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

문학동네 동시집 출간 10년이 걸어온 발자국

권영상 2019. 9. 27. 10:46


문학동네 동시집 출간 10년이 걸어온 발자국

권영상



그때 그 당시



<문학동네 동시집> 시리즈가 출간을 시작한지 2018년으로 10년이다. 이 동시집 시리즈가 시작될 때 처음 나는 반겼고, 한 편으론 또 반신반의했다. 1990년대 중반 모 출판사의 ‘장편창작동화 시리즈’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시리즈의 주된 집필진은 세칭 ‘잘 나가는 소설가와 시인들’이었다. 지금도 그런 면이 있지만 동화책의 주된 독자는 어린이지만 책을 선택하고 구매하는 이는 부모이며, 책의 선택 기준은 부모가 알고 있는 시인, 소설가에 둔다는 상업주의적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어떻든 그건 그리 좋은 추억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무렵의 그런 시도도 아동문학을 보다 열린 공간으로 이끌어 내거나 아동문학이 단순히 ‘어린이 문학’이 아닌 어른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어쩌면 어른들도 감동하는 문학이라는 인식을 넓힌 긍정적인 부분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 무렵만 해도 동화 시장은 번창했지만 동시는 미약했다. 대부분 자비 출판에 의존했고, 인세 출판이 있다 해도 간간히 시도되다가 사라지곤 하는 정도였다. 이런 열악한 현실이 그 당시 동시문학의 실상이었고, 동시문학의 위기라고 진단한 일부 동시인들에 의해 2002년 <한국동시문학회>가 건립되었다. 이후 2003년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 동시전문지 계간 <오늘의 동시문학>이 창간되었고, 같은 해 <창비 어린이>가 여름호를 시작으로 창간되었다.


2005년 최승호의 <말놀이 동시집>이 비룡소에서 시리즈로 나왔고, 그 이전인 1998년 김용택의 동시집 <콩, 너는 죽었다>가 실천문학사에서 나왔다. 이 두 동시집은 나름대로 동시문단에 기여한 바가 크다. 동시단 내부가 아닌 외부의 노크를 통해 동시가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도 충분히 감동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2008년, 이러한 맥락 속에서 <문학동네 동시집>시리즈가 출범했다. 첫 동시집으로 김은영의 <선생님을 이긴 날>이 출간됐다. 이후의 시리즈는 시인 안도현의 기획으로 진행되었고, 같은 해 이안의 <고양이와 통한 날>, 곽해룡의 <맛의 거리>, 박성우의 <불량 꽃게>가 출간 되었다. 이때부터 10년간 적게는 한해에 3권, 많게는 8권의 동시집을 출간하며 2018년 12월까지 69권의 동시집이 나왔고, 2019년 역시 출간 중이다.


지치지 않고 출간되는 <문학동네 동시집> 영향 때문일까. 1999년부터 띄엄띄엄 출간되던 사계절출판사 동시집은 2015년 <사계절 동시집> 시리즈로 명칭을 바꾼 뒤 본격적으로 출간하여 권영상 동시집 <도깨비가 없다고?>(2019년 4월)까지 17권이 출간 되었다. 2018년 한겨레 출판사는 <한겨레 동시나무> 시리즈로 동시집 6권을 출간했다. 같은 해엔 동시전문지 계간 <동시먹는 달팽이>가 창간되었고, 이듬해인 2019년 대구를 기반으로한 동시전문지 계간 <동시발전소>가 또다시 창간되기에 이르렀다.


돌이켜 보면 ‘한국동시문학회’가 창립되던 해의 120여명이던 회원이 지금은 380여명으로 증가했고, 그 밖의 실제로 동시를 창작하고 발표하는 이들까지 고려한다면 600여명은 넘을 것으로 추산할 수 있겠다.

<문학동네 동시집> 시리즈는 이러한 시대적 전후 관계 속에서 태어났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한국 동시문학의 위상을 키우고, 또한 문학적 기반을 다지는 일에 크게 기여했다고 보겠다. 무엇보다도 동시인들만의 동시를 거대한 문학 영역으로 이끌어 올렸다는 점 또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1. <문학동네 동시집>이 뚜벅뚜벅 걸어온 길


1) 경계를 허물다



<문학동네 동시집> 시리즈의 저자층은 정말 다양하다. 시인, 시조시인, 동시인, 동화작가, 소설가 등 그들이 속해있는 단체도 제각각이다. 그 이전까지의 출판사 성향만 해도 시 전문 출판사와 동시 전문 출판사로 대부분 분리되어 있었다. 이 벽은 매우 견고했다. 그게 당시의 출판 룰이었다면 <문학동네 동시집>은 그 점에서 파격적이다. 동시라는 이름으로 동시인과 시인이 자연스럽게 <문학동네 동시집>에 합류했고, 이것은 동시인과 시인의 강고한 장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로 하여 시의 영역에서 왕성하게 창작활동을 하던 시인들이 경계를 넘어 동시의 영역으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이들과 합류하는 경계에서 동시문학의 스펙트럼이 커졌고, 동시 창작 역시 더욱 치열해졌으며, 동시문학의 지형 자체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동시 창작 인구가 불어났다. 또한 동시가 단순히 소박한 아동문학의 한 장르인 동시에서 벗어나 문학 시장 속으로 뛰어 들어가 전 국민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동시문학으로 바짝 다가서게 되었다.


2) 동시집 출판 시장을 키웠다


2018년 한 해 동안 한국동시문학회에 접수된 회원들의 발간 동시집은 65권이다. 그 외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동시집 출간을 합친다면 그 출판 량이 적지 않을 것이다. 동시집 발간이 꾸준히 성장한 데는 한국문화예술진흥회와 지방자치단체의 창작지원금이 큰 몫을 했으리라 본다.

지금까지 동시집을 발간한 출판사들은 대충 이렇다. 아동문예, 아동문학평론, 시와 동화, 국민서관, 위즈덤하우스의 스콜라, 푸른사상, 가문비, 청개구리, 섬아이, 소야 주니어 등과 창비어린이, 사계절 동시집, 문학과 지성사, 한겨레 동시나무, 실천문학사, 청년사 등이다.


이들 중에서도 <문학동네 동시집>처럼 10년간 시인과 동시인 구별 없이 꾸준히 69권의 동시집을 발간한 곳은 흔치 않다. 이 일은 분명 타 출판사들의 출판 방식이나 욕구를 자극하여 출판 시장을 키우는데 크게 일조했으리라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동시집 출판 활성화는 동시인들의 동시 창작과 발표 지면 확장을 요구하게 되었고, 필연적으로 <동시마중>, <동시먹는달팽이>,<동시발전소> 등의 동시전문지 창간을 촉진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3) 동시문학이 더욱 다양해졌다.


<문학동네 동시집> 시리즈 저자들의 직업군 또한 다양하다. 귀농한 전직 회사원, 전직 군 출신, 시골 초등학교 현직 교사, 퇴직 교사, 대학 교수, 대학 강사. 공장 근로자 또는 막노동꾼, 주부, 동시창작 지도사, 농사꾼, 잡지 발행인, 편집자, 환경운동가, 인문학 강사 등 참으로 다양하다.

다양한 만큼 이들이 쏟아내는 동시의 빛깔과 동시 속에 녹아있는 동심의 함량과 무게 또한 다양하다. 때로는 표현이 새되기도 하고 거칠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빚어내는 동시나무의 크고 깊은 숲은 시인들의 다양한 직업군과 무관하지 않겠다.


문학동네 동시들이 너무 어렵지 않느냐, 너무 사변적이지 않느냐, 너무 동심을 벗어나 있지 않았느냐, 너무 사적이고 은밀한 부분까지 지나치게 노출하는 것 아니냐, 너무 어른 냄새를 풍기는 게 아니냐, 너무 시에 가깝지 않느냐, 아이들의 발달 연령을 너무 넘어서 있는 것 아니냐 등의 의구심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긍정적 측면도 많다. 무엇보다 동시의 전통적인 패턴에서 벗어나는 <문학동네 동시집>의 시도야말로 우리 동시를 더욱 풍요롭게 하는 창작의 동력이 된다고 하겠다.


4) 출판사 공공의 임무에 충실하다


기존 동시인과 시인을 동시 집필자로 삼는데 그치지 않고, <문학동네 동시문학상>을 제정해 신인 및 기성 동시인을 발굴하여 그들의 창작의욕을 고취하고 있다. 김개미의 <어이없는 놈>, 박해정의 <넌 어느 지구에 사니?>, 김준현의 <나는 법>이 그 산물이다.

현대시 100주년을 맞아 조선일보가 특별기획한 ‘한국 동시 100년 애송동시 50편’의 연재는 2008년 5월에 시작되었고, 50편을 끝으로 연재도 끝났다. <문학동네 동시집>은 이 연재 동시 50편으로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라는 동시집을 엮어 발간했다.


그 외, 군소출판사들이 고려하지 못했던 시조시인 정완영, 작고 시인 강소천 권정생 류선열 등의 동시(조)집 출간으로 출판사의 공공의 임무에 충실을 기하고 있다.

 

2. <문학동네 동시집> 들여다보기


<문학동네 동시집> 69권을 모두 독파하기란 어렵다. 독파했다 한들 다양한 시인들의 다양한 동시집을 몇 개의 부류로 묶어 그 작품들의 특징이 이렇네, 저렇네 하는 일은 가당치 않고 또 몹시 위험하다. 60여 권의, 내 손에 들어온 동시집을 모두 읽고 난 뒤 더욱 그 일의 위험함을 느꼈다. 결국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프랙털 이론이다. 부분으로 전체를 이해하는 일이 그래도 좀 덜 위험하리라는 판단에서다. 첫해에 출간된 동시집과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수상작품을 열어봄으로써 <문학동네 동시집> 시리즈의 성향과 그 이후 동시집 빛깔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런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1) 2008년 첫해에 태어난 동시집들


시리즈의 시작은 알다시피 2008년이다. 그해 4권의 동시집이 나왔다.

첫 동시집은 김은영의 <선생님을 이긴 날>. 정확히는 두 번째 동시집부터 안도현의 기획에 의해 집필 시인이 선정되었다. 그렇게 보면 김은영 동시집을 살펴보는 일이 의미 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 작품집이 시리즈로 발전해 나가는데 약간의 동력이 되었을지 모른다는 판단이 있었다.


아버지가/ 왜 우리 안으로 들어왔는지/ 닭들은 아나 봐// 모이 줄 때면/ 쪼르르 달려나오는데/ 눈치를 보며 슬슬 피하는 거야// 재빨리 암탉 한 마리 붙잡아/ 모가지를 힘껏 비트는데/ 숨어넘어가는 닭이/ 두 발을 뻗치며 퍼덕거릴 때마다/ 닭 잡아 먹자고 한 내가/ 죄를 짓는 것 같아// 눈을 꼭 감고/ 고개를 돌리며/ 속으로 닭들에게 미안하다 그래. 후략


그의 시의 배경은 근대적 형태의 농촌이다. 한가하고 소박한 농촌의 삶이 있는가 하면 그 이면엔 닭의 ‘모가지를 힘껏 비틀’수 밖에 없는 살생의 농촌이 또 있다. 이 둘의 축을 유지하며 시는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엄마가 죽자 ‘에미 없이 살아야 하는’ 나를 두고 푸념하는 가족의 울음과 그것을 엿듣는 나의 아픔도 후자의 것이다. 아이들 삶의 빛과 그늘을 솔직히 그려낸 동시집이다.


이안의 ‘고양이와 통한 날’ 역시 농촌이 주된 배경이다.


호로롱// 집 앞 목련나무 가지에 방울새가 날아와 앉았다// 부리에 벌레를 가로물었다// 이쪽저쪽 들레거리다 내 쪽을 본다// 나는 부러 딴 데를 본다// 가까운 곳에서 새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호로롱


‘어미새’라는 동시다.

시인은 책머리 글에서 ‘먹고살 만큼 농사짓고 그 안에서 행복하게 살자’는 마음으로 농촌에 들어섰고, 그렇게 삼년 반의 땅과의 만남을 시로 드러낸 것이 ‘고양이와 통한 날’이라고 했다. 그의 삶이 이처럼 욕심 없듯 시 또한 욕심으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어 보인다. 깎고 다듬어 만든 시라기 보다 그때 그 상황을 즉물적으로 이해하고 소통하는, 동시 특유의 간략함과 간소함과 단순성을 깊이 있게 추구하는 역작이다.


기운 담장 아래/ 할머니가/ 오도카니 앉아 있다// 오래 사귄 친구처럼/ 지팡이를 끌어안고 있다// 이불인 듯/ 온몸에/ 얇은 봄볕을 덮고 있다// 전봇대 그림자가/ 살그머니 다가가/ 할머니 부은 발등 쓰다듬고 있다


곽해룡 동시집 <맛의 거리>에 나오는 ‘골목길’이다. 그의 동시는 대체로 도시 변두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거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지하에 세 들어 살거나 손수레로 부업한 상자를 공장에 대거나 돈이 없어 ‘아무렇게나 사는’ 이들이다. ‘이 동시엔..... 노숙자도 나오고 거지도 나오고 단속 나온 사람에게 짐수레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몸을 수레에 묶고 물건을 파는 노점상도 나온다’고 그는 동시집에서 밝히고 있다. 일하지 않고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는 도시 약자들의 삶을 관찰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들이다. 그러나 그의 시를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현실적인 아픔보다 오히려 티 없고 따스한 순수 동심 시들을 종종 만나볼 수 있기도 하다.


2008년 12월에 출간된 마지막 동시집이 박성우의 <불량꽃게>다.


‘고추 포대 동여매고 용모리장 가신 아부지. 용모리재 입구까지 나가 목이 빠져라 기다려 보지만 사과도 신발도 사오지 않는 아부지 “사과 장수도 죽고 신발 장수도 죽어서 암컷도 못 사왔응께 다음 장에 사다 주마” 번번이 내가 사달라는 것 파는 장수만 죽어서 못 사왔다고 들러대는 울 아부지, 뭐뭐 사왔냐고 꼬치꼬치 캐물으며 어둑어둑해진 풀길 따라 집으로 간다’


<불량꽃게> 안에 있는 ‘울 아부지’다. 시속 화자이거나 화자의 ‘아부지’는 동네 이장집 염소를 얻어다 키우거나 남의 조각땅을 얻어 마늘을 심는 이다. 시인은 귀농해 손에 흙을 묻히며 일하는 농사꾼이다.

그의 시는 농사꾼답다. 시의 앞뒤 구성을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저 시의 상황을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가 이야기를 들려주듯 술술 써간다. 굳이 시속에 고도의 메시지를 숨기려 하지 않는다. 시야에 들어온 대상을 편하게 바라본다. 욕심 없이 바라보는 일에 족할 뿐이다. 누구도 시 속에 들어가 시가 흘러가는 길을 방해하거나 작위적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독자를 편안하게 하는 시다.


이 네 권의 동시집 중에 곽해룡의 <맛의 거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농촌을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네 권 모두를 일관되게 지배하는 모티프는 ‘일’이다. 과거의 노동 경험을 살려 쓴 일이 아니라 모두 지금 현재 겪고 있는 일이며 거기에서 태어났기에 모두 건강한 시들이다.

어쩌면 2008년 첫해에 발간된 이 네 권의 동시집이 그 이후에 발간된, 그리고 향후 발간될 동시집의 성향을 점쳐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정확한 예측이란 없다.


2) <문학동네 동시문학상>이 나아가는 방향



<문학동네>는 지난 10년 동안 세 사람의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수상자를 냈다.

그 일을 문학동네 편집팀장 이복희는 ‘<문학동네 동시문학상>은 어린이의 미래에 투자한다는 자세로 역량 있는 신인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일’이라 설명했다.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수상작품을 들여다보는 일은 ‘문학동네 동시’의 방향을 가늠하는 일이며, 동시에 우리 동시의 현재를 가늠하는 일이기도 하겠다.


제 1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대상작은 김개미의 <어이없는 놈>(2013년 발행)이다.


오늘은/ 누가 말만 걸면/ 몸을 비비 꼬며 낄낄거렸어/ 별일도 아닌데/ 원숭이처럼 책상을 두드리고/ 일어설 땐/ 의자가 부서져라/ 유난을 떨었어/ 누가 부르기만 하면/ 귀청이 떨어지도록 큰 소리로/ 대답을 하고/ 선생님이 질문을 하면/ 알지도 못하면서/ 번쩍번쩍 손을 들었어/ 쓸데없이


‘넌 그런 날 없니?’의 전문이다. 김개미 시에 등장하는 ‘어이없는 놈’은 이렇다. 반응과 액션이 격렬하거나 과격하고 거칠다. 별일도 아닌 것에 유난을 떨고, 권위에 도전하고, 미안해할 줄 모르고, 자기가 최고다.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혼자 지붕에 올라가 사다리를 멀리 밀어버린다. 지붕에서 내려올 아무 방법도 없으면서 일단 저지르고 보는 대책 없는 아이다. 자의식 또한 눈부시게 강하다. 그는 한 마디로 비호감이다.


<어이없는 놈> 이전엔 이런 캐릭터가 동시에 등장하지 않았다. 대체로 현실에 순응하거나 생각이 깊거나 아니면 긍정 발랄 했다. 그런 점에서 김개미는 그 이전의 호감 가는 캐릭터를 몰아내고 비호감 캐릭터를 그려내는데 성공했다. 세상엔 착한 엄마와 착한 아이만 있는게 아니듯 어이없는 놈과 어이없는 작태도 있다. 그의 캐릭터는 그럴 듯한 서정적 시의 포장에서 벗어나 거침없는 일상어로 마치 통념에 도전하듯 동시의 벽을 허물어간다.


제 2회 수상작은 박해정의 <넌 어느 지구에 사니?>(2016년 발행)다. 그는 때로 엉뚱한 것도 시가 되게 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


‘마을은 안 보이는데 안내 방송은 신기동이라고 말하지. 버스가 멈추자 뚱뚱한 짐 보따리가 말라깽이 아줌마를 끌고 내리네. 신기동은 재 너머에 있나? 괜히 걱정이 되어 돌아보니 아줌마 엉덩이에 여우 꼬리가 살랑대네. 오호라. 가시덤불을 헤치면 단박에 신기동이 나타나겠지. 그곳에서 어린 오누이가 엄마 언제 오노, 하고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흠흠, 그 집은 마을에서 가장 반짝이는 집일 거야.// 아줌마 발걸음 가벼워지겠네.’


그의 시속엔 그만의 보이지 않는 특수한 공간이 있다. 그건 눈에 띄지 않는, 이 세상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세상이거나, 아니면 그만의 은밀한 동심의 공간일 수 있다. 그곳은 어쩌면 재 너머에 있을지도 모를 신기동이다.

그의 시에는 마법 같은 상상이 가끔가끔 출현해 읽기가 즐겁다. 이를테면 여우 꼬리를 숨기며 다니는 말라깽이 아줌마, 보름밤이면 털을 뽑아 이불을 만드는 여우로 둔갑하는 할머니,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는 마을, 느티나무가 밤이면 머리를 풀고 ‘백년점방’을 향해 자신이 더 오래 살았다고 흐흐흐 소리치는 곳이 있다. 이 특수한 시인의 동심 공간에는 놀이터 쪽으로 책이며 전등이며 화분이 기우뚱한 집이 있고, 붕어빵을 먹고 책상 사이로 붕어처럼 헤엄치는 아이가 있다.

그만의 동심 공간을 시속에 설정해 놓고 그 속으로 독자를 불러들이는 이 번득이는 상상은 시를 살아 벌름거리게 한다. 엉뚱한 것도 시가 되게 하는 시인의 기운찬 스토리텔링이 돋보인다.


마지막으로 제 3회 수상작인 김준현의 동시집 <나는 법>(2017년 발행)이 있다.


몸을 여덟 번 정도만 접으면 새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멀리 날아갈 수도 있다// 그 대신/ 내 하얀 몸에다가 ♡를 한 아름 그리면 어떨까?/ 보고 싶다고 쓰면 어떨까?/ 내가 좋아하는 그 애 얘기를 쓸 때는// 글씨 쓰는 소리가 너무 간지러워서 몸부림을 칠지도 몰라// 쉼표는 많아도/ 마침표까지는 아직 멀고 먼 기러기들의 여행처럼/ 끝나지 않는 말들 때문에// 나는 돛새가 우뚝 솟은 조각배가 될 수도 있었는데/ 부리가 뾰족한 비행기가 될 수도 있었는데/ 두 번만 접힌 채/ 먼 곳으로 떠날 편지가 되었어


‘웅크림’이란 동시다.

새가 될 수 있었는데 끝내 편지가 되었다는 종이를 소재로 하는 시다. 그의 시에 유난히 등장하는 소재가 있다. 연, 새, 기러기, 비행기, 날개, 편지, 움트는 씨앗, 자전거, 배 등의 상승하는 이미지거나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거나 출범하는 이미지들이다. 그의 시의 배경엔 이런 이미지가 숨어있거나 깔려있다. 그것은 그의 시가 ‘가오리가 없어도/ 가오리 그림자가 남아 있는’ 이곳과는 다른, 그림자가 없는 세계. 곧 엄마가 사는 하늘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그 그리움의 공간은 때로 먼 해안선이나 몽골, 페루, 소행성B612, 별, 인디언, 아프리카 초원 등으로 변형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그가 얼마나 그 관념의 세계를 절실히 그리워하는지는 감성을 건드리는 그의 섬세한 표현만 봐도 알 수 있다. ‘글씨 쓰는 소리가 너무 간지러워서 몸부림을 칠지도 몰라’ 라거나 ‘내게는 긴 활주로가 필요해요’ ‘파란 멍이 보라색으로/ 보라색 멍이 희미하게/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변하거나 ‘자꾸 바다로 가고 싶은 자전거를 타고 해안선을 달리고 싶은’ 마음처럼 그의 시의 배후엔 가도 가도 닿을 수 없는 그리움이 있다.


이 세 권의 수상집에서 볼 수 있듯 그들의 시는 2008년도에 발간된 <문학 동네 동시집> 네 권과 확연하게 달라져 있다. 앞의 시들이 대개 동심을 가진 어른의 눈으로 대상과 조금 떨어져 여유 있게 바라보는 시들이라면 이 시들은 그렇게 여유롭지 않다. 화자가 시 속으로 뛰어 들어가 주도적으로 상황을 만들고, 보다 빠른 속도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들의 시는 보다 절실하다는 점이 앞의 시들과 다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런 점에서 <문학 동네 동시문학상>은 나름대로 어린이 독자의 고단한 삶을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시대의 아픔을 이해해 나가려는 작품에 꾸준히 주목하고 있음을 놓칠 수 없다. 앞으로 한국 동시문학을 든든하게 이끌어나갈 <문학 동네 동시집> 시리즈의 역할을 한층 기대한다.

참고로 2008년부터 20019년 4월까지 발간된 목록을 게재한다.


(시와 동화> 2019년 여름호


목록게재는 사정상 올리지 못함을 양해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