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

어머니가 있으되 없는 아픈 결핍감

권영상 2021. 9. 11. 12:29

 

<詩간여행>

 

어머니가 있으되 없는 아픈 결핍감

권영상

 

 

어머니에 대한 궁금증이 하나 있다. 어머니는 왜 그토록 오래 병석에 누워계셨던 걸까, 그 점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막내인 내가 중학교 2학년을 막 시작하던 봄부터 무려 15년이 넘도록 병석에 누워계셨다. 한번 입원하시면 그길로 6개월 정도 병원에 머무르셨고, 퇴원 하신다 해도 안방에 누워 꼼짝없이 자리보전을 하셨다. 자리보전만 하신 게 아니라 숱한 떠돌이 한의원들의 약첩을 머리맡에 쌓아두고 사셨다.

 

 

그러다가 또 견뎌내기 어려우시면 다시 읍내 병원으로 실려 가셔서는 한 계절을 넘기거나 일 년을 넘기도록 병원에 계셨다. 15년이란 세월을 어머니는 그렇게 사셨다. 농사일에 파묻힌 아버지는 병원 살림하시랴 집안 살림하시랴 고단하셨다.

어린 나는 어머니 없는 빈집 대신 혼자 뒤란 밖에 있는 경포 호숫가를 맴돌았다. 그때부터 내게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버릇이 생겼다. 처음엔 어머니가 어서 퇴원해주기를 기다렸지만 차츰 어머니가 있으되 어머니가 없는 빈 마음을 채워줄 누군가를 기다렸다.

 

 

기다림은 그때 내게 깊은 절실함이었고 나를 쫓아다니는 추운 그늘이기도 했다.

어쩌면 이 기다림이 나를 문학 쪽으로 조금 기울어지게 하는 계기는 아니었을까. 그 계기의 보이지 않는 곳에 어머니에 대한 결핍이 있었던 듯하다. 걸핏하면 나는 호숫가를 혼자 떠돌거나 아버지와 함께 힘들여 농사를 짓는 소를 먹이러 혼자 호수에 나갔다. 하루 종일 대관령 너머 하늘로 구름이 일어나고 지는 걸 보거나 호수 건너 숲에서 날아온 솔개가 잉어를 채거나 산마을에서 들려오는 트럼펫 소리를 들으며 누군가를 오롯이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여름이었다.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누군가가 드디어 왔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다는 이들 몇이 내가 사는 마을로 내려왔던 거다. 지금은 허균 생가가 되었지만 본디 거기엔 대농을 하던 댓골집이 있었고, 댓골집의 몰락으로 서울의 한 대학교수가 그 집을 사들였다.

그 대학의 학생 서넛이 내려왔다.

나는 자연히 호수로 나온 그들을 만났고, 그 중 한 형과 친해졌다. 그는 시골배기 내게 흥미를 느꼈는지 늘 나를 가까이했다. 몇 학년인지, 꿈은 무언지, 소는 무섭지 않은지, 콩서리는 뭐고, 밀청대는 뭔지, 그렇게 묻더니 어느 때부터는 별 이름과 별자리를, 나침반 보는 법이며 풀숲에 흔한 나도 모르는 풀이름을 알려주고, 내가 목마르게 알고 싶어 하던 대관령 너머의 세상과 서울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그 형이 호숫가로 나오지 않으면 그들이 머무는 댓골집으로 찾아가곤 했다. 그리고 그들이 머무는 방 마루에 앉아 그들이 주고받는 말에 귀를 기울일 만큼 그 형이 좋았다.

여름 방학이 끝나갈 쯤이다.

갈대 숲길 저편에서 오던 그 형이 내게 책 한 권을 내밀었다.

“내일이면 여길 떠날 거다. 떠나고 싶지 않은데 말이다.”

나는 그 말에 선물이라며 내민 책보다는 정들었던 사람과 헤어진다는 게 더 슬펐다.

 

 

그 형과 헤어진 후, 나는 호숫가에 나가지 않았다. 소도 소나무에 매어둔 채 풀을 먹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밤, 나는 그 형이 주고 간 책을 찾아들었다. 표지며 앞쪽 몇 장이 떨어져 나갔지만 손때 묻은 단정한 책이었다.

호롱불 아래에서 처음으로 그 책을 열었다.

 

‘그림자가 빛을 쫓고, 여름을 뒤따라 비가 내리는 길가에 서서 이처럼 기다리고 지켜보는 것이 바로 나의 기쁨입니다. 알길 없는 하늘로부터 소식을 가져오는 전갈들이 내게 인사하고는 서둘러 길을 떠납니다. 내 가슴은 속속들이 기쁨에 차 있고 지나는 산들바람의 숨소리는 달콤합니다.’

 

 

나는 글의 내용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 형이 보고 싶으면 꺼내어 읽고 또 외워나갔다.

그리고 3년을 더 혼자 호숫가를 떠돌다가 어렵게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그때 들락거리던 학교 도서관에서 내가 읽고 외던 글이 담겨있는 책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것은 시집이었고, 타고르의 <기탄잘리>였다.

너무도 놀랍고 충격적인 시와의 만남이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시라는 걸 알게 됐고, 글을 써야겠다는 불티만한 불씨를 가슴 한켠에 품었다. 나의 오랜 기다림 끝에서 나는 이렇게 시를 만나고 말았다.

 

 

그렇기는 해도 내가 글을 쓰게 된 데에는 딱 어느 한 가지의 영향이 있었던 건 아니다. 우연한 인생역정들이 서로 부딪히고 얽히면서 이 길로 우연히 들어서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어머니가 그리 오래 아프신 까닭을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어쩌면 나를 이 길로 들어서게 하려고 내게 모성의 결핍감을 마련해 주신 듯하다. 어머니가 막내인 나를 팽개치고 그냥 아프셨을 이유는 없었을 테니까.

 

* ‘편찮다’는 말이 이글에는 어울리지 않을 듯하여 ‘아프시다’로 썼음

 

 

<동시먹는 달팽이> 2021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