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아버지의 새벽밥

권영상 2020. 10. 14. 18:37

아버지의 새벽밥

권영상

 

 

잠자리에서 눈을 떴다.

긴장해 그런지 원하던 시간대에 깨어났다. 시계를 본다. 새벽 5시다. 오늘은 남해안에 닿아있는 조그마한 도시에서 치루어야 할 볼일이 있다. 가는 데만도 다섯 시간이 걸리는 먼 거리다. 약속시간에 대려면 6시쯤 집을 나서야 한다. 아내를 깨우지 않고 조용히 나가려 했는데 벌써 새벽밥을 준비하고 있다.

5시인데도 늦가을이라 그런지 바깥이 칠흑처럼 컴컴하다. 간밤 기상예보에 날씨가 올해 들어 가장 춥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거실이며 방바닥이 차다. 식탁에 앉아 아내가 차린 따뜻한 새벽밥을 먹으려니 새삼 그 옛날, 아버지의 새벽밥이 떠오른다.

 

 

오늘도 그때처럼 새벽 하늘에 삼태가 떠 있겠다. 늦가을 동녘 하늘에 똑똑하게 보이는 세 별. 그 별이 삼태, 삼태성이다. 예전 내가 어렸을 적 일이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이른 새벽 멀리 출타하실 때면 새벽밥을 지으시기 위해 그 삼태를 내다보시곤 했다. 시골 농부이신 아버지가 새벽 일찍 출타하실 일이란, 다른 게 아니다. 먼 산에 화목을 실으러 가시는 일이다. 화목이 귀한 고향엔 삼동을 따뜻이 보낼 연료가 없다. 아버지는 해마다 늦가을이면 아버지의 손위 형님이신 나의 셋째 백부님과 겨울 준비를 위해 한 차례 화목을 구하러 가셨다.

 

 

그때가 새벽 4시쯤. 두 분이서 각기 우차를 몰고 대관령 아흔아홉 구비를 넘어 진부에 사시는 곰실 아저씨댁을 향해 떠나셨다. 그 도정은 멀었고, 험난했다. 해가 서쪽으로 한참 기울어야 도착하신다고 했다. 백여 리 길. 그것도 맨 몸으로 가시는 게 아니라 우차를 끄는 누렁소와 함께, 누렁소의 걸음에 맞추어 산을 오르고 산 구비를 돌아 돌아 가는 길이다.

그 출발시간에 맞추려고 어머니는 이른 새벽에 깨어나셔서 잠깐잠깐 문을 열고 삼태를 내다보셨다. 뜰마당 오동나무 우듬지를 기준으로 삼태를 보아 시간을 가늠하셨다. 시계가 없던 시절의 삼태는 온전히 시계 그 자체였다. 그 새벽에 아버지는 어머니가 해 주신 새벽밥을 잡수시고 워낭소리 절렁대는 암소와, 백부님과 함께 머나먼 새벽길로 나가셨다.

 

 

그 길을 떠나 대화에 도착하시면 두어 달 전쯤에 해놓은 마른 나무를 싣고 되짚어 돌아오셔야 한다. 무사히 돌아오신다면 그 시각이 다음날 새벽 2시쯤이다. 대장정의 길이다. 아버지를 떠나보내시면 어머니는 뒤란 장독대에 정화수를 얹고 무사히 돌아오시기를 비셨다. 어린 나도 아버지를 보내고 잠이 안 오면 문을 열고 초롱초롱한 삼태의 시각을 재거나 아버지가 가고 계실 아득한 대관령 길을 어슴푸레 바라보았다.

 

 

동절기 땔나무를 준비하는 건 아버지의 고된 임무셨다.

아버지가 먼 산으로 떠나신 날이면 집안엔 정적이 흘렀다. 그날 하루만큼은 나쁜 말을 하지 않고, 나쁜 일에 엮이지 않고, 무심코라도 산 목숨을 해하지 못하게 하셨다. 아버지가 그 험난한 길을 무사히 돌아오시게 하려면 그래야 한다고 어머니는 신신당부하셨다.

아버지 없는 빈 집의 한낮이 가고, 자정이 가고, 그리고 두어 시간 뒤면 먼 들판에서 워낭소리가 들려오고, 이어 아버지와 백부님의 화목을 실은 우차가 돌아왔다. 그때의 누렁소 등은 땀으로 범벅이 됐고, 아버지는 긴장감으로 눈빛이 반짝이셨다.

 

 

싣고 오신 나무를 모두 내리고, 소는 외양간에 들고, 땀에 전 몸을 씻은 아버지가 사랑방에 들 때 나는 오동나무 우듬지를 본다. 어제 새벽에 보던 별 셋이 거기 초롱초롱 떠 있다. 아버지가 떠나시던 그 시각이 가까워진다. 장장 24시간의 아버지의 여정이 끝났다.

 

<교차로신문>2020년 10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