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

내가 읽은 이해인 수녀의 시

권영상 2017. 11. 6. 19:49

<내가 읽은 이해인 수녀의 시>


원활한 소통의 문을 열다

권영상 (權寧相)



3월 14일. 이 도시에도 지금 봄이 와 있습니다. 북창에서 찌르레기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울음에 파란 봄이 배어있습니다. 나는 다들 출근하고 없는 거실로 나왔습니다. 노란 봄볕이 거실바닥에 소복이 쌓여있습니다. 말리던 사과껍질을 봄볕 안에 당겨놓습니다. 집에서 생긴 사과껍질을 또각또각 잘라 말려 텃밭에 낼 생각입니다. 마른 사과 껍질이어도 내가 몸을 움칠, 하면 사과 향이 날아와 코에 닿습니다.

나는 사과껍질 곁에 이해인 수녀님의 시 전집을 펴고 앉아 한장 한장 넘깁니다.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잘 짜여진 견고한 집이고 인생입니다. 이 따사로운 봄볕에 앉아 ‘당신’을 향한 수도자이며 한 시인인, 그의 기도와 우리의 인생을 더듬습니다.


꽃 지고 난 뒤

바람 속에 홀로 서서

씨를 키우고

씨를 날리는 꽃나무의 빈집


쓸쓸해도 자유로운

그 고요한 웃음으로

평화로운 빈손으로


나도 모든 이에게

살뜰한 정 나누어주고

그 열매 익기 전에

떠날 수 있을까.


만남보다

빨리 오는 이별 앞에

삶은 가끔 눈물겨워도

아름다웠다고 고백하는

해 질 무렵의 어느 날


애틋하게 물드는

내 가슴의 노을빛 빈집



시집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에 수록된 “해 질 무렵 어느 날”입니다. 읽을수록 ‘애틋하게 물드는/ 내 가슴의 노을빛 빈집’이 자꾸 나를 붙잡습니다.

살다보면 이런 ‘빈집’과 마주 설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빈집이지만 그 빈집도 처음에는 ‘큰집’이었겠지요. 아내도 있고, 자식도 있고, 넘칠 만큼 풍부한 능력도 있었을 테니, 처음엔 ‘큰집’이었지요. 그런데 그 큰집도 살뜰했던 정이며 눈물이며 한 줄기 남은 울음마저 다 주고 나면 결국은 물이 마른 빈 우물처럼 쓸쓸해지겠지요. 그렇기는 하겠지만 언젠가 바람 한 줄기를 안으면 제 몸을 울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어내기도 할 테지요.



이해인 수녀님의 빈집은 번화한 도심에 놓이기를 거부합니다. 많이 배운 자가 언제나 행복해지는 도심이 아니고, 큰 목소리를 가진 자가 언제나 작은 목소리를 이기는 도심이 아닙니다. 수녀님이 지향하는 곳은 그곳에서 상처받은 이들이 모여드는 외딴 마을입니다.

아무리 외딴 마을이어도 누구 한 사람 있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리 산골짜기 외딴 곳이어도 산나리 한 송이 피어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그곳에 산나리 한 송이 피어있지 않다면 그건 산도 아니지요. 외딴 마을에 누구 한 사람 있어주지 않는다면 그곳은 마을도 아니지요. 우리가 사는 땅에 수녀님 한 분 없다면 그건 사람 사는 땅도 아니지요. 나는 언젠가 수녀님에게 보낸 편지에 ‘남쪽 광안리 바닷가 어디쯤에 수녀님이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깨끗합니다.’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다들 외면하는, 마치 외딴 세상 같은 ‘여기’엔 영혼이 은신할 빈집이 필요합니다. 상처받은 이들이 찾아왔을 때 ‘언제라도 문을 열어 반길’수 있는 수녀님의 빈집을 나는 이 시선집 속에서 무수히 보았습니다.



아직 한 번도/ 당신을/ 직접 뵙지는 못했군요.// 기다림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를/ 기다려보지 못한 이들은/ 잘 모릅니다.// 좋아하면서도/ 만나지 못하고/ 서로 어긋나는 안타까움을/ 어긋나보지 않은 이들은/ 잘 모릅니다.// 날마다 그리움으로 길어진 꽃술/ 내 분홍빛 애틋한 사랑은/ 언제까지 홀로여야 할까요? //오랜 세월/ 침묵 속에서/ 나는 당신께 말하는 법을 배웠고/ 어둠 속에서/ 위로 없이도 신뢰하는 법을 익혀왔습니다.//죽어서라도 꼭/ 당신을 만나야지요./ 사랑은 죽음보다 강함을/ 오늘은 어제보다/ 더욱 믿으니까요.



시 “상사화”입니다.

‘나는 기도할 때 아무 말도 않고 오로지 신의 목소리를 듣기만 합니다. 신께서도 아무 말씀 하시지 않고 제 말씀을 듣기만 하십니다.’라던 테레사 수녀님의 신과의 소통법을 떠올려 봅니다. ‘당신을 직접 뵙지 못한’ 수녀님 또한 신과의 어긋나는 소통을 안타까워하고 염려합니다. 불통의 안타까움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그 아픔을 알기에 수녀님은 오랜 세월 ‘당신’에게 하듯 ‘말하는 법’으로 시를 썼고, 당신을 ‘신뢰하는 법’으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여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시가 독자와 전혀 소통되지 않던 시대에 수녀님은 문단에 나오셨고, 시집 <민들레의 영토> 이후 9권의 시집과 10여권의 기도시집과, 동시집, 꽃시집과 7권의 산문집을 내시면서 세상과 원활히 소통하는 문을 여셨습니다. 무엇보다 어린아이를 위해 기도하시듯 쉬운 말로 감동과 공감을 이끌어낸 수녀님의 문학적 기여를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겠습니다.



꽃 지고 난 뒤

바람 속에 홀로 서서

씨를 키우고

씨를 날리는 꽃나무의 빈집

나도 또 언젠가는 ‘빈집’이 되어, 이 영원할 것 같은 자리에서 슬며시 떠나게 되겠지요. 봄볕에 마르는 사과껍질을 헤적입니다. 이것도 흙으로 돌아가면 또 누군가의 생명을 한 송이 피울 테지요.


<문학사상>2014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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