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

노동과 가족과 재미를 기반으로 한 시들

권영상 2018. 11. 14. 17:33



노동과 가족과 재미를 기반으로 한 시들

권영상

 

 


가끔 옷가게에 들른다. 꼭 옷을 사자고 들르는 게 아닌데도 사고 싶은 옷이 있다. 눈에 언뜻 띄거나, 옷감이 좋거나, 바느질이 꼼꼼하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위치에 주머니를 배치하거나 주머니 하나라도 그 크기와 모양과 색상을 고민한 흔적이 역력히 보이는 옷이다. 그런 옷이라면 두고두고 입을 수 있어 좋고, 꼭 필요한 자리에 입고 나갈 수 있어 좋다. 그런 옷엔 그 옷을 만드느라 고민한 노동의 성격이 주는 감동이 있다.


한 편의 시도 그렇다. 수많은 시를 읽다 보면 유난히 공들인 시가 눈에 띈다. 이를테면 시인의 시적 교양과 감성과 현실을 해석하는 힘과 시어를 다루는 조탁력, 사물의 본질을 간파하는 예리한 눈, 자기 변모의 아픔, 자르고 베고 깎고 밀고 잇고 두드려내는 일까지. 그런 고된 노동이 가해지는 시에서 우리는 감동을 받는다.


지난 3개월 동안 10권의 아동문학 잡지에 대략 260 여 편의 동시가 발표 되었다. 일반문학 잡지에 실리는 동시까지 합친다면 좋이 300여 편은 될 듯싶다. 가히 놀라운 수준이다. 지금이 동시의 황금시대라는 말이 맞다. 한 시인의 동시가 여러 문학지에 2편 또는 3편까지 발표되는 걸 본다. 즐거운 일이면서도 시에 공들이는 시간이 짧아지지 않을까 하는 공연한 걱정이 인다.


이번 호엔 시에 들이는 공력과 변모해가는 가족의 의미, 그리고 많은 시인들이 다루고 있는 우리말의 재미성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다.

 

 

1. 노동의 성격이 주는 감동

 

 

봄의// 예방 접종

 

                                                                                손동연의 꽃샘 추위전문 <열린아동문학> 2018년 가을호

 

아따/ 나가 뭐슬 알간디/ 바닷바람 겁나 부는 디서/ 까무러치면서 컸어라/ 눈 오면 눈 맞고/ 비 오면 비 맞고/ 얼었다 녹았다 험서/ 이리 동동/ 저리 동동/ 죽을 동 살 동/ 푸릇푸릇 이겨 냈어라/ 달리 뭐슬 하간디/ 정신 차리고 본께/ 봄이더랑께

 

                                                                                                      -장세정의 봄동전문 <동시마중> 20189.10월호

 

그토록 애쓰더니 기어이 담장 위에 올라앉은 늙은 호박의 긍지// 벌레에서 시작해 발레리나가 된 나비가 더듬이로 꽃잎에 쓰는 성공 이야기// 과실과 잎사귀를 땅에 건네고 어깨를 들어 올리는 나뭇가지의 기쁨// 어린 돌들에게도 들리는, 여기저기에서 보내주는 칭찬의 박수소리

 

                                                                                              -성명진의 시월전문 <동시먹는달팽이> 2018년 가을호

 

 


손동연의 꽃샘 추위는 간략하다. 아니 간략하다 못해 집짓기로 친다면 기둥 두 개를 탁 박아놓고 손을 턴 것 같다. 서까래며 바람벽, 방이며 기왓장의 모양, 빛깔은 이 두 개의 기둥으로 어림잡아 상상하라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그 많은 이야깃거리를 탁 걷어치우고 선뜻 일어서는 기백이 놀랍다. 시의 기승전결을 다 그만 두고, 행이며, 운율이며 시로써 부릴 수 있는 온갖 기술을 버릴 줄 아는 시인의 절제와 시를 앞에 두고 무수히 시간을 보냈을 고독과 결의가 눈에 보인다. 꽃샘추위가 있고 무려 5달 뒤에 발표하는 시인의 오랜 고뇌의 시간을 측정해본다.



장세정의 봄동에서도 시를 생산하는 노동의 긴 시간이 느껴진다. 봄동이 그걸 말해준다. 봄동 한 포기가 봄동이 되기 위해 바닷바람을 맞으며 얼 동 살 동 얼었다 녹았다의 까무러치도록 험난한 시련을 겪어내는 것이 그렇다. 봄동의 노고만치 시인의 시를 자르고 베고 깎아내느라 바친 노고도 만만치 않다. 봄동의 이 갖는 운율을 살리기 위해 이리 동동/ 저리 동동/ 죽을 동 살 동을 들여왔고, ‘-알간디’, ‘-하간디또는 ‘-디서’, ‘-험서’, 그리고 ‘-컸어라’, ‘-냈어라마지막으로 본께’, ‘-더랑께등의 각운 배치의 치밀함, 봄동이 자라는 남도와 남도 사투리의 결합도 예사롭지 않다. 시인이 가한 오랜 노고가 보여주는 지점에서 언제나 감동은 태어난다.


성명진의 시월은 노동의 성취가 빚어내는 기쁨을 말하고 있다. 44연의 시다. 각 연의 중심 주체가 호박, 나비, 나뭇가지, 돌멩이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몫으로 받은 목숨을 가장 높은 곳까지 이끌어올린, 기쁨에 찬 생애를 누린다. 그때에 이들에게 가을이 찾아온다. 그들은 이 가을을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았고, 그 결과 감동의 박수 세례를 받는다. 시가 통속적으로 흐를 뻔 하면서도 제자리를 찾는 건 각 연의 주체들이 인간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약자들이기 때문이다.

 

날마다 쇠를 자르고 붙이는/ 철공소에서 일하는 수근이 삼촌/ 손가락이 잘려 병원에 입원한/ 김씨 아저씨 대신 일을 한다/ 계속 이곳에서 일을 하고 싶지만/ 언제 그만두라 할지 몰라/ 불안하다 한다/ 그래도 할 일 있으니 좋다고/ 노래 부르며/ 쇠를 만지고 있다

 

                                                                                         -김현숙의 수근이 삼촌전문 <동시마중> 20189.10월호

 

스튜어디스 큰누나는/ 걸어서 미국까지 간다// 인천 공항에서/ 아침 9시 비행기에 올라// 잠든 사람/ 담요 덮어주고// 목마른 사람/ 물 가져다주고// 밥때가 되면/ 밥 나눠주고// 비행기 안에서/ 왔다 갔다/ 11시간을 걸어서// 저녁 8/ 미국 엘에이 공항에 도착했다.

 

                                                                                 -김종헌의 걸어서 미국까지전문 <동시마중> 20189.10월호

 

앞의 세 편의 시와 달리 위의 두 편의 시는 물리적 노동을 소재로 하고 있다. 김현숙의 수근이 삼촌은 김현숙이 짧은 시에서 즐겨 구사하는 서술의 방식이다. 일자리가 없는 수근이 삼촌은 손가락이 잘려 병원에 입원한 김씨 아저씨 대신 그 자리에 들어가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일을 하고 있다. 누가 죽거나 이직해야 일자리 하나를 얻을 수 있는 철공소 이야기다. 이를 통해 시인은 오늘날 우리나라가 당면한 노동구조를 예리하게 꼬집는다. 그런 중에도 그 일을 할 수 밖에 없어 망치질을 하며 부르는 수근이 삼촌의 노래는 어떤 노래일까. ‘라는 시어가 주는 강한 정서 환기력이 이 시의 어두운 분위기를 오래 지배하고 있다.


김종헌의 걸어서 미국까지, 스튜어디스인 큰누나가 비행기 안에서 승객을 돌보며 종착지인 엘에이 공항까지 간다는 그 임무에 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걸어서 미국까지 간다고 표현함으로써 정서 환기의 놀라움을 맛보게 한다. 그 놀라움이란 뛰어나다, 남다르다, 장하다, 자랑스럽다, 부럽다, 아름답다 등의, 일의 결과가 낳는 감동이 아닐까 싶다.

 


2. 변모하는 가족 구성원

 

내가 웃으면 신하들은/ 박수를 쳤어/ 내가 화내면 백성들은/ 벌벌 떨었지/ 내가 일어나야 아침이고/ 내가 잠들어야 밤이었어/ 방귀를 뀌어도, 똥을 눠도/ 모두들 탄성을 질렀다니까/ 왕의 자리를 빼앗긴 건/ 사소한 실수 때문이지/ 동생을 낳아달라고/ 엄마 아빠에게 명령했거든// 그리고 네가 태어난 거야

 

                                                                    -이창숙의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며전문 <어린이와문학> 201811월호

 

엄마랑 한바탕 했지뭐야/ 이번 주 내내 서로 말 안 하고 있어/ 밥 먹으라고 엄마가 카톡 보내면/ 용돈 달라고 나도 카톡 보내/ 아빠는 심판이야/ 이긴 사람에게 선물 쏜대/ 그래서 엄마가 더 필사적이야/ 악어 가방 갖고 싶대나/ 나도 질 수는 없지/ 대신 아빠만 신났어/ 엄마가 잔소리 안 하지/ 내가 놀아달라고 귀찮게 안 하지/ 지금 우리 집에서/ 아빠 혼자 싱글벙글이야

 

                                                                                           -문신의 침묵게임전문 <동시먹는달팽이> 2018년 가을호

 

어떤 사람들은 추운 밤이 오면/ 개 한 마리를 껴안고 잔대요/ 더 추운 밤은 개 두 마리를 껴안고 자고/ 아주 추운 밤은 개 세 마리를 껴안고 잔대요// 엄마, 일찍 들어오세요.// 오늘은 무지 무지 추운 밤 개 세 마리의 밤이에요.

-김미혜의 개 세 마리의 밤전문 <동시먹는달팽이> 2018년 가을호

아빠는/ 자동차가 아프면 같이/ 아프다// 엄마는/ 냉장고가 아프면 같이/ 아프다// 누나는 핸드백에 상처가 나면 같이/ 아프다// 형은 핸드폰이 아프면 같이/ 아프다// 강아지가 아프면// 우리 집 식구 모두/ 아프다

 

                                                                                        -정지윤의 또 하나의 가족전문 <동시마중> 20189.10월호

 


왕은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존재지만 그 절대권력 때문에 몰락한다. 이창숙의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며가 그렇다. 벌벌 떨게 하고, 때로는 탄성을 지르게 하는 그 는 누굴까? 가만가만 따라 들어가보니 형이다. 형은 자신이 내린 어명 때문에 왕의 자리를 동생에게 빼앗긴다. 희화적인 시다. 그러나 내가 여기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가족 구성원 간의 관계다. 이 시에 등장하는 형과 동생은 부모의 사랑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에 있다. 시의 화자가 말하는 대로 하자면 빼앗고 빼앗기는사이다.


문신의 침묵게임역시 가족 관계를 들여다 보면 이해관계가 서로 얽히고 설켜 있다. 엄마와 나는 한바탕 싸움을 치렀고, 지금도 그 불편함을 카톡으로만 소통한다. 아빠는 이긴 사람에게 선물을 쏜다며 두 사람의 싸움을 내심 즐긴다. 엄마의 잔소리가 없어졌고, 귀찮게 하는 나의 관심이 다른 데에 가 있기 때문이다. 이 가족 안에는 이해관계를 둘러싼 갈등과 방관과 필사적인 쟁취가 도사리고 있다. 대개 이런 모습이 우리가 그간 생각해온 당연한 가족의 모습이다. 그런 관계를 통해 사회를 배워가는 게 아니겠어? 우리는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해 왔다.


김미혜의 개 세 마리의 밤이 보여주는 가족관계는 좀 다르다. 그의 시속엔 어떤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등장하는 개가 있다. 그들은 추우면 개 한 마리를 껴안고 잔다. 더 추우면 개 두 마리를, 아주 추우면 개 세 마리를 껴안고 잔다. 개가 이미 가족 구성원 중의 한 명이 되어 있다. 어떤 사람들의 가족은 서로 경쟁하거나 방치하거나 빼앗기고 빼앗는 사람 중심 가족 관계가 아닌 푸근히 껴안고 잠 잘 수 있는 사이이다.

우리가 당연시 여겨온 가족에 대한 개념이 무너지는 게 아닌가 하는 징후를 나는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거다. 아기를 낳는 대신 강아지를 키우겠다는 요즘 젊은 부부들의 말이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다.


정지윤의 또 하나의 가족역시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시에 등장하는 엄마 아빠 누나 형은 한 식구이면서도 사랑을 보내는 방향이 제각기 다르다. 그러나 강아지가 아파하면 모두의 관심이 강아지에게로 쏠린다. 강아지가 약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가족 중 그 누구와도 경쟁관계에 있지 않고, 사랑을 받는 만큼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강아지가 이 시의 또 하나의 가족이 되고 있다. 사람 중심의 가족 개념이 무너지는 이유를, 그리고 왜 반려동물을 가족 속으로 끌어들이는지 그 작은 눈짓 하나 발견한다.

 

 

3. 다양하고 재미진 말맛 동시

 

 

똑똑한 거 알고 있어/ 똑똑한 게 다는 아니잖아// W.C 법칙, 나도 알아/ -남의 설사보다/ 자기 변비가 더 급하다// 그래도 넌 너무해/ 네가 다시 문 안에 들어오면/ 그땐 내 마음 알게 되겠지// 너 똑똑한 거/ 알고 있어

 

                                                                                         -임희진의 똑똑 1’ 전문 <열린아동문학> 2018년 가을호

 

실컷 울고 나면/ 먼 길 떠날 수 있다

 

                                                                                       -박선미 먹구름 환하게전문 <시와동화> 2018년 가을호

 

     

사랑이랑 지혜가 싸웠다/ 둘이 찢어졌다// 나는 둘 사이를 /오고 가며 바느질해 주었다// 둘의 무늬가/ 딱 맞게 이어졌다// 둘은 다시/ 꼭 붙어 다닌다

 

                                                                                     -김금래의 바느질전문 <동시먹는달팽이> 2018년 가을호

 


임희진의 똑똑 1’은 동음이의어가 만들어낸 시다. 주제는 역지사지. 너도 문 안에 들어오면 그때 내 마음 알게 될 거야, 그 말이다. 딱딱한 주제를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건네기 위해 재미지고’, 다양한 언어 도구를 동원한다. ‘똑똑한 거라는 동음이의어와 반복 운율, ‘남의 설사보다/ 자기 변비가 더 급하다W.C 법칙, 그리고 상대방의 무례함 비틀기 등의 방식이 그것이다. 자칫 일회성 재미에 그칠 수 있는 시를 비교적 정교하게 잘 짜 올렸다.


박선미의 먹구름 환하게는 다의어에 기반을 둔 시다. 길이는 짧으나 생각이 깊어지게 하는 시다. 박선미가 여태껏 추구하고 그려왔던 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시다. 그의 시에 늘상 등장하던 교실과 아이와 선생님이 사라졌다. 자기 변모를 위한 고뇌가 보인다. ‘실컷 울고 나면/ 먼 길 떠날 수 있다는 두 행이 그 점을 암시하고 있다. 먹구름이 무거운 비를 다 쏟아낼 때 멀리 갈 수 있듯 더 좋은 시를 쓰기 위해 여태까지 시인이 축적한 시의 자산을 모두 버리겠다는 아픈 결기가 엿보인다.


김금래의 바느질은 중층 구조를 지닌 시다. 그러니까 바느질싸움의 결합이 그것이다. 이를테면 찢어지다(헤어지다)’, ‘바느질하다(이해시키다)’, ‘무늬를 잇다(화해하다)’, ‘붙이다(복구하다)’ 등으로 마치 두 편의 시를 읽는 재미를 동시에 맛보게 한다. 우리말의 소리와 의미가 지니고 있는 다중적 특성을 재미있게 살려 만들었다.

 

다 썼다. 읽고 쓰는데 닷새 걸렸다. 이외의 참신한 시들을 소개하지 못한 일 또한 안타깝다. 창밖에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뜰 안 나무들이 잎을 다 잃었다. 남아있는 것이라곤 추워질수록 더욱 파래지는 파밭의 파들이다. 볼수록 고뇌하는 자의 시를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