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희 시인 동시 해설>
세상을 찬찬히 바라보는 시인의 여유로움
권영상(시인, 동화작가)
봄이 오면 들판에 민들레꽃이 피지요. 민들레 한 떨기 피는 데는 다 그 배경이 있습니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오는 계절과 낮은 들판이 그 배경입니다. 그렇듯 시 한 편이 피어나는데도 그런 시가 쓰일 수밖에 없는 배경이 있습니다.
유미희 시인의 시에는 보여지는 대상이 아닌 보고 있는 세상을 노래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민들레꽃을 노래하는 듯하면서도 민들레꽃이 뿌리내리고 있는 우리네 들판을 노래합니다. 그러므로 유미희 시인의 시를 읽고 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유미희 시인은 바로 그런, 남과 달리 좀 특별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 시인은 이미 네 권의 ‘잘 나가는’ 동시집을 낸 베테랑 시인입니다. <고시랑거리는 개구리>는 간결하면서도 명쾌한, 살아있는 생명의 고귀함을 노래하고, <짝꿍이 다 봤대요>는 유시인 특유의 반복 리듬을 타는 시들로 그 바탕을 일과 흙에 두고 있습니다. <오빤, 닭머리다!>는 작고 시시한 것들이 지닌 온기와 아름다움을 들려주고 있으며, <내 맘도 모르는 게>는 시인의 고향 근처 바닷가를 노래하고 있지요.
그의 시를 읽으면 ‘잡아라! 잡아라!’ 소리치며 달아나는 풀을 잡으러 가고 싶고, ‘게, 섰거라! 게, 섰거라!’ 소리치며 게를 쫓아가고 싶을 만큼 독자를 끌어들이는 활달한 힘을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이번에 나오는 다섯 번째 동시집 <제비꽃 과자가게>는 그 이전의 시들과 달리 약간의 숨고르기가 엿보입니다. 마구 달려가던 걸음을 멈추어 우리 사는 세상의 곳곳을 찬찬히 더듬고 있습니다. 아픈 곳은 어디며 가려운 곳은 어디인지, 그리고 우리가 가야할 길이 어딘지를 조용히 궁리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동시집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어른이 된 것처럼 성숙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1. 자연을 통해 말한다
유미희 시인이 잘 데리고 노는 소재들이 있지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근한 자연입니다. 이를테면 오이씨, 배추, 개구리, 별, 닭, 자두나무, 개, 달, 제비꽃, 까마중, 자두 등 입니다. 개똥참외도 한 자리 끼어 있군요. 대체 무엇에다 쓰려고 이런 소재들을 두드리고 구부리는지 눈여겨보면 재미있다지요. 재미있는 것만 아니라 우리에게 반짝, 하는 발견의 놀라움도 안겨줍니다.
가랑가랑 가랑비 왔다 가면서
옆집 할아버지네 개똥참외밭에 불 켜 놓았다.
노란 꼬마 꽃전구 아래서
방아깨비네 세 식구 오물오물 저녁밥 먹는다.
「개똥참외 꽃 」
가랑가랑 가랑비가 왔다 가면서 옆집 할아버지네 밭에 일을 내놓았네요. 무슨 일을 냈느냐? 개똥참외 덩굴에 불을 켜놓았군요. 가랑비가 켜놓은 불이란 옳아, 노란 개똥참외 꽃입니다. 그냥 개똥참외밭에 꽃 피워놓았다 하면 될 일을 그렇게 한번 에둘러 말하고 있네요. 단순한 상상만으로는 시가 안 되지요. 시인만의 독특한 상상이 더 필요하지요. 그게 개똥참외 불빛 아래에서 ‘방아깨비네 식구들이 오물오물 저녁밥 먹는다’입니다. 이런 상상이 곁들여지면서 이 시는 ‘한 가족의 따뜻한 저녁식사’를 그려내게 되는 거지요. 불과 두 개의 문장입니다. 그 문장 속엔 ‘가랑가랑 가랑비’나 ‘오물오물’과 같은 운율, ‘개똥참외’ ‘꽃전구’ ‘방아깨비네 세 식구’등의 그림 같은 시어들이 시의 짭짤한 맛을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 더 이 시를 찬찬히 읽어보면 또 다른 뜻이 깔려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열쇠를 ‘개똥참외’가 움켜쥐고 있습니다. 개똥참외란 참외를 먹고 남의 밭이랑에 슬쩍 누어놓은 똥에서 자라난 참외지요. 누구나 고개를 돌리는 태생이 구더분한 놈이지요. 그 참외가 꽃을 피워 누군가의 저녁밥상을 밝혀준다. 여기에서 우리는 반짝, 하는 발견의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니까 유미희 시인은 그 누구도 외면하는, 비록 개똥참외 같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 무엇으로 소중히 쓰인다는 걸 말해주고 있습니다. 시인의 입으로 직접 말하려 하기보다 자연의 입을 통해 말하려는 것이 유 시인 시의 특징이며, 이것이 유미희 시인의 시를 읽는 기쁨입니다.
2. 여유에서 얻는 기쁨
유미희 시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조용히 바라볼 줄 아는 분입니다. 공부에 매달리고, 공부에 시달리느라 허겁지겁 앞만 보며 달려가는 어린이들의 일을 모를 리 없습니다. 어른들도 앞만 보고 달려가느라 지쳐 있습니다. 몸도 지쳤지만 마음도 지쳐 있습니다. 여기에서 유미희 시인의 고민이 깊어집니다.
복사꽃에 앉은 동박새가
가는 걸음
잡아당긴다.
올망졸망 달린 으름꽃이
가는 걸음
끌어당긴다.
호오이
호오이
샛길로 빠져 들었다가
호오오오
호오오오
샛길로 접어들었다가
깜빡 놓친
집에 가는 길.
「한눈팔다가 」
유미희 시인이 오랫동안 고민 끝에 발견해낸 길이 있습니다. 여유라는 이름의 길입니다. 앞을 향해 달려만 갈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한눈을 팔면서 돌아돌아 가자는 거지요. 여태까지 우리가 믿고 달려온 ‘큰길’을 두고 ‘샛길’로 한번 가보자는 겁니다. 공부, 공부만이 아니라 우리가 무시하고 살아왔던 동박새도 보고, 올망졸망 볼품없는 으름꽃 향기도 한번 맡아보며 돌아돌아 가자는 거지요. 가다가 동박새처럼 호오오 노래도 불러보고, 메아리를 불러내어 놀며놀며 가는 길, 그 여유로운 길이 정작 우리가 갈 길이지요.
그래야 우리가 지녔던 착한 심성을 키워갈 수 있는 거지요. 공부와 경쟁에 지친 몸을 회복시켜주는 약은 자연이며 빙 돌아가는 여유라는 겁니다. 여태껏 허겁지겁 뛰어다녔다면 이제는 걸어 다니고, 여태껏 걸어 다녔다면 이제는 잠깐 잠깐 멈추어야 합니다. 멈추면 못 듣던 풀벌레소리를 들을 수 있고, 못 보던 작은 풀꽃을 볼 수 있고, 누구인지 모르고 살던 나 자신을 발견하는 기쁨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세상을 보는 유 시인의 마음입니다.
3. 시간을 거슬러 오른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여기 이 별. 많은 별 중에 초록별, 그 중에 우리나라, 그 중에 조그마한 산골마을. 마을 뒤엔 둥그런 산이 있고, 산자락엔 둥그런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뜰앞엔 논벌이 있고, 논벌 사이로 개울물이 조갈조갈 흘러가는 곳.
옛날에도 그 옛날에도 누군가 이곳에서 우리처럼 살았을 것 같은 풍경. 그들은 무얼 먹었고, 무얼 하며 놀았고, 저녁이면 별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매미 우는 날,
나무가 몸속에서
돌돌 말아 두었던 동그란 방석을 꺼냈다
둘둘 말아 두었던 널따란 방석을 펼쳤다
나무가
지금도 짜고 있는 그늘 방석에 앉아
5학년들은 단소를 불고
우리들은 그림을 그린다
그 옛날 아이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했을까?
나무가
400년째 짜고 있는 그늘 방석에 앉아
내 마음은
먼 옛날 아이들 틈으로 달려간다.
「그늘 방석」
매미 우는 날, 나무 밑에서 5학년들은 단소를 불고, 우리들은 그림을 그리네요. 나무는 우리들을 위해 방석을 하나씩 꺼내줍니다. 그것은 나무가 봄내 피워올린 초록잎으로 만든 방석이지요. 신발을 벗을 필요가 없지요. 그냥 고마워, 하고 앉으면 될 방석인데 보기와 달리 엉덩이 밑이 시원하지요. 물론 귀도 시원해야지요. 나무는 그때를 알고 하루 종일 들어도 싫지 않은, 매미가 오래도록 인기를 누려온 명곡을 준비했네요. 그러니 더운 여름날 단소를 불고 그림을 그리기 정말 딱이네요.
이런 여름날 시원한 풍경을 만들어주는 나무를 지긋이 지켜보는 이가 있습니다. 유미희 시인이네요. 시인은 그 나무를 바라보며 이런 풍경을 만들어내는 그 나무의 역사를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나무의 지난 과거가 궁금한 거지요. 400년 전 아이들은 여기 나무 그늘에 나와 무얼 했을까. 그때 아이들도 여기 나뭇그늘에서 혹시 단소를 불고 그림을 그리고 그러지는 않았을까. 아라비안 나이트의 날으는 양탄자가 아닌 초록색‘그늘 방석’을 타고 먼 과거로 거슬러 가지요. 그러니까 우리들의 시간을 그쪽으로 안내하고 있네요.
4.먼 공간을 향해 상상의 화살을 쏘다
동네 길을 한 바퀴 돌고, 논벌 건너 학교에 다녀오고, 혼자 멀리 외갓집을 다녀온 아이는 차츰차츰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의 수평적 공간 감각을 익히게 되지요.
그러던 아이가 어느 여름 날, 수많은 별이 뜬 밤하늘에 눈을 뜹니다. 지상 위의 공간만으로는 부족한 아이는 밤하늘 별을 통해 우주로 나가는 세계와 만나게 되고, 호젓할 때면 그곳을 향해 상상의 화살을 쏘아 올리게 되지요.
한밤
하늘에서
활쏘기 대회가 열렸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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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마을로
개울로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은빛 화살
엄마, 아빠는 쉰까지 세다가
돗자리에 누워 드르렁드르렁 코 고는데
예순 일곱 번째 화살
또 떨어진다
지금
활을 쏜 선수는
누구일까?
오늘
우승자는
누가 될까?
깊은 밤
나 혼자 두근거리며 보는
활쏘기대회.
「별똥별 헤는 밤」
앞의 「그늘 방석」이 먼 과거의 시간으로 이동시켜주는 시라면 이 시「별똥별 헤는 밤」은 우주라는 무한 공간으로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네요.
마당가 돗자리에 누워 별하늘을 봅니다. 가끔 임무를 다 마친 별들이 휙휙 어디론가 먼 세상으로 떠나가네요. 별도 사람과 같아 태어나 오래도록 반짝이며 살다가 나이가 차면 별똥별이 되어 떨어집니다. 시인 유미희는 그렇게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고, 시인만의 독특한 상상에 빠지지요. 하늘나라에서 열리는 궁수들의 활쏘기 대회를 떠올립니다. 도막도막 은실
처럼 끊어지는 별꼬리를 살이라고 본 거지요.
이쪽을 향해 마구 날아오는 궁수들의 화살. 하도 놀라워 곁에 누운 엄마 아빠를 깨워보지만 이미 고단한 여름잠에 쿨쿨 빠졌네요. 이제 나는 혼자입니다. 이 밤에, 아니 이 지구의 여름밤에, 아니 이 컴컴한 우주 속에 나 혼자입니다. 혼자 우주의 밤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하고 혼자 그 크고 넓은 우주를 경험합니다.
5. 남을 게 없는 농사일
나는 오래 전부터 유미희 시인의 시를 특별히 좋아했습니다. 그 까닭은 유 시인의 시가 흙에 발을 대고 사는 사람들과 갯벌에서 조개를 캐고 고기잡이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가 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유시인의 일을 노래한 시는 유별나게 재미있고, 놀이하듯 신나고, 살아있듯이 팔팔했습니다. 그런 벅찬 기억이 내게 있습니다.
고추는 너구리가 다 먹고
콩은 꿩이 다 먹고
감자는 멧돼지가 다 먹고
산밭 매는
우리 외할매
무얼 먹고 살까?
「산밭 농사 」
이번 동시집에도 다행히 일에 관한 시들이 여러 편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들을 읽으며 가슴이 쿵 내려앉도록 놀란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과거의 일에 관한 시들과 달리 지금의 시들이 매우 낙담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 까닭은 이 시에서 보듯 농사를 짓는다 해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고추는 너구리가 다 먹고, 콩은 꿩이 다 먹고, 감자는 멧돼지가 다 먹네요. 그러니 산비탈 밭을 매는 ‘외할매’가 먹을 게 있을 리 없지요. 외할매가 먹고 살 게 없는 까닭이 그게 전부일까요. 농사를 짓느라 들어간 비용과 은행에서 낸 돈을 갚고 나니 남는 게 하나도 없더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요. 지금의 농촌은 예전의 농촌과 달리 여유롭고 한가한 곳만은 아니거든요.
또 다른 시 「작은 배 」에 보면 ‘노는 날 없이/ 물고기 잡으러 나가던/ 작은 배// 이젠 한쪽 몸이 할아버지처럼 고장났는지/ 삐거덕 삐거덕/ 아픈 소리를 낸다.’는 부분이 있지요.
이 시나 「산밭 농사 」에 나오는 인물이나 모두 나이 많으신 할아버지와 할머니입니다. 그리고 그분들에게 남은 것이라곤 낡은 배와 아무 이득도 없는 산밭입니다.
이게 바로 농촌을 바라보는 유미희 시인의 아픔이며, 유미희 시인의 일에 관한 시가 풋풋하게 살아 오르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6, 어우러져 사는 공동체
우리가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마을은 어떤 곳일까요? 유미희 시인은 그런 생각에 빠질 때가 많네요. 어쩌면 그런 마을이란 힘없는 사람도, 몸이 성치 못한 사람도, 가진 것이 적은 사람도 다 같이 행복하게 사는 곳이라 여기는 게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그런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나요?
칠월 칠석 날
막내 이모 따라 간
절집
배롱나무 굽은 등에 업힌 참새떼
장독대 뒤에서 고개 내민 달맞이꽃
문지방 들락거리는 부엌 고양이
내 눈엔
다
한 식구야.
대웅전 밖에
깨개앵 깨개앵 싸움박질 하는
강아지 두 마리까지.
「절집식구 」
이모를 따라 절집에 간 ‘나’는 뜻밖에도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참새와 달맞이꽃과 고양이와, 싸움박질하는 강아지, 이 모두를 ‘한 식구’로 바라보게 됩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식구란 무엇인가요? 가족의 다른 이름입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요?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서로 힘이 되어주고,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는, 아버지와 엄마를 중심으로 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공동체입니다.
유미희 시인은 그런 식구라는 이름으로 전혀 남남인 참새와 달맞이꽃과 고양이와 강아지를 하나로 어우르려고 합니다. 이게 바로 가족 공동체입니다. 유미희 시인의 말대로 한다면 식구공동체인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서 참새와 달맞이꽃은 서로에게 너무도 소중한 가족이 됩니다. 이제 참새가 아프고, 고양이가 아프다면 달맞이꽃과 고양이는 남의 일 보듯 그들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가족이니까요.
늙어가는 농촌과 농촌 할아버지 할머니들, 힘없고 가진 게 없는 이들과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길은 가족공동체입니다. 가족이라는 따스한 마음으로 어우를 때 세상은 아픈 곳 없이 행복해질 테지요. 이것이 바로 유미희 시인이 이 시속에 담고자한 의미이며, 우리가 나아갈 이상적인 길의 방향인 것입니다.
이 시의 ‘이모’처럼 우리는 엄마 친구도 이모라 부르고, 음식점에서 음식을 날라주는 아주머니도 이모라 부릅니다. 우리 사회가 가족 공동체를 바라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7. 주거니 받거니 하며 함께 산다
나 혼자 높은 성을 쌓아놓고 그 안에서 홀로 행복하게 살 수는 없어요. 내가 행복하려면 나와 함께 사는 이들 모두 행복해야 되거든요. 누군가 아프면 나도 아프고, 누군가 슬프면 나도 슬퍼지게 되는 거니까요.
모두 행복해지려면 모두 행복해야 하고, 모두 조금씩 나누어야겠지요.
올해도
운동장 메타세콰이아 아래 제비꽃 가게가
문을 열었다
연둣빛 씨앗 과자
동글동글 빚어
초여름 햇살로 바사삭 구워 내놓았다
흠흠
고소한 과자 냄새 맡고
길게
길게
동네 개미 손님들 줄 섰다
바글
바글
아침부터 발 딛을 틈 없다
몇 년째
조금씩 조금씩 넓혀 가는
제비꽃 가게.
「제비꽃 과자 가게」
이 시를 요약하면 이렇네요. 제비꽃 씨앗이 여물었다. 그걸 알고 양식을 위해 개미들이 물어간다. 개미들이 흘린 덕분에 제비꽃 자리가 넓어진다. 그 밋밋한 생태 현상에 시인은 예쁜 옷을 입혔네요. 제비꽃 가게엔 바사삭 구워만든 고소한 씨앗과자가 있다. 그걸 알고 개미손님들이 바글바글 모여든다. 그 바람에 알음알음 제비꽃 과자 가게 소문이 온 동네에 퍼진다. 이렇게요.
고소한 씨앗과자처럼 이 시도 고소하네요. 그런데 시인은 이 시 뒤에 이런 뜻을 숨겨놓았네요. 나누는 일이란 얼핏 내 것이 줄어드는 것 같이 보이지만 오히려 더 늘어난다는. 제비꽃은 꽃씨앗을 멀리 보내고 싶고, 개미는 꽃씨앗을 먼 자신들의 집까지 물어 나르느라 조금은 떨어뜨리고, 그래서 개미도 배부르고 제비꽃 영토도 조금조금 넓어지고. 나누며 살아야 하는 아름다운 이유가 여기 있네요.
시인은 자신의 마음을 속일 수 없습니다. 시인은 자신이 보고 있는 세상을 마음으로 노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유미희 시인은 우리가 안고 사는 문제들을 매우 찬찬히 바라보면서 그것을 치유하고 위로할 길을 고민합니다. 좀 늦더라도 천천히 돌아가는 여유를, 이 세상을 ‘식구’라는 이름으로 껴안기를 바라는 따스한 어우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미희 시인의 동시집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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