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

권태응 다큐멘터리 인터뷰

권영상 2018. 11. 21. 10:20

 

 

 

 

 

 

감자꽃

권태응(1918~1951)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보나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꽂 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마나 하얀 감자

 

 

 

아래의 글은 지난 2018년 11월 17일 KBS 충주 라디오 '권태응 다큐멘터리'와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민족을 사랑한 시인, 권태응>

권영상

 

 

1. 시인 권태응의 문학적 성취를 평가한다면.

 

 

선생의 동시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항일이라든가 반일 정서의 동시를 발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감자꽃’만은 그 저항성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이 동시는 일제의 창씨개명에 저항해 아무리 이름을 바꾼다 해도 민족성까지는 바꾸지 못한다는 비장미를 풍기는 작품입니다. 이로 본다면 뚜렷하게 저항성이 드러나지 않는 타 작품 안에도 선생의 민족정신이라든가 항일성 내지는 반일감정의 정서가 보이지 않게 배어 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선생은 34살이라는 짧은 생애를 사시면서 시조집 두 권, 시집 한 권, 소설과 희곡 다수, 그리고 동시 300여 편을 쓰셨습니다. 또한 변절과 훼절이 심하던 시대에 오로지 곧은 높은 신념과 문학정신으로 시대와 저항하며 사셨던 분이지요.

 

 

2. 시인 권태응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선생은 34살이라는 짧은 생을 마치고 가셨습니다. 그러니까 일제강점기와 6,25라는 민족의 불우한 시대를 사셨던 거지요. 충주 공립보통학교와 서울의 제일고보를 졸업하고 와세다대학에서 퇴학처분 당하기까지 끊임없이 민족 차별에 저항했고, 대학시절엔 ‘독서회’ 사건으로 도쿄 스가모 형무소에 투옥 되었습니다.

그 후 폐결핵 3기라는 진단으로 4년 뒤인 1941년에 출옥했고 3년간의 모진 투병생활과 더불어 1945년 해방을 맞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병은 점점 악화되어 1951년 6.25 전쟁 중에 슬프게도 작고하고 맙니다. 그야말로 그분의 34년이라는 굴곡진 짧은 생애는 나라의 아픈 운명과 함께 해왔습니다.

그런 분을 한 마디로 정의 내리긴 어렵겠지요만 ‘시대의 진통을 감자꽃으로 극복해낸 분’, 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3. U.T.R 구락부 결성 등 권태응의 민족의식은 어떻게 형성이 된 것인가?

 

 

솔직히 말씀 드려서 선생의 이런 구체적인 행적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는 걸 고백해야겠습니다. 다만 도종환 시인이 발굴해내신 자료에 이 구락부는 제일고보 시절에 결성된 것이고, 휴일마다 등산 모임을 갖고, 또 일제의 식민지 교육에 대한 차별의 문제점을 토론하였다고 나와 있습니다.

한번은 동급생인 민병선이 자신들의 졸업을 ‘천황폐하의 홍은’이라고 발언했는데, 이 발언으로 그와 심한 언쟁을 하게 되었고, 끝내 그를 화학실로 불러 몰매를 가하기도 했답니다. 또 수학여행 중에 교사로부터 ‘너희는 조센징이 아니냐’는 차별 발언을 들었는데 그걸 참지못하여 학교로 돌아와 학교 방침에 저항했는데, 선생의 민족의식은 이 무렵, 이렇게 싹트고 크게 형성된게 아닌가 싶습니다.

 

 

6. 동시, 아동문학이라는 것에 갇혀 저평가 받고 있다는 것에 대한 견해를 말씀해 주세요.

 

 

아동문학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좀 받아들이기 거북한 질문인 듯 합니다. 그 당시 사회로부터 무시당한 계층이 있었지요. 여성과 어린이입니다. 아직도 여성 문학가를 여류문학가란 말로 하등 취급하는 게 그렇고, 어린이를 인권을 가진 독립된 존재로 보지 않고 ‘어린애’ 로 불리는 것 봐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선생이 동시를 쓰셨기 때문에 저평가 받는 게 아닌가라는 질문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할 바도 아닌 듯 합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수많은 소설을 썼지만 생애의 마지막 시기에는 동화를 썼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보 이반’ 등이 그것이지요. 아동문학은 인간이 학습을 통해 얻은 지식이나 이념에서 벗어난 순수한, 인간의 솔직한 본성을 표현하는 문학이었고, 그런 점에서 톨스토이는 생애의 후반에 동화를 썼지요.

권태응 선생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초기엔 시조, 시, 소설, 희곡을 쓰시다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장르가 동시였습니다. 톨스토이가 동화를 썼기 때문에 그의 문학이 저평가 된다는 말이 옳지 않듯 동시를 쓰셨기 때문에 권태응 문학이 저평가 되는게 아닌가 하는 말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고 봅니다.

 

 

9. 권태응 삶과 작품 세계에서 ‘농촌’ ,‘ 어린이’의 존재는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가?

 

 

권태응 동시의 중심 배경은 농촌이며, 소재들 또한 대부분 농촌에서 발견되는 것들입니다. 이를테면 땡감, 앵두, 민들레, 송아지, 호박농사, 감자, 도토리, 농군, 햇보리밥 등이 그것입니다.

이들 소재가 만들어내는 농촌은 앵두가 붉게 익고, 맨발로 들판을 뛰고, 송아지가 젖 한 통을 먹고, 지붕에 호박꽃이 만발하는, 대체로 풍요한 모습입니다. 이것은 어쩌면 선생이 꿈꾸어 오신 광복과 광복 이후 내 나라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풍요한 시들 뒤에는 이런 시들도 있습니다. <더위 먹겠네> 라는 시에는 ‘죽도록 일해도 고생 많은’곳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북쪽 동무들>이라는 시에는 ‘우리들 고생됨은 말도 마라. 언제나 참된 나라 서게 될는고?’ 라고 하여 녹록치 않은 현실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종합해 보면 그의 동시 속 어린이는, 욕심없고, 어른을 따라 배우는 존재로 어른들이 배려하고 존중해주어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또한 어린이는 샘물처럼 쉬임없이 약동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로 보시기도 했고. 탱자, 목화, 막대기 등의 시를 통해서는 생명의 소중함과 긍정성, 서로 돕는 이타심들을 심어주어야할 존재로 보시기도 했습니다.

 

 

10. 권태응의 동시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은 무엇인가.

 

 

권태응 동시에는 ‘아기’, ‘엄마’, ‘애들’, ‘누나’ ‘동무’, 농군들‘, ’아버지‘, ’북쪽동무들‘ 등의 대부분 3인칭 인물이 등장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권태응 동시의 특징 중의 하나는 그의 시에 1인칭 화자인 ‘나’가 등장하는 시가 극소수라는 점입니다. 같은 시기 윤동주 동시와 다른 점이 그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3인칭 시점의 특징은 이야기가 서술될 때 독자가 등장인물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서술자와 등장인물간의 거리가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그 점에서 권태응 동시가 오랫동안 독자와 좀 소원했던 게 아닌가 하는 조심스런 진단을 해 봅니다.

 

두 번째 그의 시의 소재적 특징은 빛나고 예쁜 것, 소중하고 경이롭고 풍요로운 것, 실공장 가는 누나와 일하는 농군 등의 일하는 사람들, ‘북쪽동무들’, ‘감자꽃’, ‘땅감나무’ 같은 현실참여적 소재 등으로 당시의 다른 동시인들과는 다른 다양한 소재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 되겠습니다.

 

 

13. 권태응 동시 ‘북쪽 동무들’ 작품 해석을 부탁드립니다.

 

 

북쪽 동무들아

어찌 지내니?

겨울도 한 발 먼저

찾아왔겠지.

 

먹고 입는 걱정들은

하지 않니?

즐겁게 공부하고

잘들 노니?

 

너희들도 우리가

궁금할 테지.

삼팔선 그놈 땜에

갑갑하구나.

 

권태응 동시에서 정치현실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동시가 ‘북쪽 동무들’과 ‘감자꽃’이지요.

일반 현대시의 경우 현실참여시는 6,25 전쟁 이후에 나타난 김수영 등의 전후파와, 1960년대 신동엽 등의 참여시가 있습니다. 이들은 주로 남북분단과 우리 정치 현실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 아동문학에서는 권태응 선생, 윤복진 선생 등의 작품을 찾아볼 수 있지요.

 

1. 2연은, 찾아가 볼 수 없는 북쪽 동무들의 안부를 묻고 있네요.

3.4연은 외세에 의해 만들어진 38선 때문에 서로 만날 수 없는 현실의 답답함과, 참된 나라가 서지 못해 고생하는 우리의 정치 현실을 한탄하고 있습니다.

분단의 아픔과 자꾸만 우리를 실망시키는 정치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선생의 모습이 선하게 떠오르는 그런 작품입니다.

 

 

14. <고추잠자리>,<땅감나무>에 대한 평론을 좀 부탁드립니다.

 

 

혼자서 떠 헤매는

고추잠자리,

어디서 서리 찬 밤

잠을 잤느냐?

 

빨갛게 익어 버린

구기자 열매,

한 개만 따먹고서

동무 찾아라.

 

 

<고추잠자리>를 이해하려면 같은 묶음 속에 있는 동시 ‘탱자’와 ‘막대기를 들고서’, ‘목화’, ‘도토리’등의 시를 먼저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 동시들은 대체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소중하고 가치있는 존재들이다는 주제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반해 이 시 <고추잠자리>는 혼자라는 외로움의 정서를 지니고 있습니다. 더 이상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서리 내리는 찬 밤과 겨울 앞에 선 생의 절박함 때문입니다. 이 시의 ‘혼자 서리 찬 밤을 보내’야 하는 잠자리는, 결핵이라는 질병과 홀로 싸우는 선생의 초조한 심정이 투사된 존재라고 보아야겠지요.

2연의 ‘빨갛게 익어버린 구기자 열매’는 병마에 시달리는 시인의 생명의 약이 되거나 또는 구원을 향해 손을 뻗치는 마지막 희망인 듯 해 더욱 우리 마음을 애태우게 합니다.

 

 

키가 너무 높으면,

까마귀 떼 날아와 따 먹을까 봐,

키 작은 땅감나무 되었답니다.

 

키가 너무 높으면,

아기들 올라가다 떨어질까 봐,

키 작은 땅감나무 되었답니다.

 

 

<땅감나무> 는 2연 6행의 단촐한 시로 대구와 대조의 짜임을 갖는 시입다. 동요라기보다 동시에 가까운 시인데 이 시의 중심 소재인 ‘땅감나무’는 지금의 토마토로 홍시를 닮았다고 해 일 년생인 토마토를 땅감나무라고 한 듯 합니다.

이 시는 땅감나무가 왜 키가 작아졌는가 하는 이유를 밝히는 시로 어린이는 우리가 배려해야할 존재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 시에는 부정적 세력와 긍정적인 두 세력이 있습니다.

1연: 부정적 세력 – 까마귀떼 – 땅감을 훔쳐먹는, 우리를 업신여기거나 무시하는 존재 – 일제

2연: 긍정적 세력 –아기들 - 땅감을 따먹어도 좋은, 우리가 소중히 여겨야할 다음세대 –참된 우리민족

대조의 방식으로 은연중에 우리 어린이야말로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배려해야할 존재다라는 주제를 전하고 있습니다.

 

 

15. 권태응의 문학적 배경은 어떻게 형성이 되었는가.

 

 

충주신문에 게재된 이규홍님의 글에는 권태응 선생의 친척분들이 하신 말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충주공립보통학교에 다니던 시절 그의 집에 가보면 그의 방에 일어판 문학전집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로보아 권태응 문학의 맹아가 보통학교 무렵게 싹튼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의 학창시절의 반일행적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제일고보 시절 그는 UTR 구락부에서 활동했고, 교사의 한국인차별에 저항했고, 와세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독서회 사건으로 1938년 투옥 되어 1941년 폐결핵으로 출옥하셨고, 그 이후 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때 처음 손대기 시작한 장르가 민족문학인 우리 시조입니다. 이로 보아 불편하신 몸으로 저항할 수 있는 일을 문학이라 생각하셨고, 문학은 선생의 일제 저항의 무기였던 게 분명합니다.

 

 

16. 문학관 건립 등 권태응 선생의 삶과 작품에 대한 조명을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요?

 

 

문학관 건립에 대해서는 솔직히 아는 바가 없습니다. 충주작가회 이안 시인의 <어린이와 문학>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그분의 삶과 작품에 관한 조명은 권태응 탄생 100주년을 맞는 올해 창비에서 권태응 전집이 발간된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권태응 문학 잔치가 있는 내일쯤이면 받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분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는 이 이후부터 논문이나 학술지 발표 등으로 활발히 이루어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슷한 시기를 살다간 윤동주에 비해 권태응 선생에 대한 조명이 늦은 건 사실인데, 문학 뿐 아니라 권태응 스토리 개발에 좀더 역점을 두어야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이런 지금 하고 있는 이 ‘권태응 라디오 다큐멘터리’도 그런 일환이 되길 바랍니다.

 

 

18. 권태응 대표시 한편 낭독해 주세요

 

 

권태응 동시의 백미라고 한다면 ‘감자꽃’이 되겠지요. 2연 4행의 간략하면서도 이미지와 주제가 명징한 동시입니다. 많은 어린이들과 시를 사랑하는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시지요. 그러나 많은 이들은 권태응 동시가 ‘감자꽃’ 뿐인 줄로 아는 이도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은 그의 또 다른 동시 ‘탱자’를 읽어드리고 싶습니다. 그분의 시 중에서도 현대적 감각이 잘 살아있는 시입니다. 동무한테 탱자 하나 선물로 받았는데 그걸 주머니에 넣었다가 꺼내봤다가 책상위에 놓았다가 코에 댔다가 하는, 탱자와의 행복한 교감을 보여주는 시지요.

 

 

탱자 탱자

노랑 탱자

 

주머니에 넣었다가

꺼내봤다가,

 

탱자 탱자

동글 탱자

 

몇 번이고 만져도

즐거운 탱자

 

책상 위에 놓았다가

코에 댔다가.

 

 

 

*권태응 동시와 권태응 문학 정신이 활발히 기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올렸습니다.  미흡한 부분은 또 다시 누군가에 의해 바로잡혀지거나 더욱 크게 발전되기를 바랍니다. 그분의 생애에 대한 글은 자료에 의존했고, 작품에 관한 부분은 짧은 소견으로 쓰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