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다를 보러가다
권영상
“가을 바다가 보고 싶다.”
내가 말했다. 해 놓고 보니 내 말에 갑갑함이 묻어있었다. 코로나로 인한 오랜 억압과 고립이 나를 힘겹게 한다. 관계가 점점 사라지면서 내가 점점 작아지는 듯 하다.
바다 앞에 서면 좀 살겠어! 나는 다시 소리쳤고, 말은 않지만 아내 역시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는 차를 몰아 동쪽으로 동쪽으로 달렸다.
사는 동안 바다가 그리울 때가 가끔 있었다. 나는 바다가 가까운 농가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런 까닭에 툭하면 바다에 나갔다. 바닷가 모랫벌에서 바닷가 마을 아이들과 뛰고 놀고, 씨름하고, 바다를 향해 조개를 던지고, 멀리 지나는 배를 향해 손을 흔들거나 알 수도 없는 불만으로 소리지르곤 했다. 풍랑이 일면 산더미 같이 몰려오는 파도와 마주 서거나 풍랑이 지나간 뒤의 상처 많은 해안의 모래톱을 걸어주었다.
그러다가 문득 수평선 너머로 흰구름이 피어오르면 모든 것을 잊고 노래 불렀다. 풍랑이 지나간 뒤의 바다는 별이 보내는 선물 같이 반짝인다. 파도에 밀려올라온 눈부신 조개껍데기들을 보면 안다. 그게 모두 작은별이 아니고 무언가.
안개가 끼거나 비오는 날, 방에 누우면 바다가 들을 건너 머리맡으로 달려왔다. 해안을 치는 바다는 대지를 흔들며 다가와 때로는 자장가처럼 때로는 유혹처럼 나를 이끌어냈다. 그떄에도 나는 바다에 달려나가 비를 맞으며 바닷가 마을 아이들과 헤엄을 쳤다. 지치면 고기잡이에서 돌아와 쉬는 빈 배에 올라 먼 바다로 나가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그것도 다 한때였다. 어느 겨울. 접안을 시도하던 고깃배 두 척이 풍랑에 파선하고, 친구의 형들과 아버지가 언 바다에 목숨을 잃는 걸 본 뒤부터 나는 바다를 멀리했다. 그후, 바다, 바다, 하는 이들을 보면 과잉 낭만주의자처럼 보였다. 직장을 얻어 바다를 완전히 떠나, 먼 도회에 살면서부터 바다는 향수처럼 내게 밀려왔다.
바다를 보면 살 것 같다는 내 안의 바다도 어쩌면 겨울바다 사건 이전의 세상 모르던 바다일지도 모른다. 근심 걱정 없던 시절의 동무 같은 바다. 나는 도시를 살아오느라 고된 노동과 아픈 상처가 배어있는 바다를 애써 잊으며 살아왔던 거다.
3시간을 달려 낙산사가 가까이 보이는 양양 근처 바다에 도착했다.
가을바다는 나를 마중하러 조그마한 포구 안까지 파랗게 밀려와 있었다. 들판처럼 순하고 잔잔하다. 나는 성큼 바다에 들어서서 그 옛날의 바다와 만난다. 바다빛이 깨어난다. 바다는 엎질러놓은 잉크빛이다. 가을바다는 온전히 거친 여름을 겪어낸 한편의 시다.
아내와 나란히 서서 시를 읽듯 잉크빛 바다와 마주한다.
바다는 그 옛날의 까까머리 소년이 희끗희끗해진 머리로 돌아온 나를 알아볼 텐가. 그 꿈 많고, 걸핏하면 바닷가에 나와 뛰고 소리치던 나를 알고는 있을 텐가.
돌아서는 내 눈에 해안가 모랫벌에 쌓여있는 즐비한 나무더미들이 들어온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건 폭우에 바다로 휩쓸려 나갔다가 다시 뭍으로 밀려나온 나무의 형해들이다. 바다는 그 많은 나무들을 뭍으로 돌려보내느라 얼마나 몸부림쳤을까.
바다를 보면 바다에게 나의 지친 일상을 털어놓으려 했는데 오히려 내가 바다를, 장맛비에 상처입은 바다를 다독여야할 형편이었다. 나는 나무더미 곁에 앉아 그들이 바다에서 겪었을 두려움과 공포에 떨던 일을 떠올린다. 가을은 세월과 함께 돌아왔지만 상처투성이다. 코로나 19가 주는 이 갑갑함을 어쩌면 달게 받아들여야할지 모르겠다.
<교차로신문>2020년 10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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