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희 시인론)
재미와 놀이로 가득찬 동시주머니
권영상
그는 누구인가?
김미희 시인은 제주에서 태어났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섬 속의 섬 제주 우도가 그의 고향이며 1970년에 태어났다. 우도는 제주 동쪽에 위치한 섬이다. 누운 소 모양을 하고 있어 우도라 한다. 성산포항에서 페리호로 출발하면 15분쯤 뒤 그 섬에 도착한다. 지하 천연수가 없어 빗물에 의존하여 살며 그 섬의 동남쪽에 분석구로 된 우도봉이 있다.
1840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는데 2010년 기준 인구는 1575명, 남자 756명 여자 819명. 김미희 시인의 고향은 대략 이렇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는 ‘일곱 살 때부터 문어를 잡을 줄 알았고, 여름 내내 우뭇가사리를 캐고, 소라를 잡고, 해녀들이 심봤다 수준으로나 만나는 전복을 따’기도 했다. 시인의 어머니는 그런 어린 딸을 보고 ‘너는 이다음에 커서 상군(깊은 곳에서 해산물을 제일 많이 따는 해녀)이 되겠다’고 할 정도로 수렵에 남달랐다.
또한 시인은 ‘동시 쓰기 - 섬 소녀를 만나는 일’(동시마중 2013년 9.10월호)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9년 동안 봄 가을 무려 18번이나 인근 우도봉으로 소풍을 갔고, 우도봉에선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시를 쓸 밑천’은 이 18번의 소풍을 통해 적립되었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도 1989년 대학 진학을 위해 고향 우도를 떠났고, 부산 울산 서울을 거쳐 지금은 천안에 정착해 살고 있다. 대학에서 문헌정보학을 공부했고, 얼마 전 천안에서 도서관 상주작가로 문학큐레이터 활동을 하기도 했다.
200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달리기 시합’으로 등단한다. 그리고 2009년 제 1회 환경부 그린스타트 창작동화공모전에 <색시가 필요해>로 은상을, 이듬해 제 1회 장생포 고래창작동화공모전에 동화 <하늘을 나는 고래>로 대상과 2013년 푸른문학상을 받았으며 동화 창작도 함께 한다.
동시집 <달님도 인터넷해요>(아이들판 2007)외 4권과 2019년에는 한 해 동안 동시집 <영어말놀이동시집>(뜨인돌어린이)<오늘의 주인공에게>(책내음),<야, 제주다>(국민서관)을 연이어 출간했다. 동화 <얼큰 쌤의 비밀저금통>(키다리, 2014년)을 필두로 7권의 동화집을 출간했으며, 청소년시집 <마디마디 팔딱이는 비트를>(창비교육 2019)외 2권을 출간하는 기염을 토한다.
등단한지 불과 17년 만에 19권의 저서를 냈고, 그 사이 6번의 다양한 창작지원금을 받았으며, 동시집 <동시는 똑똑해>로 서덕출문학상을 받았다.
*동시주머니 속에 들어가며
이 글이 시인론이니 만큼 김미희 시인의 여러 저작물 중에서도 동시집 5권을 대상으로 그의 시 세계를 조명하려한다. 그 5권은 다음과 같다. 첫 동시집 <달님도 인터넷해요>(아이들판 2007), <네 잎 클로버 찾기>(푸른책들 2010), <동시는 똑똑해>(뜨인돌어린이 2012), <예의 바른 딸기>(휴먼어린이 2017), <영어말놀이동시>(뜨인돌어린이 2019)이다.
1. 첫동시집 <달님도 인터넷해요> 산책하기
‘첫-’으로 시작되는 말은 대충 이렇다. 첫걸음, 첫경험, 첫눈, 첫돌, 첫선, 첫정, 첫추위 등이다. 주로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맞이하거나 처음 시작하는 행위에 주로 쓰인다. 비록 처음에 해당하는 말에 쓰이긴 하지만 이 말과 만나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 일의 미래를 금방 짐작할 수 있다. 사람의 됨됨이, 또는 그 겨울의 추위 정도는 첫선이나 첫추위를 겪어보면 대충 알 수 있듯이 첫 동시집이라는 말도 그렇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은 시인이 관심을 보이는 소재와 주제를 대하다 보면 그 시인의 앞으로의 행보를 점쳐볼 수 있다. 그 점에서 첫동시집에 실린 시들을 일별해 보는 건 흥미롭다.
때로 첫동시집이 뛰어나 처음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시인의 첫동시집은 뜨거운 열정과 패기 때문에 시가 성글거나 목소리만 크고 형상화가 좀 덜 됐다거나 표현이 좀 과하거나 시가 갖추어야할 요소들이 시의 목소리에 치여 조금 덜 세련된 시를 만나게 된다. 그 점을 감안하고 또 감안하며 읽는 첫동시집의 재미는 오래된 시인의 능란한 시보다 더 흥미롭고 순정적임을 나는 충분히 안다. 첫동시집엔 시인의 은밀한 시심의 고향과 청년기의 들끓는 문학정신과 세계관이 노출되어 있어 그 시인을 짐작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시간을 들여 첫동시집을 충분히 산책하듯 살핀 후, 그 이후에 출간된 4권의 동시집 속에 유유히 흐르는 시의 흐름을 짚어볼 생각이다.
가) 동시와 놀다
후둑후둑
한 방울 두 방울
굵은 빗방울이
널따란 보도블록 위에
한 조각 두 조각
퍼즐 맞추기를 한다.
빗방울이 퍼즐 맞추며
비 그림 완성!
짝짝짝
보도블록이 다 젖었다.
이 시 ‘퍼즐 맞추기’는 보도블록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점점 빗자국을 넓혀가는 모습을 한 조각 한 조각 퍼즐을 맞추어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끝내 보도블록이 빗방울에 다 젖을 때 퍼즐 맞추기도 끝난다. 마치 한 소녀가 커다란 퍼즐 맞추기 판을 앞에 놓고 퍼즐을 맞추어가는 놀이를 보는 듯하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빗방울이 떨어져 땅이 젖어가는 모습을 퍼즐 맞추기 놀이라고 보는 그 독특한 눈이다. 그 어디에도 때묻지 않은 신인다운 새롭고 신선한 눈이 아닌가. 이만하면 시인의 앞날이 재미있고 흥미로워지겠다.
아쉬운 건 빗방울이 완성한 그림이 어떤 그림인지를 말해줬더라면 더 큰 공감을 얻을 수 있을 텐데 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그만한 일로 시인을 탓하기엔 아직 이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김미희 시인의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나 시를 만들어가는 방식이 놀이를 통해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그 점은 매우 흥미롭고 무엇보다 어린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어서 믿음직스럽다. 놀이 선호는 동시 독자인 어린이의 특성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김미희 시인의 시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이 한편의 시로 짐작해 본다는 건 너무 성급한 일일까.
내가 연필 미용실/ 문을 두드리면/미용실 문이 열린다// 한 번에 손님은 하나/ 모두 똑같은 머리 모양이다/ 말쑥한 대머리/ 거울 볼 필요도 없다// 우리 아빠 연필은/ 아빠가 미용사였고/ 우리 엄마 연필은/ 우리 엄마가 미용사였다는데// 나는 내 연필을/ 자동으로 깎아주는/ 대머리 미용실에 보낸다 (후략)
‘연필깎이’라는 이 시 역시 연필을 깎는다는 행위를 놀이로 해석하고 있다. 시인은 여성답게 이 행위를 미용실에서 머리하는 일에 빗댄다. 연필 깎는 일은 이제부터 놀이가 되고 재미있어진다. 아빠는 자신의 연필을 자신이 손수 깎는 미용사였고 엄마도 그렇다. 그러나 나는 아직 내 연필을 손수 깎지 못하고 연필깎이를 이용해야 한다. 그게 언제가 될지 안타깝다는 시이지만 이 시 역시 앞의 시와 마찬가지로 시인이 타자나 사물에게 자신이 원하는 어떤 미적 행위를 가하고 싶어함을 발견할 수 있다. 어쩌면 그 일이 놀이의 시작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 가볍지만 똘똘하고 쏠쏠한 재미
어, 너 똥 밟았네 / 푸하하 속았지롱!// 선생님, 남대문 열렸네요/ 히히히 속았지요!// 오늘 수업은 3교시만 한다/ (와~)/ 대신 재미있는 얘기 들려주겠다/ (와~)// 옛날에 누렁소가 산을 넘어가고 있었어/ 한 고개 넘어가고/ 두 고개 넘어가고/ 세 고개 넘어가고/ 네 고개 넘어가고/ ....../ (에이, 언제까지 넘어가요?)// 만우절이 다 지날 때까지/ 소가 넘어갔대
이 시 ‘만우절’ 속에는 짓궂은 아이가 들어 있다. 그 아이는 웃길 줄 알고, 놀릴 줄도 알고, 남을 속일 줄도 알고,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절대 손해를 끼치거나 상처 입히는 아이는 아니다. 오히려 이런저런 웃음을 통해 아이들의 시선을 쥐고 그들을 안타깝게도 애닯게도 만든다. 이야기를 만들어낼 줄도 알지만 시선을 움켜잡을 줄도 아는 똘망똘망한 아이다. 한시도 가만 앉아 있거나 조용히 창밖 세상을 응시하는 아이가 아니다. 재간 있는 말과 재재바른 몸으로 지금 이 시간(만우절)을 즐긴다.
김미희 동시의 기본 축은 이 시의 ‘재미’와 앞의 시의 ‘놀이’에 있다. 그 어떤 시도 모두 여기에서 출발한다. 그의 시 안에는 웃음주머니를 가진 재재바른 아이가 들어있다.
다) 교실을 배경으로 하는 동시
선생님이 노랗고 동그란
달님 그림을 나눠 줬어요
정월대보름 달님에게
소원을 적어
비밀상자에 꼭꼭 넣어두면
달님이 소원을 들어준단다.
아이들 질문이 쏟아졌어요
3반에도 나랑 이름이 같은 애 있는데
달님이 헷갈리면 어쩌죠?
오월에 이사 가는데
나를 못 찾으면 어쩌죠?
선생님, 달님도 인터넷해요?
이메일 주소도 적을래요
소원은 한 줄인데
나를 알리는 글자들이
달님 얼굴에 가득이다
‘달님도 인터넷해요?’라는 시다. 이 작품은 동시집 <달님도 인터넷해요?>의 표제 시이기도 하다. 표제 시에 동시집의 많은 동시들 중 가장 대표적인 동시라는 부담을 안길 필요는 없다. 하지만 동시집의 전체적 성향을 대강 유추해 볼 수는 있겠다.
이 시의 공간 배경은 교실이다. 선생님이 있고, 아이들이 있고, 교수학습 행위가 있다. 선생님은 둥근 원이 그려져 있는 종이를 나누어주며 달님에게 소원을 적어 비밀상자에 넣어두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거기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이 후반부 시다. 세 명의 아이가 반응을 보인다. 동명이인인 나와 이사 간 나와 이메일로 소원을 적어 보내겠다는 아이다. 이들이 그러는 까닭은 달님이 못 미더워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소원이 비밀스럽기 때문이다. 이 시가 표제시가 될 수 있었던 건 모르긴 해도 아이들의 반응이 ‘달님도 인터넷 하느냐?’에 있는 듯하다. 그러니까 아이들의 사유를 달이라는 천체공간으로 확장시킨 대범성과 편지글보다는 인터넷을 선호하는 현실성과 엉뚱한 유쾌성에 있지 않을까 한다. 시인의 역할 속엔 독자의 시간과 공간 영역을 넓혀주는 교육성이 있음도 외면할 수 없다.
교실을 풍경으로 하는 시라 할지라도 김미희 시인의 시는 엄숙하기보다 재잘재잘 수다스럽다. 즐겁다. 유쾌하다.
그 외에도 김미희 시인의 교실을 다룬 동시는 많다. ‘발표하러 나갈 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 다리가 후들후들’(호박이 되는 날)이라든가 ‘과학시간에 우리 반은/ 소나무를 관찰했다’(나무가 쓴 관찰 기록장)등 모두 공부를 놀이처럼 즐겁고 재미있게 한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학습 세계로 끌어들이는 시가 교실동시들이다.
동시의 주 독자는 어린이다. 그들의 주된 활동 공간은 학교와 교실이고, 그들은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학습활동에 바친다. 시인은 그 점을 인식하고 교실 안에서 일어남직한 일을 학습 친화적인 시로 승화시켜낸다.
라) 생명에 대한 살가운 사랑
산개구리야/ 불러주면/ 산개구리/ 산으로 가고// 강아지풀아/ 불러주면/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고// 쇠똥구리야/ 불러주면/ 쇠똥구리 열심히/ 쇠똥을 굴리는데// 하루살이야/ 불러주기 싫어요/ 하루만 살까봐/ 여러날살이야/ 그렇게/ 불러봅니다.
동시 ‘이름’이다. 산개구리야, 불러주면 개구리는 산으로 가 산개구리가 되듯이 하루살이야 불러주면 날벌레는 이름대로 하루만 살고 죽을까봐 ‘여러날살이야’ 하고 불러주는 화자의 목숨붙이에 대한 살가운 사랑과 애정이 담겨있는 시다. 목숨붙이는 누구나 제 이름에 걸맞게 산다는 오래된 통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동시집의 동시 배치는 놀이동시에서 재미동시로, 거기에서 다시 교실동시로, 교실동시에서 다시 세상의 보편적인 일상의 소재들로 자리를 바꾼다. 이 동시가 그렇다. 앞의 재재바른 동시에서 떠나와 차츰 차분해지면서 사물이나 생명의 본질과 본성을 찾아가고 있다.
은행나무 아래/ 노랑 발자국/ 누구 발자국일까?// 예쁜 아기오리들/ 소풍 왔었나?// 발자국도 노란/ 아기 오리들/ 나무둘레 옹기종기/ 놀다 갔구나// 찻길에도 노랑 발자국/ 선생님 말 안 듣는 아기오리/ 꼭 있었을 거야// 말썽쟁이 아기오리 무사했을까?/ 선생님은 또 얼마나 놀랐을까?// 은행나무도 덩달아 놀랐는지/ 노래진 얼굴 아직 그대로다
동시 ‘은행잎’도 그렇다.
은행나무 아래 떨어진 노란 은행잎은 시인에게 노란 아기오리 발자국 이미지로 선뜻 들어선다. 놀라울 만큼 반짝이는 은유다. 노란 은행잎에서 노란 아기오리 발의 이미지를 떠올려 낸다. 그런 까닭으로 떨어진 채 정지되어 있는 은행잎들은 은행나무 둘레로 소풍 온 아기오리들로 살아난다.
이 시에서도 시인은 찻길로 날아든 은행잎들을 바라보며 그것이 마치 말썽쟁이 아기오리의 발자국인 양 그들의 무사를 빈다. 시인의 사물을 대하는 속 깊은 정이 드러나는 시다.
마)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
예전에는 너를 풀밭에/ 아침에 풀어 놓았다가/ 저녁에 사람들이 데리러 올 때까지/ 소들은 풀을 뜯으며/ 놀다가 자다가 주인을 기다렸습니다// 이제/ 풀이 소들을 기다립니다/ 오늘은 오겠지?/ 내일은 꼭 올 거야!// 풀은 소를 기다리며 키를 키우다가/ 자꾸 자꾸 자라서/ 내 허리께까지 자랐습니다/ 기다려도 오지 않을/ 소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동시 ‘소’다. 시의 배경이 어린 시절의 시인이 18번이나 소풍을 갔다는 우도의 우도봉 같은 풍경이다. 오전이면 주인은 너른 풀밭에 소를 풀어놓고, 저녁이면 소는 주인이 데리러 올 때를 기다리던 그 옛날의 소 이야기다. 그러나 지금은 그 옛날의 소들이 어디론가 다 떠나고 혼자 남은 풀들만 오지 않는 소들을 기다리고 있다.
시인은 어느 날 고향 우도봉에 올라 허리께까지 무성하게 자라는 풀을 보며 이제는 고향을 떠나가고 없는 그 옛날의 친구들과 자신을 발견한다. 이 안타까움과 그리움은 시인 자신의 아픔이면서 동시에 도시 지향적인 시대의 아픔으로 읽힌다.
시인 역시 우도봉의 풀밭과 소라와 문어를 잡던 우도의 바다를 떠나 고향과는 먼 도회의 삶을 산다. 비록 시인이 고향을 떠났다 해도 이제 시인에게 우도는 그만의 영원한 동심의 고향으로, 또한 시심이 일어나는 시의 고향으로 그의 내면에 간직될 것이며, 이후 그가 세상을 볼 때 그 밑바탕에 은은히 남아 그 무엇으로 작용할 것이다.
2. 재미로 가득찬 동시주머니
어쩌면 나는 김미희 시인의 시 세계를 첫동시집 한 권으로 다 이해했는지 모른다. 그 만한 첫동시집 <달님도 인터넷해요?>는 김미희 시인의 시의 원형이고 사유의 근원이고 시 창작의 산실임이 분명하다. 그의 시는 한 마디로 재미와 놀이로 가득 차 있는 동시주머니다. 시인은 초기시의 재미성을 이후의 4권의 동시집을 통해 끝없이 살리고 키우고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그 끝이 어디쯤인지 예측 불가능할 만큼 그의 시는 흥미롭게 변한다.
얼마 남지 않은 지면을 통해 김미희 시인의 ‘재미’는 어디서 오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가) 모든 대상을 의인화한다
할머니가 키로/ 보리를 까분다.// 거푸거푸 까불까불/ 가벼이 들까부는 녀석들은// 냉큼 키 밖으로/ 쫓겨난다.// 묵직하게 듬직하게/ 자리를 지킨 알곡들만/ 키 안쪽을 차지했다.
-동시집 <네잎 클로버 찾기> 중의 ‘까불지 마’
전기톱을 거부한/ 나무와 나무꾼이/ 대화를 나누는 시간// 톱이/ 나무꾼에게/ 나무꾼이/ 톱에게/ 유언을 남기는 시간/ 유언을 받아 적는 시간// 새로 나게 해 달라는/ 꼭 그렇게 하겠다는/ 약속의 시간// 나무는 나무꾼이/ 약속을 지키리라 믿습니다// 나무꾼 얼굴에 흐르는/ 땀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나무는 이제 아픔으로 내려놓고/ 눈을 감습니다
-동시집 <예의바른 딸기> 중의 ‘톱질’ -감다2
김미희 시인의 시 대부분이 의인화된 시라고 본다면 틀리지 않다. 세상의 모든 사물을 사람과 동등하게 보는 평등관이 시에 작용했을지 모른다. 위의 시에서 보는 것처럼 할머니가 키질 하는 키 속의 보리도 까불까불 까불대는 인격적 존재다. 등장만 시키는 게 아니라 재재바른 운동감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키 밖으로 쫓아내는, 의인화가 아니고는 얻을 수 없는 재미를 잊지 않는다.
아래의 ‘톱질 –감다2’ 에는 나무와 나무꾼이 전기톱을 앞에 놓고 ‘새로 나게 해 달라’는 나무의 유언과 나무꾼의 약속, 그 약속을 믿고 조용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나무 이야기다. 같은 의인화도 동시집 발간이 거듭될수록 깊어지는 양상을 보인다.
나) 대상을 낯설게 본다
내 새 우산이/ 보고 싶어/ 비들이 내려온다// 내 새 장화가/ 보고 싶어/ 비들이/ 뛰어/ 내려온다
-동시집 <예의 바른 딸기> 중의 ‘어디 보자’
쿵쾅대지 마/ 인터폰 울릴라// 뛰지 마 Do not run/ 아랫집에서 올라온다// 어제 우리 집은/ 10층에서 1층으로 이사했는데/ 엄마는 또 이러겠지// 뛰지 마/ 두더지 올라온다
-동시집 <영어말놀이동시> 중의 ‘Habit 습관’
시인은 세상일을 낯설게 본다. 낯설게 보여야 세상이 진부하지 않고, 그래야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다면 시인은 ‘어디 보자’ 처럼 보편적 행위의 순서를 거꾸로 본다. 비가 오니까 우산을 쓴다 라거나 비가 오니까 장화를 신는다는 이 평범한 일상의 순서를 뒤집는다. 내가 새 우산을 쓰니까 새 우산이 보고 싶어 비가 내려오고, 내가 새 장화를 신으니까 새 장화가 보고 싶어 비가 뛰어내린다고.
‘Habit 습관’ 역시 그렇다. 쿵쿵대면 아래층에서 쿵쿵대지 말라고 사람이 ‘올라온다’. 시인은 그 ‘사람이 올라온다’는 보편적 사건을 뒤집고 ‘두더지 올라온다’는 뜻밖의 말로 독자의 무심한 독법을 번쩍 때린다. 거기에서 폭소는 터지고 시는 새삼스럽게 재미있어진다. 이 모두 심심한 현실을 새롭게 환기시키려는 시인의 의도 때문이겠다.
다) 상황을 놀이화 한다
띄어쓰기/ 실수하면/ 아버지를/ 가둘 수/ 있는 곳
-동시집 <예의바른 딸기>의 ‘가방’
목도리를 뜨고 남은 풀어진 털실을 감자/ 너무 춥다 목도리 돌돌 감자/ 땀난다 머리 감자/ 개운하니 잠 온다 눈 감자//감자/ 감자/ 감자/ 감자/ 감자 먹고 싶다, 찐 감자
-동시집 <예의 바른 딸기>의 ‘감자의 날’
하나 더 하기/ 하나/ 하나 더 하기/ 하나/ ./ ./ ./ 하나 one/ 더 하기/ 하나는// 큰 하나/ 우리 모두이지요.
-동시집 <영어말놀이동시> 중의 ‘Everyone 모두’
맨 위의 시 ‘가방’은 일종의 퀴즈 놀이다. 가방이란? 하고 물으면 띄어쓰기 실수하면 아버지를 가둘 수 있는 곳! 하는. 김미희 시인의 재치가 돋보인다.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라는 띄어쓰기에 대한 시쳇말을 ‘가방’이란 시에 끌어들이고 있다.
‘감자의 날’은 동음이의어인 ‘감자’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운율도 살리고 재미도 이끌어내면서 두 낱말의 구분도 습득하는 전형적인 말놀이다.
‘Everyone 모두’ 역시 ‘감자’ 처럼 같은 말 ‘하나’를 반복하고 있다. 고개를 끄덕이며 같은 말을 반복하는 그 행위 자체가 어린이들에겐 일종의 놀이다. 그 하나하나가 모두 모여 Everyone 이 된다고 보는 시적 기교가 뛰어나다.
시인은 시를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대상을 의인화하거나 퀴즈, 말놀이, 또는 반복 행위를 통한 놀이화라든가 기존의 세상을 뒤집어보는 낯설게 하기 등을 실험하고 있다. 이로써 김미희 시인의 동시가 어디에서 출발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가 분명해졌다. 동시는 재미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의 그런 동시관은 시종일관 재미있는 쪽으로 향하고 있다. 첫동시집의 시들이 좀 가볍고 재재바른 유쾌한 재미를 보여주었다면 그 이후의 시들은 재미에 의미를 입힌 생각하는 재미로 발전하고 있다. 등단 17년의 중견 시인의 시가 해를 거듭할수록 예측 불가능한 ‘재미’의 방향으로 끝없이 파고들어 일가를 이룬다면 이는 동시사적으로 행복한 일이다.
그 외에 명화를 시로 시도해 보거나 영어 단어 습득을 도와주는 영어말놀이 동시로 시인은 시의 영역을 넓히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그의 시가 과거의 어느 한 시점에 매여 있는 것이 아니고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많은 문명 친화적인 시들이 그 말을 증명하고 있다.
김미희 시인의 시엔 똑소리날 만큼 총명한 화자가 들어있고, 재재바르고 유쾌한, 그리고 여성시인이 접근하기 불편한 부분을 다루는 대범성도 있다. 이런 유형의 화자와 교실을 배경으로 하는 재미성이 그의 동시에서 더욱 활짝 피어나길 기대한다.
참고자료
<맛있는 시, 영혼의 밥 그리고 요리사> 김미희 2009. 푸른문학회 세미나
<동시 쓰기 -섬 소녀를 만나는 일> 김미희 2013. 동시마중 9.10월호
<시인은 외롭게, 시는 외롭지 않게> 김미희 2016. 어린이와문학 2월호
<달님 아줌마 이야기 들어 보실래요> 김미희 2017. 열린아동문학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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