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오랜 추억의 잠
권영상
오랜만에 베란다 끝에 붙어있는 창고문을 열었다. 열어본지 십여 년은 되는 듯 싶다. 쓰자니 그렇고 버리자니 그런 것들을 되는 대로 넣어두었을 테니 열어볼 일도 없었다. 창고는 그만큼 내게서 멀었고, 까마득한 기억 저편에 가 있었다.
근데 무슨 마음에서인지 그날은 이 안에 뭐가 있지? 하는 소년의 단순한 궁금함으로 문을 열었다. 밍크담요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지금은 신을 수 없는 구두와 묵은 잡지들, 전기 난로, 한 때 안 쓰고 못 살던 모자들, 덩치 큰 등산배낭......
내 과거의 한 순간들이 이 안에 들어와 있었다. 나는 지나간 앨범을 꺼내어 펼쳐보듯 하나하나 열어보고는 다시 자리를 잡아주었다. 문을 닫고 돌아서려는데 누가 등 뒤에서 나를 잡았다. 등산배낭이었다. 나는 배낭을 끌어내렸다. 한창시절, 계절을 가리지 않고 산을 오르던 그때가 생각났다. 그일은 너무나 오래 되었지만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아련한 과거다. 그 후로도 산행은 하고 있지만 대형 배낭은 잊고 산지 오래였다.
배낭을 풀었다. 텐트와 침낭이 나왔다. 산행으로 고단해진 몸을 집어넣고 자크를 올리면 금세 따스해지던 청색 침낭. 밥과 국그릇이 담긴 코펠, 석유용 구리버너, 만약을 대비한 가스통과 간편 가스버너, 수저와 포크, 세제병, 수세미가 담긴 지갑, 비닐에 감싸여있는 각종 등산지도와 나침반과 랜턴. 지금이라도 배낭을 짊어지고 집을 나서면 족히 몇 날을 머물고도 남을 장비가 그 안에서 나를 붙잡았던 것이다.
한 때, 나는 틈만 나면 이 배낭을 메고 집을 떠났다.
설악을 오르다가 날이 저물면 천불동이나 수렴동 계곡에서, 지리산 법계사 근방에서 텐트를 치고 산 속의 밤을 보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홀로 다녔다. 혼자 적막 산중의 밤과 마주하며 추위에 떨다가 잠들곤 했다. 그 때 나는 청춘이었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을 때 그 실수를 나에게 용서 받기 위해 떠났다. 내 삶의 행로가 바뀌었을 때도 그 대답을 듣기 위해 산을 찾았고, 나는 대개 산에서 용서와 대답을 얻어 내려왔다. 산정에서 천둥 벼락을 만날 때도, 길을 잃을 때도, 배고픔에 허덕일 때도 그것이 모두 인생의 일과 너무나 흡사해 혼자 산에 들어도 외롭지 않았다.
나는 창고에서 끌어내린 배낭을 어깨에 메었다. 어디론가 떠나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배낭을 차에 실었다. 내친 김에 안성 집으로 내려갔다. 가는 대로 뜰마당에 텐트를 쳤다. 오래된 텐트지만 쳐놓고 보니 탄탄하고 넓고 아늑했다. 방안에 세워둔 스포츠매트를 내어와 단단히 깔고 침낭을 꺼냈다. 버너와 코펠도 꺼냈다.
해질 무렵, 쌀을 씻어 코펠에 안치고, 그 옛날 산중에서 즐겨 해먹던 꽁치캔의 꽁치를 뜯어 김치찌개를 끓였다. 젊은 날의 나처럼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산중에서 보내던 그때의 밤처럼 어둠이 밀려왔고, 또렷이 뜨기 시작하는 별을 보며 저녁을 마쳤다. 그 옛날처럼 랜턴을 켜고 책을 폈다. 아득히 흘러가는 우주의 시간 속 나를 읽어갔다.
그런데 나이탓일까. 자정을 못 넘기고 방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내 이야기를 휴대폰으로 듣고 있던 아내가 나를 가만 두지 않았다. 한뎃잠에 감기라도 걸려 돌아오면 난 모른다며 타박 아닌 타박을 했다. 언제부턴가 집을 떠나와 1박을 하면 첫날은 늘 목이 잠겼다. 온도 차도 온도 차지만 잠자리가 바뀌어 그런 모양이었다.
천불동 계곡에서 자던 산중의 서늘한 잠은 이제는 내게 오랜 추억의 잠이 되고 말았다. 과거는 아름답지만 누구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이 나이에 깨닫는다.
교차로신문 2020년 8월 6일자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소한 일상의 소중함 (0) | 2020.08.20 |
---|---|
멋을 아는 동네 새들 (0) | 2020.08.08 |
자명종을 나누어 주다 (0) | 2020.07.29 |
장맛비를 기다리는 이들 (0) | 2020.07.23 |
선유도 공원 가는 길 (0) | 2020.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