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우물물이 좋으면 살구나무 살구꽃빛도 좋다

권영상 2020. 9. 23. 12:18

 

우물물이 좋으면 살구나무 살구꽃빛도 좋다

권영상

 

 

아직도 고향엔 우물이 있다. 우물턱이 허리께까지 오는 제법 근사한 원형 우물이다. 그 곁엔 석조 목간통이 있고, 우물을 빙 돌아가며 넓직하니 너래반석이 깔려있다. 그게 그대로 보존되는 것은 모두 큰댁 종조카의 우물에 대한 신념 때문이다.

고향 아랫말은 불과 여섯 집이 모여사는 집성촌이다.

처음 이 마을에 내려오신 할아버지는 마을앞 이 우물터 수맥을 보시고 여기에 아랫말을 세우셨을 테다. 그리고 우물에 기대어 자손을 이으셨겠다. 그러니 이 우물이야말로 아랫말이 지금껏 건재하는 생존의 근원이다. 아무리 상수도가 편하기로소니 할아버지들께서 만드신 우물을 묻어버려선 안 된다는 종조카의 신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우리가 어렸을 때의 우물은 신성한 곳이었다. 그 물이 목숨을 보전하는 데 쓰일 물이고 보면 당연하다. 어머니께서 뒤란 장독 위에 한 그릇 물을 얹고 칠성님께 안녕을 기원하시던 물도 이 물이다. 가족 중에 누가 이마에 열이라도 나면 그 한 그릇 물에 성심을 바치셨을 테니 우물은 누구도 함부로 할 곳이 아니다.

우물터 너럭바위 아래엔 우물물로 키우는 미나리밭이 있었다. 해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무렵이면 미나리가 푸르게 자랐다. 거기서 크는 미나리는 큰댁이 쓸 만큼 먼저 쓰셨고, 남은 것은 필요한 만큼 누구나 썼다.

 

 

미나리밭 물가엔 미루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먼데서 돌아올 때 미루나무를 보면 안심이었다. 머지않아 집에 이르겠다는 아랫말의 표식이었으니까. 봄이면 호드기를 만들어 미루나무 아래에서 볼이 아프도록 불었다. 그때에 스쳐지나는 바람에 잘잘잘 흔들리던 미루나무 잎은 참 눈부시게 반짝였다.

미루나무 꼭대기엔 까치가 둥지를 틀었다. 우물터에 사람들이 드나든다 해도 누구 하나 미루나무에 올라가지 않는다는 걸 영리한 까치는 알았다. 정말이지 아무리 개구진 아이도 미루나무엔 올라가지 않았다. 수직으로 선 나무라 올라가기도 어렵거니와 올라가 봐야 걸터앉아 놀만한 가지가 없는 게 미루나무다. 거기다가 재질 또한 무르고 약해 섣불리 오르다간 떨어지기 십상이었다.

 

 

풍경화를 그려오라는 미술 숙제를 받으면 나는 가끔 내가 사는 아랫말과 우물가에 선 두 그루 높다란 미루나무를 그렸다. 까치 둥지도 꼭 그렸다. 그거 하나 그려넣었는데도 그림은 더 멋있어 보였고, 선생님은 칭찬하셨다. 장차 화가가 되겠는 걸! 하시면서.

여름밤엔 우물터 석조 목간통에서 목욕을 했다.

두레박물을 퍼 반쯤 채우고, 애들 서넛이 발가벗고 들어가 한여름 펄펄 끓는 땀을 식히곤 했다. 얼마나 떠들며 깔깔거리며 물장난을 쳤는지 나중에 보면 물은 간 데 없고 맨 엉덩이만 남았다. 예전의 여름 더위는 어른들도 참기 어려웠다. 참다 참다 못 참고 나오신 뒷집 당숙께서도 목간통에 물을 채우고 앉아 에헴! 에헴! 목간을 하셨다.

 

 

이런 우물의 내력은 나만 알고 있을까. 나보다 윗대이신 종조카께서도 물론 아시고 남을 테다. 그러니 당신의 손으로 이 우물을 지켜내시려는 거다. 봄이면 봄대로, 가을이면 또 가을 대로 우물에 서린 깊은 과거를 어떻게 지워버릴 수 있겠는가.

우물물은 아직도 맑고 풍족하다. 우물물이 좋으면 그 마을 살구나무 살구꽃빛이 좋고, 솔밭의 솔이 푸르고, 그 물을 먹는 사람들 성정이 좋다는 아버지 말씀을 나는 기억한다. 우리 아랫말이 이 우물물로 오래도록 풍요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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