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동심과 은유와 공존의 시들
권영상
지난 겨울호 동시는 유례없이 풍성했다. 동시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 좋은 동시들 중에 인위적으로 8편만 골라 한 계절 평을 쓴다는 일이 잔인하지 싶었다. 솔직히 말하지만 내가 하는 이 계절 비평은 엄밀한 의미의 비평이 아니다. 같이 동시를 쓰는 동업자의 눈으로 보는 감상문에 가깝다. 전문 비평자라면 날카롭게 발언했을만한 일도 그런 의미에서 비평을 하기에 앞서 동시쓰기의 어려움을 나는 먼저 생각했다. 팔이 안으로 굽듯 어려운 소재나 주제를 다루어내는 그 구부림의 노고를 생각하느라 작은 성과도 크게 말해온 게 사실이다.
앞으로는 가급적 지난 호에 발표된 좋은 유형의 시를 한 편이라도 더 보여주는 일, 나는 대체로 거기에서 머무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이번호에는 대체로 좀 엉뚱한 발상이거나 엉뚱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동시 4편, 아름다운 은유의 기법을 차용한 동시 4편, 그리고 생존과 공존을 다룬 시 5편, 모두 13편을 인용하려 한다. 여전히 그 밖의 시들을 언급하지 못함이 아쉽고 미안하다.
1. 엉뚱한 동심
약수터 한켠에/ 모이로 뿌려준 보리를/ 새들은 먹지 않고 가꾼다./ 노래로 춤으로/ 싹을 틔우고/ 새파랗게 키를 높인다./ 하늘은 햇살과 비를 내려주고/ 바람은 온갖 숨결을 불어넣어 주고/ 다람쥐는 털 방망이를 세워 지켜주고/ 자벌레는 얼마나 컸나/ 그림자를 재면서 지나간다./ 모이를 남겨 짓는/ 새들의 보리농사./ 두어 뼘 보리밭이/ 아득히 펼쳐지며 일렁인다.
-백우선의 ‘새들의 보리밭’ 전문 <아동문학평론> 2017년 겨울호
가끔/ 머리가 긴 나를 상상한다./ 상상 속의 나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치마를 입고/ 턱을 높이 쳐들고/ 실눈을 뜨고/ 잘난 척 걸어간다.// 머리카락이 사람들 얼굴에 붙어도/ 꽃밭에 갓 심은 튤립 모종을 뽑아도/ 앞집 꼬마 동우의 아이스크림에 붙어도/ 절대 고개 숙이지 않는다./ 함부로 사과하지 않는다./ 나는 얼음나라 왕비님 역할을 맡았으니까.// 아하 호호 깔깔./ 책상을 꽝 치며 상상에서 깨어난다./ 내가 이런 상상하는 줄/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난 생각한다./ 아무도 모르는 내가 하나쯤 있어야 한다고!
-김개미의 ‘상상 속의 나’ 전문 <시와 동화> 2017년 겨울호
동시는 현실이라는 틀 안에서만 숨 쉬어야 하는가. 동시의 배후엔 현실이 깔려있어야만 하는가. 때로는 그런 불평을 내게 해 본다. 동시가 현실을 벗어나면 뭐 어떻다는 건가. 새로운 한 차원의 낯선 세상이 열리는 것 같지 않은가.
백우선의 ‘새들의 보리밭’은 역시 엉뚱해 좋다. 약수터 한켠에 모이로 뿌려준 보리를 새들이 먹지 않고 가꾼단다. 정말 그럴까. 야생의 새들이 보리를 가꾼다? 보리를 가꾸느라 노래 부른다? 춤을 춘다? 정말 그럴까. 새들이 보리농사를 짓는다는 말은 맞을까? 어느 것 하나 사실인 게 없다. 상상이라도 엉뚱한 상상이다. 그래서 어떤가. 시인은 약수터 빈터에서 돋아나는 몇 개의 보리싹에서 ‘두어 뼘 보리밭이/ 아득히 펼쳐지며 일렁이’는 만족스런 상상에 젖는다. 시인만 그런가. 읽는 독자도 한 순간 상상의 기쁨에 빠진다. 세상을 즐겁게 해석해내는, 미증유의 세계를 펼쳐 보여주는 시인의 시안이 흥미롭다.
김개미의 ‘상상 속의 나’ 역시 엉뚱한 상상이다. 나는 키가 작고, 머리칼이 짧고, 고분고분하고, 남에게 업신여김을 받기 쉬운 아이지만 내가 종종 가는 거기, 꿈속에서만은 아니다. 긴 머리를 하고, 긴 치마를 입고, 남에게 절대 고개 숙이거나 사과하지 않는 도도한 왕비다. 그래서 어떻다는 건가? 그래서 나는 통쾌하다. 아무도 내 속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이 상상이 나는 기쁘다. 공감력이 있는 즐거운 시다. 두 시 모두 내면으로 숨어드는 특성이 있다.
밤하늘엔 크고 검은/ 애꾸눈 고양이 한 마리가 살고 있대// 비 오는 밤이면/ 하늘 어딘가로 숨고/ 흐린 밤에는/ 구름 뒤에서 기다리다가// 밤하늘 맑아지면/ 동그란 눈 살짝 열어/ 지구 고양이 안부를/ 묻곤 한 대.// 애꾸눈 고양이가 눈뜨면/ 담벼락 타던 도둑고양이/ 뒷골목에 웅크린 길고양이// 눈빛 주파수 맞추며/ 소식 주고받는대// 고양이가 밤새 아이 울음 우는 날은/ 애꾸눈 그리워 우는 것이래
-이옥근의 ‘애꾸눈 고양이 달의 전설’ 전문 <어린이와 문학> 2017년 12월호
원숭이들만 사는/ 온천 동네로/ 온천 목욕하러 갔다// 동네 한가운데에/ 김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커다란 노천 목욕탕에/ 원숭이들이 바글바글했다// 온천 규정에 따라/ 원숭이 털이 달린/ 목욕옷을 입고 입장했다/ 털옷이 불편하고/ 입장료가 조금 비쌌지만 말이다.// 그런데 목욕탕에 들어가자마자/ 나도 모르게 꽥꽥 소리를 질렀다/ 신나게 물장구를 쳐도/ 누구 하나 나무라지 않았다/ 엉덩이가 빨개졌다/ 팔이 조금 길어진 것 같았다// 어깨의 털을 골라 드린/ 할아버지 원숭이한테서는/ 열심히 공부해/ 훌륭한 원숭이가 되라는 말씀도 들었다
-송찬호의 ‘온천 목욕’ 전문 <동시마중> 2018년 1.2월호
앞의 두 편과 달리 위의 두 시는 또 다른 차원의 엉뚱한 동심을 보여준다. 있음직한 이야기가 아닌 전혀 없는 이야기로 전설을 만들고 꿈꿀만한 세계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이옥근의 ‘애꾸는 고양이 달의 전설’은 제목 그대로 이 세상에 없는, 누구도 상상해내지 못한 낯선 전설을 창조해내고 있다. 밤하늘에 애꾸눈 고양이(달)가 살고 있다. 그는 맑은 밤이면 지구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과 서로 소식을 주고받는다. 지구의 고양이들도 애꾸눈 고양이가 그리우면 아기울음을 울며 제 마음을 전한다. 한편의 그럴 듯한 에피소드다. 적절히 가공한다면 훌륭한 전설 아닌 전설이 되고도 남겠다.
송찬호의 ‘온천 목욕’ 역시 엉뚱하기는 마찬가지다. 정말 원숭이 털 달린 목욕옷 입고 목욕탕 들어간 게 맞을까? 다른데 비해 목욕요금 좀 비싸다는 말 거짓말 아닐까. 그 목욕탕에 들어가면 원숭이가 되어 꽥꽥 소리 질러지는 거 맞을까? 정말 엉덩이가 빨개지고 팔이 원숭이처럼 길어지는 걸까?
근데 그 말 믿고 싶어진다. 그런 목욕탕 어디 있었으면 좋겠다. 인터넷을 뒤져 거길 찾아가 원숭이가 되어보고 싶다. 동심을 가진 어린이이라면 그런 목욕탕이 어디에 있구나, 하는 꿈꾸어 볼만한 홀림이 이 시에 있어 행복하다.
2. 아름다운 은유의 세계
선율아 그 벌레의 이름은 무얼까// 오늘 아침 다리에서 만난 그 벌레/ 물창포 씨앗보다 작고/ 병아리 눈알보다 까맸던/ 그 벌레/ 내 손등에서/ 네 손가락으로/ 건너갔던 그 벌레// 그 이름은 이제 우릴 멈춰 서게할 텐데/ 선율아 그 벌레 이름 무얼까
-송선미의 ‘그 벌레의 이름은’ 전문 <동시마중> 2018년 1.2월호
폭우 그친/ 뒷산에/ 길 잃은 물들// 풀잎 머리 잘못 밟고/ 훌러덩 미끄러지는 물/ 바위 틈새 파고들다/ 되돌아 나오는 물/ 낭떠러지로 뛰어내리며/ 비명을 지르는 물// 어쩌나,/ 갈팡질팡하는 것 보며/ 걱정했는데// 어, 가만 보니/ 요란하게 떠들어대면서도/ 낮은 곳으로 몸을 트는 거였네.// 제 길을 찾아/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거였네.// 골짜기에 다다른 물들/ 어깨를 겯고/ 콸콸철철 박자 맞춰 흘러가고 있었네.
-박소명의 ‘길 잃은 물’ 전문 <열린아동문학> 2017년 겨울호
출생 기념으로/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지요./ 정말 소중한 것이라서/ 뱃속 깊은 데다 채워 주셨어요./ 죽을 때까지 그 누구도/ 풀어볼 수 없어요.
-이정록의 ‘배꼽시계’ 전문 <동시마중> 2018년 1.2월호
시의 기본은 은유다. 사물의 본질을 보다 정확하게 찾아내려는 데서 발전한 비유다. 비유는 부수적인 아름다움으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유사성이나 연상, 또는 시의 중심 개념을 찾아가는 복잡한 임무에 충실하기도 한다.
송선미의 ‘그 벌레의 이름은’ 은유로 말미암아 시 자체가 아름다운 정서를 자아낸다. 이 시는 ‘그 벌레’의 이름을 질문하는데서 출발한다. 그러니까 숨은 은유를 독자와 함께 찾아가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시인이 묻는 ‘내 손등에서 네 손가락으로 건너가던 그 벌레’는 단순히 생물도감 속에 있는 벌레가 아닐 수도 있다. 궁금해지는 것은 시인이 못내 부르는 ‘선율’이라는 인물이다. 몇 살일까. 사랑이라는 것을 아는 나이일까. 화자는 그와 어떤 관계를 만들고 싶어하는 걸까. 혹시 그 벌레의 이름이 우정이거나 사랑이거나 그리움은 아닐까. 막연한 것에 대한 개념을 찾아가는 잘 만들어진 은유의 시다.
박소명의 ‘길 잃은 물’엔 일련의 연상을 일으키는 은유가 있다. 갈팡질팡 어지럽게 흐르는 듯한 그 물이란 뭘까. 그 혼돈 같은 물도 종국에는 다 제 갈 길을 찾아가는 순한 질서더라는 데에 이르면 이 물이 단순한 물만이 아님을 알게 된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말하는, 이제는 상징이 되어버린 은유다. 시를 다루는 손길이 능란하고 활달하다
이정록의 ‘배꼽시계’엔 짧으면서도 강한 임팩트의 이미지가 있다. 배꼽시계의 원관념은 ‘배꼽’이다. 그것이 배꼽시계인 까닭은 그 부위에서 포만과 허기를 제일 먼저 감지하기 때문이다. 근데 시인은 그렇게 만들어진 은유인 배꼽시계를 이번에는 하느님이 ‘채워주신 선물’로 이미지를 새롭게 재생산한다. 죽을 때까지 누구도 이 시계를 풀어볼 수 없다고 단언함으로서 이 시가 말하려는 생명의 비밀을 보다 견고히 하고 있다.
3. 생존과 공존, 그 이유들
해가/ 집니다./ 아니, 져 줍니다.// 그래야/ 달이 돋거든요./ 별들도 또랑또랑 눈 뜨거든요.
-손동연의 ‘져 줍니다’ 전문 <동시마중> 2018년 1.2월호
참개구리 한 마리가/ 펄쩍펄쩍/ 도로를 무단 횡단하였다.// 아빠는 놀라/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하마터면/ 뒤차에 받힐 뻔 했다./ 날아온 건 삿대질이었다.// 참개구리는/ 아는지 모르는지/ 풍덩/ 건너편 웅덩이로 몸을 날렸다.// 난 뒷좌석에서 보았다./ 노을처럼 수면에 번져가는/ 둥근 물무늬를...../ 따스한 몸짓이었다.
-이정석의 ‘무단 횡단’ 전문 <열린아동문학> 2017년 겨울호
줄무늬,/ 뚱보,/ 삼색이,/ 아파트 안 고양이들이 안 보인다.// 나비야,/ 야옹아,/ 길냥아,/ 이름 부를 일이 없어졌다.// 단지와 단지 사잇길을/ 쪼르르르 내달리던 고양이./ 밤이면 애기 울음소리를 내/ 흉이었던 고양이.// 사료, 물 나눠주지 않으면서/ 쏟아버리고,/ 담았던 그릇 박살내는 사람들이 서운해/ 뒤돌아보며 뒤돌아보며/ 아파트를 떠났다.// 아파트 안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간지럼 태우던 고양이들이 떠나자,/ 아파트는 딱딱,/ 벽이 더 굳어졌다./ 웃을 일이 없어졌다.
-이상교의 ‘아파트와 고양이’ 전문 <어린이와 문학> 2018년 2월호
위의 시 세 편 모두 생존과 공존, 그리고 그 이유가 깃들어 있는 시들이다. 우리가 생존하는 까닭은 우리의 생명이 소중하기 때문이며, 공존의 이유는 타 생명체의 생명 역시 그러하며 우리의 생존이 그들의 생존과 긴밀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손동연의 ‘져 줍니다’는 공존의 이유를 달과 해의 운행으로 쉽고도 단촐하게 잘 보여준다. 그의 시엔 해 달 별 세 개의 개별 천체가 등장한다. 그들은 저마다 독존적인 존재다. 그러나 이 독존적인 존재가 독존하려면 서로 타 존재의 독존성을 인정해야 되고 그래야 비로소 세 존재는 공존이 가능하다. 그런 까닭에 시인은 해가 ‘지는 게’ 아니라 달과 별을 위해 ‘져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진정한 공존은 상대의 독존성을 솔직하게 배려해주는데 있다.
이정석의 ‘무단 횡단’은 타자들과의 공존이 얼마나 어려운지, 공존의 기쁨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잘 보여준다. 참개구리를 지켜주기 위해 아빠는 아빠와 나의 생명을 걸고 브레이크를 밟는다. 참개구리는 무사히 살아나고 그는 ‘아는지 모르는지’ 웅덩이에 풍덩 몸을 날린다. 그때 참개구리가 물웅덩이에 그려내던 ‘노을처럼 수면에 번져가는/둥근 물무늬’, 이 물무늬를 보호하고 지켜주기 위해 우리에겐 타자들과 공존할 이유가 있다.
이상교의 ‘아파트와 고양이’는 우리가 공존을 무시할 때 야기되는 현상을 적시하고 있다. 고양이들이 아파트를 떠났다. 친구처럼 고양이 이름을 불러줄 일이 없어졌다. 더 이상 고양이 울음 들을 일이 없어졌다. ‘아파트가 딱딱’해지고, ‘벽이 더 굳어졌고’, 무엇보다 고양이로 인해 일어나던 ‘웃을 일이 없어졌다’.
키 작은 아이는 담벼락에 기대어 서 있다./ 파란 체육복 아이가 키 작은 아이의 다리 사이로 머리를 박고/ 빼빼 마른 아이가 파란 체육복 아이의 다리 사이로 머리를 박고 있다./ 아이들의 옷이 말려져 등허리가 나왔다./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여자아이가 풀짝 파란 체육복 아이 등에 타 있고/ 뚱뚱한 아이가 하늘을 붕 날고 있다./ 열 걸음 뒤에는 키득키득 웃는 아이가 뛸 준비를 하고 있다.// “동네 아이들이 여기 다 모였구먼”/ “이제야 사람 사는 동네 같네”// 마을 회관 담벼락 그림 앞에서/ 동네 할머니들 유모차// 멈춤!
-송명원의 ‘멈춤!’ 전문 <열린아동문학> 2017년 겨울호
송명원의 ‘멈춤!’이다. 아이들이 동네 마을회관 앞에 모여들어 말뚝박기놀이에 여념이 없다. 아이들 노는 소리에 마을이 환하게 살아난다. 할머니들만 사는 마을은 사람 사는 마을이 아니다. 아이들과 함께 살 때에야 비로소 사람 사는 마을이 된다는 메시지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화두가 공존이다. 공존에 관한 시가 특별히 많았다.
봄호 계평도 끝났다. 처음 13편을 소개하려던 약속이 틀어졌다. 분량이 늘어나는 관계로 11편으로 그쳤다. 다양하고 풍성한 시들을 흥미있게 읽어낸 이 겨울이 고맙다. 그리고 기운차게 써내는 시인들과 점점 높아지는 시의 수준에 경의를 표한다. 계평의 기회를 다시 주어 이를 무겁게 받는다.
<2018년 아동문학평론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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