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호랑이 살던 그 고갯길

권영상 2020. 9. 7. 10:57

 

호랑이 살던 그 고갯길

권영상

 

 

아랫말 우출댁 넷째집, 그게 남들이 부르는 우리집 택호다. 우출댁은 위촌리에서 출가해 오신 할머니의 고향이며 그 할머니의 넷째 아들이 아버지다. 그러니 자연 택호가 넷째집이다. 택호를 말하려는 게 아니고 아랫말로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거다. 아랫말로 들어오려면 자연히 윗마을을 통과해야 한다.

타 지역에서 윗마을로 들어오려면 고개 하나를 넘어야 했다. 고개 이름이 어이넘어고개다. 이름만 보아도 고개를 넘나든 이들의 고단함이 묻어있다. , 어이 넘을꼬. 숨을 몰아쉬며 허덕거리지 않고는 넘을 수 없는 고개가 그 고개다. 그 고개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나도 읍내 학교를 다닐 때 그 고개를 넘었다.

 

 

그러던 것이 내 나이가 쪼끔 들 무렵이다. 호수로 빙 둘러싸인 아랫말에 건실한 다리가 놓였다. 호수 건너편이 관광지가 되면서 아랫말 사람들의 세상으로 나아가는 방향이 바뀌었다. 그런 관계로 나중에 어른이 되어 고향을 찾을 때도 당연히 그 다리를 타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면서 차츰 어이넘어고개는 아랫말 사람들과 멀어졌다.

 

 

근데 지난 화요일이다.

고향에 볼일이 있어 차를 몰아 내려갈 때다. 문득 그 어이넘어고개가 생각났다. 어린 시절 그 고개를 넘나들었으니 왜 생각나지 않겠는가. 나는 그길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거기엔 내가 찾던 어이넘어고개는 없었다. 그 어름에 차를 세우고 지나는 분에게 물었다. 지금 딛고 있는 이 평평한 포장길이 그 고개라는 것이다.

 

 

나는 소로를 타고 깎여나가고 남은 산길을 걸어올랐다. 산은 그 산일 텐데 언덕만하다. 예전 이 어디쯤에 오르면 넓은 하평이 발 아래에 내려다 보일만큼 고개가 높았다. 그 어이넘어고개에 호랑이가 살았다. 어린 우리들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면 가끔 담배 피며 놀고 있을 호랑이를 보러 그 산을 찾았다. 연실 서로에게 쉿! ! 손가락으로 입을 막는 시늉을 해보이며 살금살금. 거기엔 호랑이가 사는 집이 있었다. 커다란 바위 아래 구덩이가 그의 집이었다. 운도 억시게 나빴다. 갈 때마다 똥 누러 갔는지 호랑이는 없고, 호랑이 발자국만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어이넘어고개를 넘어 읍내 장에 갔다. 장이란 원래 해가 다 지도록 늦게 파하는 법이다. 장에 가신 어머니를 바래러 나는 아랫말에서 이 먼데까지 걸어왔다. 밤이면 호랑이가 나타났다. 그는 긴 꼬랑지로 사람의 목덜미를 휙 때리거나 돌멩이를 집어던진다고 했다. 윗마을 누군가는 그 호랑이 꼬랑지에 탁 맞아 그만 숨을 거두었고, 누군가는 고개를 넘어오는 처녀귀신과 눈이 맞아 그와 사흘을 살다가 멀고먼 세상으로 가서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마을에 힘깨나 쓰며 꺼덕거리던 주먹이 있었는데 멀쩡한 그가 사흘만에 죽자 그 이야기가 돌았다. 그가 그라고.

그런 으스스한 어이넘어고개를 어머니가 홀로 오신다고 생각하면 걱정이 되어 눈물이 났다. 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어 울며 울며 오지 않는 어머니를 불렀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울음섞인 내 목소리를 먼데서 듣고, 황급히 고개를 향해 달려오셨다.

 

 

나라에 전쟁이 나면 마을 청년들은 이 고개를 넘어 전쟁터로 나갔고, 이 고개를 넘어 살아서 돌아왔다. 그런데 그 고개가 없어졌다. 차를 몰아 고향으로 들어서지만 고향이 고향 같지 않다. 그 옛날의 집들도, 나를 알던 이들도 다 떠나고 없다. 고향은 고향인데 어이넘어고개도 없고, 부모님마저 멀리 떠나가신 허전한 타인의 고향이 되었다.

 

 

교차로신문 2020년 9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