니다. 거친 파도가 사람 사는 집 마당으로 불쑥 올라옵니다. 이 파도가 그쯤에서 멈추지 않고 마루를 지나 부엌으로, 안방으로 들이닥칠 때 그 파도를 보는 이들은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어? 어? 어? 하는 사이로 희야네 가족은 그만 파도를 피해 고모네로 피난을 가 거기서 하룻밤을 잤군요.

바다는 무단히 사람의 집을 침범하여 그 집을 점령합니다. 이것이 격노하는 바다의 위력이지요. 그런데 저만인가요. 이 시를 읽으면 바다가 일으키는 공포와 재앙보다는 왠지 좀 즐거운, 마치 피난놀이라도 하는, 아니면 밤 소풍이라도 가는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보통 때라면 ‘동네에서 제일 낮은 곳’에 사는 희야네 식구가 동네에서 ‘높은 데 사는’ 고모네 집에 가 잘 리 만무하지요. 근데 그 가당치도 않은 일을 태풍이 고맙게도 실현시켜 줍니다. 낮은 데서 높은 데로.

태풍의 공포심을 극대화시키기보다 태풍 덕분에 높은데 사는 고모네 집에 식구 모두 달려가 하룻밤을 잤다는 ‘재미난’ 이 작은 에피소드에 이 시의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는 듯 합니다. 어쩌면 희야는 살아가면서 이 날의 ‘하룻밤’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며, 그것은 알게 모르게 바다의 힘으로 오래 살아남을 것입니다. 이것이 김마리아 시인의 동심이 만들어낸 특유의 유머가 아닐까 싶네요. 모처럼만에 바다도 한번 뭍으로 올라와 보고, 희야네도 한번 높은데서 자 보고.

 

 

울릉도

너와 지붕 위에

납작하고 무거운 돌들이 올라갑니다

 

지붕아, 날아가지 마

우리가 잡아 줄게

꽉, 잡아 줄게

 

너와 지붕은

바람이 세게 불어도 끄떡없습니다

 

돌들은 너와 지붕 위에서

보다 넓은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너와 지붕과 돌’ 전문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살던 ‘납작하고 무거운 돌들’이 모처럼의 행운을 얻어 너와집 지붕 위로 올라갑니다. 그들의 주요 임무는 바람에 너와 지붕이 날아가지 못하도록 꽉, 잡아주는데 있습니다. 돌들은 그 임무를 띠고 지붕 위에 올라갔지만 너무도 뜻밖의 행운이 찾아옵니다. 여태껏 보지 못 했던 넓은 세상을 그 위에서 만났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가끔 타인을 위해 웃는 얼굴을 하고, 타인을 위해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타인을 위해 봉사하고, 타인을 위해 말씨를 곱게 쓰는 걸로 생각하지요. 그러나 실은 그 일이 타인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종국에는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음을 압니다. 이 시에 등장하는 돌들이 그렇네요. 그들이 지붕에 올라가 어느 자리에 놓이는 순간 너와 지붕도 살고, 돌들 또한 사는,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공존의 아름다운 순간을 경험합니다. 이 모두 바다가 만들어내는 울릉도만의 고귀한 풍경일 테지요.

 

 

3. 바다가 심어주는 꿈

 

 

새우가

새우잠을 자다가

고래 꿈을

꾸/ 었/ 습/ 니/ 다

 

고래 등을 타고

고래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고래 교실에서

고래 선생님과

고래 친구들과 공부를 했어요

한반도를 지나

태평양을 여행했어요

고래가 된 것처럼

 

고래 새우 새우 고래

고래고래 고래고래

고래고래 노래를 불렀어요

 

새우는

고래가

되/ 었/ 습/ 니/ 다

 

    -‘고래가 되는 꿈’의 전문 ( / 표시는 분량을 줄이기 위해 필자가 사용함)

 

 

바닷가 아이들은 어떤 꿈을 꾸며 살까요. 여기 김마리아 시인이 그 대답을 주었네요. 바닷가 아이들은 꿈을 꾸어도 고래가 되는 꿈을 꾸며 산다고. 고래학교에 입학해 고래 교실에서 고래 선생님과 고래 친구들과 공부도 하고 여행도 하고, 음악시간엔 고래고래 고래를 꿈꾸는 노래는 부르다가 고래가 된다고.

그건 새우들의 꿈이면서 또한 바닷가 아이들의 꿈이기도 한 거지요. 그건 고래가 되는 꿈이면서 또한 생각과 하는 일이 큰분이 되는 꿈이기도 한 거지요. 큰 산을 보며 자란 아이는 나중에 큰 산과 같은 어른이 되고, 큰 나무를 보고 자란 아이는 큰 나무 같은, 세상에 쓸모 있는 어른이 된다는 말과 딱 맞아떨어지네요.

바다는 아이들뿐 아니라 그 아이들을 낳은 어머니들의 꿈도 큰분이 되도록 키워주었을 테니 바닷가 아이들이 좋은 인물로 성장할 것은 자명하네요.

 

바다는 큰 집이다

지구에서 제일 큰 집

식구도

많다

 

돌고래 떼 지어 헤엄치고

상어 연어 고등어가 살고

명태 가자미가 있고

쥐치 갈치 꽁치 멸치

문어 오징어가 살고…….

전복 소라 게가 기어 다닌다

 

김 미역 다시마 파래가

물결 따라 흐른다

굴이 따개비가

갯바위에 붙었다

셀 수 없이 많은

대가족을

바닷물이 달래고 야단치고 보듬어 키운다

 

    -‘지구에서 제일 큰 집’ 전문

 

 

고래를 꿈꾸며 사는 새우들의 꿈이 대체 어떤 것인지 이 시가 자세히 알려주네요. 셀 수 없이 많은 대가족을 달래고 어르고 보듬어 내는 일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일은 타인의 삶을 돌보고 지켜주어 그들이 그들의 꿈을 이루어가도록 하는 일이랍니다. 그것은 희생이 따르지만 또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기도 하답니다.

바다가 지금 그렇네요. 돌고래 상어 연어 고등아 문어 오징어, 전복 소라 김 미역 따개비 까지 그들을 품어 넉넉하게 살게 하는 터전이 바다입니다.

바다는 우리가 알고 있는 위인들의 삶과 전혀 다르지 않네요.

 

 

4. 바라고 원하는 기원의 대상

 

 

너울아

너울아

 

너울너울

너울거리지 마라

나불나불

나불거리지 마라

 

너울너울거리면

나불나불거리면

 

민구 삼촌

먼바다에

비단 멍게 따러

못 간단다

못 간단다

 

* 나불: 너울(파도)의 경상도 사투리.

 

 

시 ‘너울’ 전문입니다.

민구 삼촌을 둔 어린 누군가의 너울을 향한 기원이 드러나 있네요. 너울이란 물마루와 골이 둥그스름한 거칠고 위험한 물결입니다. 바다는 바닷가 사람들의 꿈이 이루어지는 삶의 터전이고 직장인 셈입니다. 그런데 너울이 일어 지금 민구 삼촌이 바다에 나갈 수 없습니다. 시 속의 화자는 그게 걱정입니다.

너울너울 너울거리지 말아달라고. 나불나불 나불거리지 말아달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너울을 부르며 기원합니다. 너울은 초자연적 힘을 가진 기원의 대상이지요. 그러니 그에게 부탁하려면 잘 아는 동무처럼 친근하게 너울아, 너울아. 불러야겠지요. 생계가 걸린 딱한 사정을 이야기해 그의 도움을 받으려면 당연히 그래야지요.

근데 여기서 ‘너울거리지 마라’, ‘나불거리지 마라’를 동시에 구사하고 있다는 점이 퍽 인상적입니다. ‘나불거리다’가 경상도 사투리라고는 하지만 이 말은 또한 우리가 아는 ‘입을 함부로 가볍게 놀리지 마라’는 뜻이기도 하잖아요.

왜 한쪽으로는 너울대지 말아달라고 애원을 하고, 또 다른 한 쪽으로는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걸까요. 이러한 기원의 양면 구사가 어쩌면 바닷가 사람들의 오랜 기원 방식이 아닐까 합니다. 마치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내지 않으면 구워먹으리라’와 같은 어르고 윽박지르는 양면성에서 온 듯 하네요. 그런 측면에서 이 시는 구전문학적 가치도 분명 소중히 지니고 있습니다.

 

 

파도 잠잠하고

바람 잠잠하고

햇살이 쨍쨍한 날

바닷물이 금빛같이 반짝이는 날

 

포구에 배들이 꾸물꾸물 서둘러 바다로 나가는 날

느린 인구 삼촌 아침 일찍 배 타고 나가는 날

갈매기 끼룩끼룩 빙빙 날고

파란 하늘에 흰 구름 몇 점 흐르는 날

 

파래가 물 따라 흐르고

미역 일렁이고

노래미 돌돔 쥐치 헤엄치는 것 다 보이는 날

 

먼바다로 가도 좋은 날

콧노래 절로 나오는 날

종일, 일해도 신나는 날

 

수평선이 멀리, 멀리까지 보이는 날

참, 좋은 날

 

 

‘참 , 좋은 바다 날씨’ 잘 읽었네요.

바다 안개가 걷히면서 햇빛 아래 투명한 세상이 활짝 드러나네요. 참, 좋은 바다 날씨 때문입니다. 이제 바닷가 마을 사람도, 갈매기도, 물속의 파래며 미역이며 노래미 돌돔 쥐치도 다시 바빠지네요.

하루종일 일해도 힘들기는커녕 마냥 신납니다. 먼데 수평선이 한층 선명하게 보이는 날입니다. 이런 날이 바로 바닷가 사람들이 기원하는 날입니다.

거친 파도 때문에 집을 버리고 달아날 이유도 없고, 너울파도 때문에 생계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바닷가 사람들이 그토록 기원하고 소망하는 날입니다.

이런 날, 바다 앞에 서서 수평선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는 한 사람이 떠오르네요. 어릴 적부터 이 바다를 바라보며 학교에 가고 이 바다를 바라보며 꿈을 키웠다는 김마리아 시인 이전의 풀빛 같은 한 어린 소녀입니다. 그에게서 지금도 방어진 꽃바위의 짭조름한 바다냄새가 날 것 같습니다.

 

이쯤에서 아쉽지만 동시집 <갯벌 운동장>의 마지막 장을 덮습니다.

아직도 더 언급하고 싶은 시는 많습니다. 김마리아 시인에게 바다가 가르쳐준 유머도 소개하고 싶고, 바다가 오염될까 가슴 조이는 시들이며, 장난끼 많은 바다에 대한 글도 더 쓰고 싶지만 이제는 끝맺어야할 때입니다.

동시집 <갯벌 운동장>은 누구보다 바다를 잘 아는 김마리아 시인을 만나 더욱 바다시다운 시의 영토를 크게 넓혔습니다. 겉핥기식의 바다가 아닌 바다의 속성을 대범하고 활달하고 때로는 간절하게 노래했습니다. 마치 시인이 태어나고 자란 방어진 꽃바위의 큰 역사서를 한권 읽은 기분입니다. 부디 이 동시집이 우리 동시문단의 뚜렷한 족적을 남기는 이정표가 되기를 바랍니다.

 

김마리아 동시집 <갯벌운동장> 상상 2022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