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방향을 ‘코로나19’에서 찾다
권영상
안녕하세요?
어쭙잖은 일이긴 하지만 이번엔 우리 문학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나는 그 이야기의 단서를 지금 우리가 감당하고 있는 ‘코로나 19’에서 찾아볼까 합니다. ‘코로나 19’는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고, 우리는 문학인으로서 그 질문에 반드시 답해야 합니다.
2020년 4월 10일 현재로 전 세계 ‘코로나 19’ 확진자는 159만 5350명에 이르고, 사망자 누계는 9만 5455명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 거대한 질병이 창궐한 지역은 지구의 부를 독점하고 있는 이른바 온대 벨트에 위치한 나라들입니다.
이들 국가가 ‘코로나 19’로 셧다운에 들어가자, 놀랍게도 파란 하늘이 돌아왔습니다. 공장은 쉬고, 원유 생산은 줄고, 자동차가 멈춘 덕분에 매연으로 몸살을 앓던 하늘이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문학의 가능성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아침마다 아이들을 유치원과 학교에 보내고 서둘러 출근하던 부모들은 휴업과 재택근무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 만큼 가족과 대화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늘어났고, 이전에는 모르고 살아온 자신을 조용히 돌아보는 여유를 갖게 됐습니다. 일 보다 가족의 소중함을, 일 보다 넉넉해진 여유의 고마움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공장이 돌아가지 않으면서 우리들 소득의 주머니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삶의 규모를 줄이는 일입니다. 절약이나 절제가 아니라 그만치의 수입에서 안락과 행복을 찾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간 우리는 욕망의 소비 잔치에 빠져 지구를 얼마나 망쳐왔는지 다 압니다.
이제는 물질에서 얻어지는 행복이 아닌 새로운 정신적 가치의 행복이 필요합니다.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이라 여겼던 것에서 참 가치와 참 행복을 찾아야합니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라지만 우리는 여전히 배고프고 불행하다며 아우성쳤습니다. 내게 돌아올 부를 대기업이 몽땅 빼앗아갔다고 지금도 분노하고 있습니다. 물질에서 벗어나지 않고는 나의 불행이 너 때문이라는 식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세상은 유기체적 공간입니다. 나는 나 홀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나를 둘러싼 가족과 이웃과 국가와 세계와 긴밀한 관계 속에 존재합니다. 코로나용 마스크를 쓰는 건 코로나로부터 나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지만 또한 타인을 배려하기 위한 것임을 몸소 배웠습니다. 질병 감염의 고통은 나의 고통이면서 우리가 사는 지역 공동체 전체의 고통이 될 수 있다는 것도 터득했습니다.
박쥐에게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비롯됐다는 설로 보아 생태계를 비트는 일을 말아야 합니다. 앞서 나타난 에볼라 바이러스나 메르스도 생태계와 관련이 있으며, 인류가 겪어보지 못한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짧은 주기로 연이어 인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생태계를 위협하는 것 중에 국가가 국력을 핑계로 저지르는 출산 장려 정책이 있습니다. 45억 명이 적정선이라던 지구 인구는 이미 75억을 넘어섰습니다. 밀림이 사라지고 북극의 얼음이 녹아내리는 것도 과다한 인구가 저지르는 생태계 파괴입니다. 지구는 출산 억제를 호소하는데 국가는 출산을 강요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상식이라 했던 것들, 아기는 낳고, 소비는 미덕이고, 부는 행복을 가져다주고, 지구오염을 목도하면서도 경제는 성장해야 한다는 논리는 이제는 상식이 아닙니다. 비정하지만 '코로나19'가 이를 아프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진실 같은 가짜 상식을 부정하고 새로운 참 진실을 찾아나서는 일이야말로 진정 문학이 가야할 길이라 생각합니다. ‘코로나 19’는 우리에게 수많은 가능성과 과제를 던져놓았습니다. 문학은 이 과제에 하나하나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2020년 4월 11일자 한국동시문학회 공식카페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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