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과 봄 사이, 계절을 건너는 시들
권영상
겨울이 가고 우리 곁에 봄이 가까이 다가왔네요. 언제나 봄은 아름답고 격정적이지요. 그 까닭은 겨울이 주는 시련과 시련의 혹한 때문이 아닐까요. 아이러니 하게도 이 혹한이 있어 시인은 긴 겨울 시를 붙잡고 시와 씨름을 하지요. 겨울은 생명 가진 것들에게 언제나 죽음과 삶의 갈등을 부추기지요. 그 갈등의 고비에서 시는 겨울과 맞서거나 순종하거나 서로 살아내기 위해 타자와 손잡거나 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봄을 향해 나아가지요.
그러는 사이 대구에서 <동시발전소>가 창간되었습니다. 우리나라 동시 전문지로 <오늘의 동시문학>, <동시마중>, <동시먹는달팽이>에 이어 네 번째 창간입니다. 우리 동시문학이 서울 중심에서 중원 중심 시대로 이동하는 느낌입니다. 부디 <동시발전소>의 창간이 우리 동시문학 발전과 전 국민이 동시 불빛을 누리는 발전소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이번 호는 여름호이지만 봄호 계평 원고 마감 이후에 출간된 많은 늦은 ‘봄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읽으며 겨울을 견디고, 봄을 맞이하는 시의 빛깔과 자세를 살펴보려 합니다.
1. 겨울을 견디는 시들
달콤하지도/ 향기롭지도 않아/ 그런데, 주먹만한 요 폭탄 한 번 맞으면/ 웃음이 터져. 꽃잎처럼/ 웃음이 날아다녀. 운동장 가득/ 정말이야/ 눈 오는 아침/ 모두 모두 운동장으로 나와 봐.
-이화주의 ‘눈싸움’ 전문 <아동문예> 2019년 3.4월호
바스락바스락 가랑잎이 모여 들어/ 언 땅의 씨앗들을 덮어주지.// 흙덩이가 곱은 손으로/ 발발 떨고 있는 나무뿌리를 꼬옥 잡아주지.// 별이 총총 시린 밤// 큰 나무들은 어린 나무에게/기다리는 법을 조근조근 가르쳐주지.
-차영미의 ‘겨울밤에는’ 전문 <아동문학평론> 2018년 겨울호
햇살이 꼬드겨도/ 서둘러 익지 않을 거야/ 바람이 간질여도/ 꼭지 손 놓지 않을 거야/ 사람들이 아무리 올려다봐도/ 모른 체 할 거야/ 절대로 호기심에/ 뛰어내리지 않을 거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익어/ 첫눈을 만날 테야/ 머리에 하얀 눈 모자 쓴 날/ 날개 지친 까치를 만나겠지?/ 배고픈 까치의/ 한 끼 밥
이 되는 일,/ 정말이지 근사할 거야
-김수희의 ‘까치밥’ 전문 <동시발전소> 2019년 봄 창간호
모두 겨울을 배경으로 하는 시들입니다. 생명을 가진 이들에게 있어 겨울은 죽음과 직면하는 계절이지요. 그러기에 힘없는 것이든 아니든 겨울과 맞서거나 겨울이라는 혹한에 순종하거나 목숨을 잃거나 하는 갈등을 겪지요.
이화주의 시 ‘눈싸움’ 속의 아이들은 겨울과 맞서고 있네요. 결코 달콤하지도 향기롭지도 않은 눈 ‘폭탄’으로 눈싸움을 하며 겨울을 이겨냅니다. 눈 오는 아침, 가방을 교실에 던져놓고 운동장으로 뛰쳐나와 웃음 뭉치를 날립니다. 추운 운동장의 하늘이 꽃잎처럼 웃음으로 가득하네요. 야! 야! 하며 웃음 뭉치를 날리느라 손이 빨개진 아이들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요란하네요. 아이들은 겨울과 맞서 그렇게 그 혹독한 겨울을 견딥니다. 눈뭉치를 폭탄 또는 웃음이라는 은유로, 겨울을 상대해 볼만한 신나는 계절로 그려냅니다.
차영미의 ‘겨울밤에는’은 앞의 ‘눈싸움’과 달리 혹한에 순응하며 겨울을 나는 힘없는 것들의 이야기네요. 동적이기보다는 오히려 나직이 공존하려는 양상을 보입니다. 작은 씨앗과 발발 떠는 나무뿌리가 겨울을 나는 데는 가랑잎이나 흙덩이의 도움이 필요하지요. 그들은 약자가 처한 언 땅의 씨앗을 덮어주고, 나무뿌리를 잡아주고,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겨울을 건너는 법을 들려주면서 추운 강을 함께 건너지요. 삼동을 나는 인내의 뒤에 약자를 보듬어 품는 사랑을 간과할 수 없겠네요.
김수희의 시 ‘까치밥’ 은 더욱 적극적으로. 그러니까 자기 주도적으로 겨울을 임하는 자세가 비장하기까지 합니다. 자기 헌신적 자세네요. 까치밥이 나뭇가지에서 떨어지지 않는 까닭은 그곳에서 첫눈을 만나고, 하얗게 눈 내려 먹을 것을 찾지 못하고 떠는 까치의 한 끼 밥이 되고자 하는 ‘근사한’ 헌신 때문이지요. 종교적 헌신 공양의 의지를 보는 것 같아 매섭기도 하네요. 이 시에 나오는 까치밥은 자신을 그렇게 던짐으로서 다시 부활하기를 꿈꾸며 겨울을 맞습니다.
2. 봄을 맞이하는 자세
내 눈높이 보다/ 높은 세상을 본다// 물컹한 바닥을 차고/ 떠오른다// 하늘 천정을 향해/ 쉼없이 솟아오르는 아이들// 휘청,/ 몸이 기울어지면/ 더 힘차게 발을 굴러/ 몸을 세운다// 숨이 벅차/ 두 빰이 불그레진 얼굴들// 트램펄린 위에서 영원히 뛸 수는 없어/ 하나 둘/ 아이들이 아래로 가라앉는다// 더 높은 세상을 본다// 내 발밑에는/ 아직 트램펄린
-김물의 ‘트램펄린’ 전문 <어린이와 문학> 2019년 3월호
잠깐, 기다려 봐/ 난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이별의 말이 필요하고/ 나도 처음이라서/ 용기가 필요하단 말이야// 얼마나 세게 불지도 말해 주면 좋겠어/ 어디까지 날아가면 좋을지 생각 좀 할 거야// 바람이 오면 나는/ 민들레 꽃씨답게/ 가볍고 고요하게/ 날아오를 테지만/ 너와 나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한 수가 있다면 더 좋을 거야// 나를 들고 있는/ 지금 네 손의 떨림과/ 개구리 울음주머니처럼 부푼 두 볼과/ 네 눈빛 속에 빛나는 나를 기억할게// 자, 이제 나 준비됐어!
-신재순의 ‘민들레 꽃씨를 날리는 자세’ 전문 <동시마중> 2019년 3.4월호
고양이는 막내아들의 방문 앞에/장화를 벗어 놓고/길을 떠나며 말했다// -너 가져./ 생각보다 불편하더라./ 난 다시 맨발로 세상을 걸어볼래.
-방주현의 ‘장화 벗은 고양이’ 전문 <동시마중> 2019년 3.4월호
위 세 편의 시엔 겨울을 견디는 이유, 그러니까 봄을 맞이하는 시와 시인의 자세가 엿보입니다. 이들 시가 보이는 시련은 단지 시간적으로 겪어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반성적이고 또한 생명 진화의 계기로 삼습니다.
김물의 시 ‘트램펄린’ 에 그런 모습이 잘 나타납니다. 골목길이나 놀이터에 설치된 트램펄린에 모여들어 아이들이 그 운동기구를 탑니다. 방안에서 한껏 웅크리며 살아온 아이들이 물컹한 트램펄린의 바닥을 차고 뛰어오릅니다. 그들이 두 뺨이 붉어지도록 트램펄린을 타는 까닭은 무얼까요. ‘더 높은 세상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네 인생길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을 보여주듯 트램펄린 역시 그러하며, 그 반복되는 놀이를 통해 더 높은 세상을 꿈꾸는 자세를 보여줍니다.
신재순의 시 ‘민들레 꽃씨를 날리는 자세’에는 한 생명이 더 넓은 세상으로 출발하기 위해 맞는 결별과 그 설레임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향해 떠나는 일은 누구에게나 처음 있는 일이고, 그래서 서툴고, 이별의 아픔과 두려움
과 설레임의 고통을 겪는 거지요. 작별을 향한 설레임과 그 자세를 심리적으로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방주현의 ‘장화 벗은 고양이’에서는 존재가 어떻게 세상의 봄을 향해 나가야하는가를 명쾌하게 말해주고 있네요. 시가 말하는 떠나는 자의 자세는 이렇습니다. 소유와 탐욕에서 벗어나 홀가분해질 것, 위선으로부터 벗어나 솔직해질 것, 한 곳에 머물지 말고 멀리 떠날 것을 간소한 말로 에둘러 권하고 있습니다.
지금보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보다 솔직한 나 자신과 함께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기를 바라는 시인의 심정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시들입니다.
다루지 못하여 아쉬운 시들이 있습니다. 임수연의 ‘메아리’, 정유경의 ‘위대한 뻥쟁이’, 박미림의 ‘식탁역에서’ 역시 매우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지금 한창인 벚꽃이 지면 모란이 필 테고, 긴 장마 중에 칸나가 필 무렵 나는 다시 가을호를 쓰게 되겠지요. 그때 뵙겠습니다.
<아동문학평론 2019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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