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시간
권영상
집으로 돌아가는 오후 6시 버스에 몸을 실었다, 코로나 탓인지 승객은 셋. 춘천버스터미널을 출발한 버스는 산 구비를 돌 때마다 저물어가는 시각 때문인지 속력을 낸다. 먼 산등성이 위의 하늘은 석양으로 붉지만 산 아래 마을엔 서서히 어둠이 깃든다.
어느 마을인지 푸른 연기 한 줄기가 길게 솟는다. 모르기는 해도 어느 농가의 마당에 떨어진 낙엽을 모아 태우거나 짚부스러기를 태우고 있겠다. 차창 너머, 먼 곳의 연기를 바라보는데도 내 코가 반응한다. 낙엽 연기의 알싸함을 느낀다. 코가 매운 듯이 벌름거린다. 오랫동안 살아오며 느끼는 후각 경험이다.
낙엽을 태우고 있는 불 곁엔 지금쯤 농가의 어느 아버지가 갈퀴를 들고 서 있겠다. 저녁 먹으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불을 두고 갈 수 없어 늦었지만 그 불 꺼질 때를 기다리느라 아내에게 지청구를 듣고 있을지 모른다. 때를 맞추어 일을 좀 하지 않느냐고 바깥을 내다보며 아내가 성화를 대면 일이란 게 그렇게 시간에 꼭꼭 맞추게 되느냐고 대꾸를 하겠다. 어여 들어오라는 말을 두고 아내는 안으로 들어가겠다, 지금쯤.
버스가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온다.
이제는 산 아랫마을에 하나 둘 불이 켜진다. 아직도 산등성이 위엔 오렌지색 노을이 걸려있다. 산과 하늘의 경계가 뚜렷하다. 능선 이쪽은 빛이 사라지는데, 저쪽은 빛이 살아있다. 어디로 날아가는지 새들 한 무리가 능선을 넘고 있다. 그들도 아침엔 그 너머에서 이쪽으로 날아왔다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능선을 넘어 아직은 빛이 있는 그들의 집으로 돌아가는 거겠다. 보라빛으로 자주빛으로 작아지더니 잔명 속으로 사라진다.
지금은 집을 떠나온 새들이나 사람들 모두 서둘러 귀가하는 시각이다. 그래서 그런지 버스도 날이 어두워질수록 점점 속도가 빨라지는 느낌이다.
주머니 속 휴대폰에서 카톡 수신음 소리가 난다.
“친구들 모두 잘 가고 있지요? 오늘 만남 즐거웠어요. 건강해 보여서 좋았구요.”
코로나 단계를 낮추자, 모처럼만에 학교 친구들과 답답함도 털어낼 겸 남이섬에서 모임을 가졌다. 오랫동안 우리는 코로나에 짓눌려 움츠리며 살았다. 이동이 부자유스러운 것도 그렇지만 정신적 고립감이 사람을 더 답답하게 했다.
그러나 오늘은 어떻든지 고립에서 해방되었다. 남이섬의 빛나는 가을과 친구들과의 오랜 정담과 웃음과 한 끼 식사와 저마다 챙겨온 간식과 마스크 그 너머에 숨겨진 낯익은 얼굴과 툭툭 던지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렇게 소중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서로 걸음을 맞추어 걷고, 마음을 맞추는 따스한 우정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우리가 누리는 행복은 내 안에도 있지만 이렇게 바깥에도 있다. 코로나 이후 우리가 답답하고 덜 행복한 까닭은 바깥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헤어질 때 잘 가라고, 이 나이에 욕심내지 말라고, 건강하라고, 다음에 또 보자고 서로 염려해주던 그런 사소하다고 느끼며 살아온 말들이 얼마나 소중한 행복인지 오늘 다시 안다. 모두 자신들의 자리로 되돌아가고 있는 친구들에게 나도 카톡 인사를 보낸다.
“아빠, 어디쯤이야? 저녁 먹고 오는 거야?”
그 무렵 딸아이한테서 카톡이 온다.
나는 응, 답장을 하며 춘천 사는 친구가 내 손에 들려준 선물을 내려다본다. 딸아이가 좋아할 간식이다. 버스에서 내리면 서둘러 집으로 들어가야겠다. 눈썹달이 차창 밖에 예쁘다.
<교차로 신문> 2020년 10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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