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

시가 섬으로 찾아오다

권영상 2021. 8. 13. 22:24

<문예 사랑> 머릿말

 

시가 섬으로 찾아오다

권영상

 

 

어부의 아들 마리오는 고기잡이배를 타면 멀미를 한다. 작고 외딴 섬 칼라 디소토. 그 섬에서 배를 타지 못하면 딱히 마리오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다.

그렇게 막막하게 살아가던 그 섬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칠레의 대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온다. 그는 칠레 정부의 핍박에 도피해온 망명시인이다. 사랑을 노래한 시가 많은 그에겐 지지하는 여성 팬들이 많고, 그들은 지치지 않고 수많은 편지를 보낸다.

그러나 그 섬엔 글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럴 때 마침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마리오가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로 고용된다.

누구나 한번쯤을 보았을 마이클 래드포드 감독의 영화 ‘일 포스티노’의 앞부분이다.

 

 

먹고 사는 일조차 힘든 가난하고 낙후된 섬마을에 이렇게 대시인이 왔다. 아니 시가 왔다는 말이 옳겠다. 은유가 뭔지도 모르는 순박한 마을 청년 마리오는 우편물을 전해주는 배달부로 시인 네루다를 만난다.

글 모르는 사람이 다수인, 선거 때마다 상수도를 놓아주겠다고 공약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돌아서는 정치인들 때문에 물 고생하는 것을 정상이라고 여기는 힘없는 이들의 삶 속으로 시가 들어왔다.

시인과 함께 이 척박한 섬에 들어온 시가 어떻게 살아나는지 나는 그 점에 관심을 두었다. 어쩌면 이 영화의 핵심도 그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편물을 배달하면서 마리오는 네루다와 우정을 쌓는다.

그러던 어느 날, 시에 눈을 떠가듯 마리오는 한 여자에게 사랑의 눈을 뜬다.

 

저, 사랑에 빠졌어요.

아니, 치료약은 안 돼요.

낫고 싶지 않으니까요.

계속 아프고 싶어요.

전 진짜 사랑에 빠졌어요.

 

마리오는 네루다를 찾아와 자신의 마음을 한편의 시처럼 절박하게 호소한다.

그는 카페에서 일하는 베아트리체 루소를 보자, 첫눈에 반해 버렸고, 그만 사랑에 빠진 거다. 그는 그녀를 위해, 아니 이 아픈 만큼 달콤한 사랑을 위해 시를 써달라고 시인에게 애원한다. 간신히 은유가 무엇인지 알아가는 마리오의 애원을 시인은 단호히 거절한다.

 

 

마리오는 시인의 연시를 마치 자신이 쓴 것인 양 베아트리체에게 읽어주며 사랑을 고백한다. 사랑은 그렇게 마리오에게 넘어오지만 이를 안 네루다는 몹시 화를 낸다.

“내 시를 도용하라고 준 적은 없네!”

“시란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 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이 아닌가요!”

마리오는 언성을 높인다.

이미 마리오도 사랑과 은유를 통해 시인이 되어가고 있었던 거다.

 

 

“은유가 무엇인가요? 그것이 혹시 시를 쓸 때 사용하는 건가요?”

“그렇지. 하늘이 운다고 하면 그게 무슨 뜻이지?”

“비가 온다는 거죠.”

쉬운 예로, 은유를 설명하거나 ‘이발사들의 냄새가 나를 눈물짓고 울부짖게 한다’ 는 시인의 시 구절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을 때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시란 시 이상의 어떤 언어로도 설명할 수 없다네. 그러므로 시는 설명을 하면 그 순간부터 진부해진다네.’ 마리오가 바다를 알고 싶다고 했을 때는 시인은 혼자 바닷길을 걸으며 바다를 이해해 볼 것을 권한다.

 

 

시를 사이에 놓고 주고받는 시인과 우편배달부의 대화는 어찌보면 코믹할 때가 많다. 바보스럽거나 우스꽝스럽다. 척박한 섬으로 들어온 시는, 그렇게 시의 권위를 벗어던지고 쉽고 가벼운 몸짓을 통해 소통하고, 끝내 마리오를 시인으로 만든다.

 

 

아동문학을 하는 시인들은 어떤가. 세상의 다양한 분야에서 일어나는, 어쩌면 어린이들이 알 필요 없는 부분까지 모두 알아야 하는 이들이다. 한편의 동시란 그런 요소요소들이 알게 모르게 유기적으로 집약되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걸 아무 것도 눈치 채지 못하는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가장 쉬운 시로 감동을 줄 것인가. 그걸 영화 ‘일 포스티노’를 다시 보면서 새롭게 고민한다.

 

격월간 <아동문예> 2021년 9월호 머릿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