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

권영상,향기로운 이야기꾼

권영상 2020. 7. 23. 14:09

 

<권영상 인물론>

 

권영상,향기로운 이야기꾼 

하청호

 

 

권영상은 강원도 사람이다. 또한 강원도는 권영상을 품고 있다.

그래서 그에게는 강원도의 자연과 인정이 살아 숨쉬고 있다.

권영상은 서울에서 꽤 오래 살았지만 도회적이지 못하고 투박스럽다.

나는 이런 그를 좋아한다. 큰 키에 조금은 건들거리며 걷는 모습도 좋고, 술이라도 한 잔하면 어리광을 부리는 장난기도 사랑스럽다. 이럴 때면 그의 큰 몸집 속에는 귀여운 어린이가 함께 살지 않나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권영상과의 인연은 지금부터 꼭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릉의 C 시인의 출판기념회에 초대받아 참석했을 때 일이다. 당시 그의 첫인상은 강원도의 땅모양을 닮은 큰 키에 우뚝한 코, 그에 못지않은 문학적 열정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 후 시로 읽는 삼국유사인 동시집 ‘동트는 하늘’ 의 발문을 쓰면서 그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문학적 토양이 넓고 깊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문학은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인간과 인간,인간과 자연,자연과 자연이 서로 소통하면서 그 속에 담긴 우주적 질서,생명의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만나는 기쁨 인 것이다.

권영상은 이 소통을 함에 있어 자유분방하며 쌍방이다. 쌍방이라는 것은 그의 상상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상상력이라는 것은 인간이 동물과 구분되는 잣대가 된다. 사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이 상상력이 소멸되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 한다.

 

 

그러나 그는 50대 중반의 나이에도 상상력을 잘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교육심리학자 피아제 (Piaget)는 ‘어린이는 마법, 의인화. 모방의 세 가지에 의해 정신생활의 많은 부분이 이루어진다.’고했다.

특히 마법과 의인화는 상상력과 현실의식의 뒷받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의 독특하고 창조적인 상상력은 이것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하고 넘쳐났다.

 

권영상은 1979년 ‘아동문예’에 동시 ‘새’가 천료된 이후 전념하던 동시작업에 한계를 느낀다. 그의 샘솟는 상상력은 동시라는 그릇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장르에 관심을 가져 1990년 ‘한국문학’ 에 수필 난(蘭 )으로 신인상에 당선되고,1991년 ‘시대문학’ 봄호에 시 ‘발’ 외 5편으로 신인상에 뽑힌다. 더 나아가 1993년 MBC 창작동화 공모에 단편 ‘쥐라기 아저씨와 구두’ 로 당선되어 동화의 영역까지 창작의 지평을 넓혀나갔다.

 

 

권영상은 그가 나고 자란 강원도의 자연과 살붙이를 통해 다양한 문학적 상상력을 이끌어 내었으며 이러한 상상력의 산물을 담을 그릇,즉 다른 장르를 차근차근 일구어 왔던 것이다.

그는 강원도의 기질을 사랑했고,그곳의 사람과 하늘과 별과 꽃,바다와 강을 사랑했다. 이런 것들이 그를 키운 전부라고 했다. 펜을 들면 거기에서는 맑은 강원도의 샘물소리가 출 졸 출 흘러나왔고 대관령 그 위에 펼쳐지는 장엄한 저녁노을을 신념처럼 사랑한다고했다.

권영상의 가슴 속에는 그리움과 한(恨)이 있다. 때로는 그리움과 한을 주제하지 못해 방황하기도 하고 가까운 사람에게 그것을 표출하기도 한다. 이것은 그가 세상을 소통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기 도하다.

 

 

그의 어린 시절은 간난과 힘겨움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신산(辛觸)한 날들의 상처는 그에게 삶의 가치와,세상을 보는 폭넓은 눈,자연과 소통하는 상상력을 키워주었다. 생각하건대 그의 인간다움은 이러한 상처에서 연유된다.

시인 복효근은 ‘향기가 배어나는 사람의 가슴 속엔 커다란 상처가 하나 있다. 잘 익은 상처에선 꽃향기가 난다.’ 고 했다.

권영상은 가슴 속의 상처를 향기로 바꿀 줄 아는 사람이다. 그의 수많은 창작물을 읽으면 하나같이 인간다운 냄새가 난다. 특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한을 문학적 향기로움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대표작 중의 하나인 ‘담요 한 장 속에서’ 나타나는 ‘가만히 일어나/ 내발을 덮어주시는’ 아버지,그에게는 그리움의 상처로 남고,가슴 속에 회한인 병약한 어머니, 어머니가 넘겨 준 당신이 쓰던 벼루와 먹,몽당붓 역시 아픈 상처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그리움과 회한의 상처를 극복하여 삶의 원천으로 삼고, 창작의 향기로운 매듭으로 엮어내는 것이다.

‘모모’ 의 작가 ‘미하엘 엔데’ 는 인간이 자기에게 내면세계가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면 자신의 진정한 가치도 잊는 것이다.’ 라고 했다.

 

 

권영상은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한다. 내면세계에서 꿈틀거리는 새로운 생각들을 용케도 찾아내어 작품으로 빚어낸다.

언젠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생명성은 끝도 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한다. 지금의 나를 부인하고 새로운 나를 찾으려는 시도로 꽉차 있는 것이 생명성이다.’ 이 말은 ‘미하엘 엔데’ 의 말과 상통한다.

그는 정체(停墆)를 두려워한다. 그가 말한 생명성은 이 정체를 탈출하기 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의 동화와 수필에 대한 탐구도 시문학의 정체에 대한 두려움에 연유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것은 새로움을 갈망하는 생명성에 기인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인지 그는 여행을 즐긴다. ‘괴테’ 역시 ‘인간은 노력하는한 방황하게 마련이다.’ 라고 했다. 그는 작가로서 새로운 변화를 위해 안락한 일상을 버리고 인도 네팔 이집트 등을 돌아다녔으며,여행이 끝나면 새로운 창작의 세계를 열어나갔다.

 

 

권영상,그와 나는 연필시 동인으로 오래 함께했다.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는 참 부자다. 왜냐하면 그가 즐겨 입는 사파리 형식의 큰 주머니에는 시와 동화의 소재가 가득 들어있기 때문이다. 오늘 끄집어내면 며칠 후 다시 꽉 채워질 것 같은 그의 주머니. 그러니 부자일 수밖에 없다.

언젠가 서울에서 모임을 갖고 헤어질 때 길이 서툰 나를 서울역 까지 데려다 주고 돌아서는 그에게는 사람향기가 났다. 향기로운 그와 함께하면 내 몸에도 향기가 배어 들 것 같다.

 

<시와 동화> 2008년 가을호, 통권 45호, 권영상 특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