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사소한 일상의 소중함

권영상 2020. 8. 20. 20:25

사소한 일상의 소중함

권영상

 

 

나이 들면 남자에게 흔히 찾아오는 질환이 있다. 내게도 어느 날 그게 슬며시 찾아왔다. 내일 모레가 일요일이라 금요일인 오늘 오후 시간을 당겨 병원을 찾았다. 진료 후 처방전을 받아 병원 가까운 약국에 들러 약을 샀다. 돌아오는 길에 꽃집에 들렀다. 코로나19로 집에 와 있는 딸아이 생일을 위해 꽃 한 묶음을 샀다.

 

 

저녁엔 케이크에 불을 켜고 생일 노래를 불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코로나19로 멀리 흩어져 있던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산다. 딸아이가 외국에 나가 지낼 때의 불안감을 생각하면 함께 밥을 먹는다는 이 사소한 일상이 그렇게 소중할 수 없다. 촛불을 배경으로 웃는 사진을 찍고 또 찍고 케이크를 먹었다. 와인도 한 잔.

뭐 별것 아니어도 이런 게 사람 사는 행복 아닌가.

 

 

그러고 9시 반. 늘 하던 대로 동네 길을 걷기 위해 집을 나섰다. 이 일도 시작한지 오래 됐으니 내가 밥을 먹고, 글을 쓰고, 잠을 자는 일상만큼 빼놓을 수 없는 일과가 되었다. 늘 워드프로세서 앞에 앉아 하루를 보내는 내게 있어 걷는 일은 운동 이상의 행복한 쉬는 시간이다. 한 시간 동안 집을 떠나 불빛이 약한 어두운 길을 걷는 일은 여러모로 좋다. 나는 그 한 시간 코스를 부지런히 걸어 뿌듯한 마음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막 현관문을 열고 들어설 때다.

 

 

“아빠, 큰일 났어!”

딸아이가 내 앞을 막아섰다.

내가 오늘 들른 약국에 어제 오후 ‘코로나19’ 확진자가 들렀다는 거다. 그게 방금 코로나 안전 안내 문자로 날아왔단다.

“그래? 아빤 마스크 썼고 약사와도 적당한 거리를 두었으니까 뭐......”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과신하는 건 아니지만 내 건강 상태를 위태롭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샤워를 하려고 화장실 문을 열다가 돌아섰다. 손잡이를 돌리는 그 순간, 당당하던 내 마음이 바뀌고 있었다. 우선 그 정보가 사실인지 궁금했다. 방에 들어와 컴퓨터를 열고 구청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확진자 이동 경로를 살폈다.

그건 사실이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그의 이동경로에 분명 오늘 오후 내가 들른 그 약국 이름이 들어있었다. 아! 나도 모르게 짧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러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화장실로 가 손을 씻고, 또 씻고 또 씻고 나왔다. 아까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던 아내와 딸아이가 내게서 멀리 떨어져 앉아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와 대면하는 걸 피하려고 제 일에 골몰하는 듯도 했다. 아빤 코로나 같은 거 안 걸린다!며 휴지에 소독약을 묻혀 방문과 현관문의 손잡이와 번호키까지 닦고 또 닦았다. 그러면서도 하필 오늘 병원에 갔는지 그 일로 머릿속이 자꾸 뒤숭숭해졌다.

 

 

몇 시간 전까지 오늘 하루가 행복했는데, 지금은 그 행복도 마지막인 것처럼 느껴졌다. 다시 방에 들어와 확진자가 후송되는 병원과 우리나라 코로나 감염자 사망률을 찾았다.

“너무 걱정 말아요. 내가 옆에 있잖우!”

아내가 나를 달랬다. 그 사소한 위로의 말이 또 내겐 힘이 됐나보다. 아내의 말처럼 확진자가 거쳐 간 약국인데도 오늘 문을 열었다면 무슨 조치가 있었을 것도 같았다. 조용히 일주일이 지나간다. 코로나에 한없이 약해지는 나를 본다. 

 

교차로신문 2020년 8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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