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시에서 서사시 관념시 그리고 동심
--권영상의 시세계--
노 경 수(문학박사, 한서대 교수, 아동문학평론가)
권영상은 1952년 3월 1일 강릉시 초당동 361번지에서 부친 權貞洙씨와 모친 辛在花씨의 3남 3녀 중에서 3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安東이고 법률상으로는 1953년 4월 10일생으로 되어있다. 그는 강릉중학교와 강릉상업고등학교를 거쳐 강릉교육대학교를 졸업했다. 이어서 관동대학 국어교육학과에 편입하여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윤동주 시의 원형적 탐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979년 아동문학 잡지, 월간 아동문예에 <새>가 천료되었으며, 본격적인 문단활동은 1980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길>이 당선되면서부터이다.
현재 배문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그는 1986년 한국동시문학상(아동문예), 1987년 계몽아동문학상(계몽사), 1989년 세종아동문학상, 1991년 새싹문학상, 1993년 MBC 동화대상(MBC)을 수상했으며 2001년에는 이육사문학상 수상을 거부했다.
그는 문단활동 23년 동안 동시집 『단풍을 몰고오는 햇살』(1981)을 출발로 12권의 동시집을 냈고, 단편동화집 8권, 장편동화집5권, 유년전래동화집 2권과 유년창작동화집 11권, 위인동화집 10권을 출간했다.
그는 23년간 문단활동을 한 중견작가로서 이렇듯 방대한 저서를 출간했는데 아동문학사에 남긴 그의 많은 업적 중에서 동시세계를 살펴보고 그가 추구하는 문학세계를 들여다보았다. 텍스트로는 그의 동시집 『햇살에서 나오는 아이들』외 8권의 시집으로 했다.
권영상의 시세계
1) 자연의 경이, 서정시
서정시는 흔히 감성이라고 통칭되는 마음의 움직임을 전달하는 양식인데 초기 그의 시들을 살펴보면 동심보다는 자연과 햇살을 토대로 시인의 감성을 노래한 시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햇살에서 나오는 아이들』(1985, 아동문예)을 보면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햇살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그의 주관적 감성을 노래한 시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이 시집의 출간으로 그는 1986년에 <한국동시문학상>을 받는다.
햇살의 사전적 정의는 부챗살처럼 퍼져서 내쏘는 햇빛이다. 햇빛은 해의 빛, 즉 밝음을 나타내는 것인데 이 밝음이 부채살처럼 퍼져나갈 때를 햇살이라고 한다. 즉, 구름이나 우거진 숲 속, 썬팅된 창문 등 빛을 가로막는 것들을 뚫고 나가는 해의 光線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이러한 햇살을 여러 방면의 관점에서 자신의 감성으로 관찰했다.
태양에서 보는/ 지구의 제일 첫 페이지// 옛날// 햇살은/ 여기서부터/ 덧신을 벗고//
마을로 걸어 들어왔다.
<바닷가> 전문
위의 시는 그의 두 번째 시집 『햇살에서 나오는 아이들』의 첫장에 실려 있다. 신은 인간에게 유용한 것들을 가장 흔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햇빛이고 공기이고 물이다. 그러나 인간은 신이 부여한 것의 가치를 외면하고 희소성에 근거하여 사용가치보다는 교환가치로서 보다 더 가치로운 것들을 만들어 냈다. 햇살보다는 금이나 다이아몬드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권영상 시인은 신이 부여한 사용가치의 소중함을 햇살로 들여다보고 그것이 지구에 닿는 첫 발짝을 사유한다.
햇빛의 줄기, 햇살은 생명의 근원이다. 그 생명의 근원인 빛의 줄기가 지구에 제일 먼저 닿는 곳이 어디일까. 그걸 생각한 시인의 발상을 김원기는 콜롬부스의 신대륙 발견에 빗대어 표현했는데 관점에 따라서는 과장된 감이 느껴지지도 하지만 사용가치로서의 소중함을 새겨본다면 시인의 관점에 참신성을 느낄 수 있다.
아기가/ 꽃씨를/ 심을 때//햇살도/ 몇 조각/ 따라 묻혔다//어두운/ 흙갈피서/ 꽃씨눈을 틔워// 파란 새싹으로/ 밀어올리기 위해// 아무도/ 모르는 사이/ 꽃씨 곁에 묻혔다
<꽃씨를 따라 간 햇살> 전문
위의 시에서 시인은 아기가 꽃씨를 심을 때 햇살도 몇 조각 따라 묻혔다, 고 했다. 아이가 꽃씨를 심을 때 햇살도 몇 조각 따라 묻었다고 심는자의 입장에서 능동적으로 말할 수 있었을 텐데 왜 시인은 그렇게 말하자 않고 햇살의 입장에서 말했을까. 꽃씨를 자라게 하는 것은 신의 영역이다. 그것을 시인은 동심을 통해 유추한다.
꽃씨와 아기는 똑같이 자연의 일부로써 희망의 상징이다. 햇살 아래 꽃씨를 심는 아기와 아기가 심은 꽃씨, 그것을 키우는 건 햇살(하늘)의 영역이다. 자연의 순환에서 바라본다면 햇살은 우주만물을 소생시키는 전능의 존재인 것이다.
그렇게 햇살의 출발에서부터 시작한 그의 시는 햇살의 영역을 서정적으로 노래하는데 <햇살에서 나오는 아이들>, <꽃씨의 하늘>, <별나라 임금>, <난장이들의 합창>, <아침을 싣고 오는 수레소리>, <개나리꽃>, <은에비>, <시간은> 등의 작품에서 그의 시심을 엿볼 수 있다.
이렇듯 햇살에 대한 경이로운 발견을 시로 빚어낸 그의 시를 유경환은 동화가 들어있는 시라고 했는데 그것은 그의 시 속에 들어있는 이야기를 통해 그의 동심을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의 네 번째 시집인 『한 해를 살면』에 보면 사계절의 변화에 대한 예찬이 들어있다. 그렇다고 커다랗고 장엄한 우주의 변화를 이야기 한 건 아니다. 작은 꽃잎하나, 새싹이 다칠까봐 살며시 내리는 은에비, 봄이 가는 소리, 가을 들판, 해, 달, 별 등 작은 것들을 통해 신의 섭리를 노래한다.
어느 때에/ 태어나셔서// 언제부터/ 이곳을 들르셨을까//
말없이/ 조용조용/ 뜨거운 눈길을 가지고/ 날마다/ 천천히 걸어오시는/ 그 분은//
버려진 땅도/ 밟힌 잡풀도// 어머니처럼/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지며 오신다.
<해> 전문
많은 시인들이 해의 속성인 따뜻함을 어머니의 품에 빗대어 말한다. 그러나 권영상 시인은 해의 특성인 따뜻함에서 벗어나 해의 자태를 본다. 해의 움직임을 예리하게 직시하면서 그것에서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자연의 질서, 순환 속에서 해의 역할은 잉태하게 하고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한다. 그것은 어머니만이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시인은 말없이 조용조용 뜨거운 눈길(사랑)을 가지고 날마다 천천히 걸어오시는 그분(해)을 이야기하는데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지며 오시는 어머니를 객관적 상관물로 끌어들임으로써 따뜻함의 범주에서 벗어난 것이다.
잉태와 출산과 양육, 시인은 자연의 변화와 인간의 변화를 하나로 보았고 해를 통해서 모성성을 발견하여 어린이들에게 그 의미를 확장시켜 보여준다.
2) 삼국유사를 다시 쓴 서사시
그런가 하면 1987년에는 서사동시 『동트는 하늘』(아동문예)를 발간한다. 시인이 이 시집의 서문에서 어린이들에게 삼국유사를 시로 읽게 한 데는 의의가 크지만 원작에서 어긋나지 않게 하려는 의도 때문에 시로써 형상화 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우리의 역사적 사건에 얽힌 신화나 전설 또는 영웅들의 사적인 일대기가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 나와 있지만 어린이들이 읽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 이렇게 어렵지만 알아야만 할 우리의 설화나 신화를 알기 쉽고 읽기 쉽게 만드는 것은 아동을 위한 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군가는 나서서 해야할 작업이라고 본다. 이러한 관점을 인식한 시인은 그것을 서사동시로 끌어냈는데 역사적 혹은 신화적 사건을 동화로 엮은 것은 흔히 볼 수 있지만 이러한 이야기에 시적인 비유를 끌어들여 동시라는 형식으로 재미를 더한 것은 나름대로는 의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옛 신라, 순정공 어른께서 아내 수로부인과 함께 동햇가를 따라 머나먼 강릉태수로 가던 때의 이야기지요. 신라의 서울 경주에서 강릉까지 걸어 천리 먼 길은 봄 햇살에 쑥쑥 피어오르는 풀잎 연두길. 누구인가 파란 도화지를 말았다 쏴아아 펴는 파도소리는 미역 냄새가 화아--. 그런 동해바닷길은 모래빛깔로 또 눈이 부셨지요.
아무데고 엄지손가락만 대어도 초록물이 들 것 같은 봄은 수로부인 마음을 마구마구 설레이게 하였지요.
우리 춘향이 마음같이 어여쁘게 설레이던 수로부인은, 동햇가 한나절 쯤에서 불처럼 타오르는 철쭉꽃 무덕을 문득 보곤, 하도 가슴이 뛰고 그리워
그걸 갖길 은근히 은근히 원했었지요.
그러나 바라본 거기는 천 길 벼랑, 아무도 손 대일 수 없는 여인네의 가슴 같은 벼랑. 그 중턱에 숯불같이 걸린 철쭉꽃 무덕.
그걸 누가 감히 꺾어올 수 있겠어요. 아무도 못해요. 그건 죽음이예요.
그렇게들 떨고 있는 무리 속으로 다가온 견우노인이, 내 그걸 꺾어오리다. 하고 나섰으니 부끄럼 잘 타는 수로부인 마음이 오죽했겠어요.
부인,
꽃빛처럼 타오르는 부끄럼을 감추어요.
두 볼로 드러나는 수줍음이 보여요.
<수로부인1> 전문
산골짝서 나뭇짐을 지고 더벅머리 총각들이 내려올 적엔 으레 산철쭉 진달래도 수부룩히 꽂고 오지요. 마을 우물터를 지나칠 때면 댕기 빨간 처녀들이 당실당실 달려나와 하나씩 하나씩 꽃가질 뽑아선, 온가슴 가슴가슴, 머리마다 짙붉게 꽂고는 했지요.
타오르는 봄을 온 몸덩이로 불 붙인다 이거지요.
우리 그 옛날 시골 마을 처녀들처럼 수로부인도 철쭉꽃가지로 머리핀을 하고 싶어 참 은근히 안달을 하셨는가 봐요.
그런 이쁘시게도 안달하는 수로부인이 고와 동해 바다용이 댈룽 부인을 업고 바다 속으로 사라졌으니 아이 참 이거 어쩌란 말인가요.
글쎄 그뿐만 아니어요.
강물을 지키는 강물신,
연꽃을 지키는 연꽃신,
산맥을 돌보는 산신령님도
수로부인이 그리울 땐 덥썩 업고 사라지곤 했지요.
이렇게도 우리 수로부인께서 이쁘고 탐이 나는 터라
왠만한 봄날이면 바깥 나들이는 아예 못하였지요.
하여간 바다 속이나 강물에서 돌아온 수로부인의 옷섶에선 정말이지 푸른 향료와 그윽한 무지개 냄새가 났어요.
이 땅 어디에서도 맡을 수 없는 그런 냄새가.
아아, 바람기 살짝 있는 우리 수로여인님께 철쭉꽃가지 하날 살그머니 드리고 싶은 이 마음,
어쩌면 좋아요.
<수로부인2> 전문
그의 서사시는 수로부인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삼국유사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에 시적 비유를 끌어들여 재미와 감동을 더했다. 만파식적이나 서동과 선화공주, 아버지를 가둔 견훤, 이차돈, 봉덕사의 범종, 원효스님 등 삼국유사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들이 그에 의해서 시적으로 승화되어 한 편의 서사시로 다시 탄생한다.
3) 그가 느낀 부성애 그리고 관념시
1985년 4월 시인 권영상은 아버지를 여읜다. 그러면서 그의 시에는 아버지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아버지와 아들과의 끈끈한 정, 속깊은 사랑을 시인은 아버지를 여의고 나서야 깨닫게 되고 그것을 모티브로 시를 쓰게 되는데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 승화시킨 것이다.
'작은 것을 더욱 아끼는 시집'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밥풀』에는 시인이 부제에서 말하는 것처럼 작은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의 쏟아놓는다.
<담요 한 장 속에>, <국밥집에서>, <아버지의 발톱>, <목장갑>, <겨울 기다리기>, <볏짚방석>, <허수아비>, <봄인데도> 등은 생전의 아버지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냄으로써 시인의 가슴에 쌓아둔 그리움을 승화시킨다.
뜨락 위에 벗어 놓으신/ 아버지의 목장갑// 풀을 베다 오셨는지/ 풀물이 푸르게 밴/ 목장갑은// 나른한 오후처럼/ 지친 채로 누웠다/ 옴켜쥐면/ 한 옴큼밖에 안될/ 낡은 목장갑은// 아버지의/ 닳은 손처럼/ 험하다.//
<목장갑> 전문
가을이 갈 때까지/ 허수아비는/ 논벌에 서 있어야 한다// 한 자리에 서서/ 그 넓은 논벌을/ 혼자/ 지켜야 한다// 바람이 불어/ 쓰러지기 전에는/ 한 번도 편안히 눕지 못하는/ 허수아비// 논두렁에 서 계시는/ 아버지의 종아리에도/ 툭--/ 힘줄이 굵다
<허수아비> 전문
위의 시처럼 시인은 아버지를 이야기하는데 낡아빠진 목장갑이나 찬 바람에 홀로 맞서고 있는 허수아비를 끌어들였다. 시인의 기억속에 아버지는 꼴을 베거나 논두렁에서 밭이랑에서 허리를 굽혀 일하는 모습이거나 깊은 밤에는 등잔불 아래서 짚방석을 삼는 모습이고 또 <국밥집에서>처럼 장터 국밥집에서 아들에게 숟가락을 쥐어주시는 모습이다. 그러면서 '영상아!'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 특별한 목적도 없이 그저 아들의 이름을 불러보는 아버지의 모습 속에는 아들에 대한 기대와 든든함, 자랑스러움까지 묻어난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수줍어하는 아들, 그 행과 행 사이에는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그리움이 숨어 있다.
그의 아홉 번째 시집 『아흔아홉 개의 꿈』에는 아버지에 관한 시들이 보다 많이 실려있다. <아버지의 발>,<안개 속에서>,<무릎책상을 물려받던 날>,<네 발이 듣겠다>,<오줌을 좀>,<할아버지의 라이터> 그리고 연작시인 <아버지와 아들>은 아버지에 관한 시 6편으로 되어있다.
이들 시에는 웃음을 사오셨다면서 하회탈을 꺼내놓는 아버지, 책을 선물해주시는 아버지, 무등을 태워주시는 아버지, 아들에게 등을 밟으라고 엎드리시는 아버지, 한글을 서툴게 쓰시던 아버지, 뒷짐을 지고 들길을 걸어가시는 아버지…… 다양한 아버지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이러한 시의 행 사이에는 직접 표현되지는 않지만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두터운 믿음과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고마움, 송구스러움 등이 숨어 있다.
권영상 시인에게 그러한 아버지의 부재는 그의 시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자연을 서정적으로 바라보던 그의 관점은 변화되어 객관적인 대상들에게 주관적인 가치를 부여하게 된다. 즉, 객관적인 대상들은 그의 주관에 따라 이상화되어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그의 정신을 여과한 객관적 사물들은 그의 주관에 의하여 보다 깊은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며 어린 독자들의 가슴을 파고 든다.
그러나 그의 시가 관념인 시로 변화되면서 어린 독자들에게는 거리감을 안겨준 면도 보인다. 즉 그의 시가 동시로써는 어린 독자들에게는 어려워진 것이다. 물론 문학이라는 것이 늘 독자의 눈높이에 고정시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독자들보다 한 발 앞서 이끌어준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철학을 겸비한 관념적인 시들이 교육적 효과를 높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한 해를 살면/ 모든 게 둥그래지나 봐요.// 앞마당 멍석에 널린/ 꽁꼬투릴 까봐도/ 노란 콩이 둥글어요.// 담장 위에 박덩이도/ 박잎에 숨어 몰래/ 둥그래졌어요.// 저 높이/ 돌배나무에/ 돌배들이 둥글둥글// 가을엔/ 모든 게 다 그렇듯/ 우리들 마음도 둥그래지나봐요/ 왠지 내 마음이 달라요//
<한 해를 살면> 전문
우리는 해를 거듭할수록 스스로 여유로워짐을 느낀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모난 구석도 둥글어지고 강팍했던 마음들도 온유해진다. 시인은 그렇게 성숙해가는 인간의 변화를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봄에 나서 여름에 자라 가을에 영그는 사물들을 끌어들였다.
인간이 성숙해가는 모습을 콩이나 박, 돌배를 끌어들여 비유할 수 있는 그의 시점은 놀랍다. 시의 소재로 등장하는 콩이나 박, 돌배는 다 영글어서 둥근 게 아니라 처음 생길 때부터 둥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의 감성을 통해서 나온 그 상관물들은 인간의 내적 성장에 비유되고 독자들에게는 정말로 처음에는 모가 나고 울퉁불퉁했던 것이 가을에 익어서 둥글해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요 작은// 들꽃 하날// 피우기 위해/ 들풀은// 들꽃보다 더 큰// 해를 받아 내리고 들풀은// 들꽃보다 더 큰// 하늘과 맞서야 한다.
<들꽃을 피우기 위해> 전문
<들꽃을 피우기 위해> 라는 시의 전문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꽃의 아름다움을 좋아한다. 그래서 꽃은 곧잘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불리는데 그러한 꽃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걸 꼽으라면 정원에 핀 꽃이거나 조형의 미까지 갖춘 수반 위의 꽃일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러한 아름다움이 있기 전, 그 꽃을 피운 들풀의 견딤을 바라본다. 들꽃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 들풀의 애씀, 축구선수가 골대에 골을 넣기까지는 그 뒤에서 보이지 않게 어시스트 해준 선수가 있었다.
이렇듯 시인은 보이지 않는 손길, 즉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꽃보다 그 꽃을 피우기 위해서 여름날 이글거리는 태양을 견뎌내고 비와 바람, 폭풍우와 맞서야 했던 들풀의 견딤의 시간에 꽃의 아름다움보다 더한 가치를 부여한다.
위의 시는 들풀과 들꽃의 상관관계를 통해서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의 삶에서 누릴 수 있는 화려한 성공과 환희 뒤에는 비바람에 맞선 들풀과 같이 땀 흘리는 노력의 시간들이 있었고, 그 노력의 과정들이 결과적으로 주어지는 환희보다 더 가치로운 것임을 말한다.
꼭 한 번은// 버릴 줄 안다, 나무는.// 가시나무든// 느릅나무든//가을이 가면// 드리우고 섰던 그늘만큼// 발 아래 그늘을// 벗는다// 가장 아름답던 가을날에// 가장 아름답던 잎들을// 버릴 줄 아는// 나무.
<나무>전문
이 시 또한 특별한 거라곤 없다. 나무를 통해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자연의 변화를 노래했을 뿐이다. 그건 누구나 알 수 있고 누구나 쓸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시인이 옮겨놓은 자연의 변화는 특별하게 느껴진다. 자연에 순응하는 나무들의 변화를 시인은 독백처럼 행과 행을 갈라놓았고 그 행 사이에서 독자들에게 비움의 가치를 이야기 한다.
시를 이야기할 때 흔히 시는 거짓말이라고 한다. 사실보다 더 사실 같은 거짓말이 시라고 본다면 권영상 시인은 뛰어난 거짓말쟁이다. 그런데 그가 하는 거짓말은 독자들에게 사실을 사실보다 더 사실같이 느끼게 한다. 다시 말하면 사실성의 세계에서 건져낸 소재들은 그의 사유를 통해 진실에로 접근하는 것이다.
4) 그가 천착하는 동심
권영상은 1992년 12월에 25일간 인도와 네팔을 다녀와 기행문 <갠지스로 가는 길>을 연재한다. 또한 93년에는 10일간 이집트를 기행하고 돌아왔으며 95년에는 베트남 하노이를 여행하고 돌아온다. 그러면서 그는 서서히 변화한다. 보다 넓은 세상을 구경하고 돌아온 그의 눈은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 동심에 천착하게 되고 그것이 그의 시세계에 영향을 끼친다.
그동안 자연에의 경이로움을 노래하던 서정시와 사유를 통한 관념시에서 벗어나 이야기가 들어있는 동화시를 쓰기 시작한다.
『신발코 안에는 새앙쥐가 산다』(1999, 문원)와 『월화수목금토일 별요일』(1999, 재미마주)에는 그렇게 변화된 동화시를 수록했는데 두 권의 시집에 들어있는 이야기 속에는 동심으로 바라본 이야기들이다.
그는『신발코 안에는 새앙쥐가 산다』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도에 가 폭포를 보러 갔는데 가도가도 산은 나오지 않고 사막만이 나타났어요. 산이 있어야 산에서 쏟아지는 폭포가 있을게 아닌가, 생각했는데 막상 가보니 폭포는 내가 걸어가던 사막의 밑에 있었어요. 그 폭포는 '란네 폴'이라는 폭포인데 물줄기가 산에서 쏟아지는 게 아니라 내가 서 있는 발 아래에서부터 시작하여 2 킬로미터나 되는 아래로 아래로 쏟아지는 거였어요. 거대한 물줄기가 내가 서 있는 발아래에서 모래협곡 아래로 아래로 쏟아지더란 말이지요."
그것을 본 그는 감탄하게 된다. 그가 얼마나 고정관념에 휩싸여있는지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난 그가 서서히 변화되면서 새롭게 찾은 것이 바로 동심이다. 동심은 어떤 틀에도 갖히지 않는다.
개미가 들길을 걸어간다. 들길이 간지러워 온몸을 옴츠린다. 개미들이 미루나무 등을 탄다. 미루나무가 간지러워 밀알만해진다. 식탁 위에 떨어진 비스킷 한 조각, 그 냄새를 맡고 기어온 개미떼, 식탁이 간지러워 꼼틀꼼틀한다. 숟가락이 달싹달싹, 콩나물 국그릇이 오물오물, 오, 간장 종지가 달각달각……. 간장을 찍어먹은 아기가 배틀배틀
<개미란 놈> 전문
그의 시세계가 달라졌음을 금방 알 수 있다. 들길이 간지러워 온 몸을 옴츠린다, 미루나무가 간지러워 밀알만해지고 식탁이 간지러워 꼼틀꼼틀한다. 숟가락이 달싹달싹, 국그릇이 오물오물……. 이러한 표현은 어린 아이들이 가질 수 있는 시점이다. 개미 한 마리로 인해서 하나의 환상세계를 보는 것 같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그것은 환상이 아니라 그럴 듯한 진실처럼 느껴진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럴듯한 거짓말, 사실보다 더 사실같은 거짓말을 동심을 통해 쏟아놓는다.
화분 좀 안고 있으렴. 엄마가 베란다에 놓았던 화분을 내미셨어. 나는 화분을 안고, 엄마는 유리창 청소를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화분이 자꾸자꾸 무거워. 그 순간, 그 순간 나는 느꼈지. 나를 안고 있는 베란다는 얼마나 무거울까. 우리 집 5층을 안고 있는 4층은, 그 4층을 안고 있는 3층은 얼마나 무거울까. 그래, 월, 화, 수, 목, 금요일을 안고 살아온 우리 아파트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아파트를 안고 있는 우리 구기동은, 구기동을 안고 있는 우리 나라는, 우리 나라를 안고 있는 지구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구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전문
어렸을 적 도끼로 벚나무를 찍고 아버지한테 혼쭐 났다지? 그러고도 워싱턴은 미국의 훌륭한 대통령이 됐어. 간신히 4학년까지 다닌 에디슨은 그러고도 세계적인 발명왕이 됐어. 아이슈타인은 어떻니? 7살 때까지 말은커녕 수학문제도 못 풀었대. 그러고도 그는 위대한 물리학자가 됐어.
근데 우리 나라 강감찬 장군은 어렸을 때 벌써 골목대장이었고, 이율곡 선생은 3살에 천자문을 떼고, 5살에 훌륭한 시를 썼다나! 그러니 난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아이인가봐. 왜? 왜는 왜? 내 나이 10살인데 골목대장은커녕 천자문은 구경도 못했으니까.
<난 더 이상 희망이 없나 봐> 전문
지구와 혜성이 부딪히면 지구는 끝이래. 폭발하고 말거래.
산도 바다도 집도 놀이터도. 모두모두 먼지가 되어 우주 속으로 날아가 버릴거래. 학교도? 응. 우리 동네도? 응. 우리 엄마도? 응. 형은 혜성이 떨어지기 전에 달나라로 도망칠거라나. 그러며 날 보고 물었어. 너는 어떻게 할 거냐고. 그래 나는 속삭이듯 말해줬지.
-산꼭대기에 올라가 혜성을 받을거라고. 내 두 손으로.
<혜성과 지구가 부딪힌다면> 전문
그의 변화된 시세계는 시의 형식에서도 벗어나 변화되어 있다. 어린아이의 관점으로 변화되어 고정관념을 버린 것이다. 그의 초기 자연을 노래한 서정시나 역사나 신화를 이야기하던 서사시, 아버지의 부재를 통해 깊이 있는 삶을 모색하던 관념시들에 비해 어린이 독자들에게 재미있고 친근하게 다가간다. 재미있고 익살스런 감동어린 이야기가 들어있는 시로 동화시가 되어 어린이들에게 친숙해진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그의 말대로 고정관념을 탈피한 시점의 다양성에서 나온다. 여행 중 사막 한 가운데서 발견한 폭포는 그에게 동심을 부여했다. 시는 일정한 틀이 있어야 하고 내용 면에서도 서정적이거나 멋스러워야한다는 그의 고정관념이 사라진 후 시인이 찾은 모습, 그것은 바로 동심이었다.
그가 새롭게 찾은 동심으로 바라보면 신발코 안에도 생쥐가 살고, 혜성이 떨어져도 손으로 받아낼 수 있으며, 화분 하나를 들고도 지구는 얼마나 무거울까 생각해 낼 수 있고 어린왕자의 동화속에서 보아뱀이 삼킨 코끼리가 보아뱀의 딸국질에 새끼를 낳아 나올 수도 있으며 요술할멈이 타고 다니던 빗자루를 고물상에 팔아먹을 수 있는 것이다.
주마간산격이지만 위와 같이 권영상 시인의 시세계를 살펴보았다. 그는 초기 서정시에서 출발하여 서사시로 관념시로 다시 동시로 변화되는 ekdidtd을 보였는데 그러한 변화의 과정에는 그의 고단한 삶이 있었고 아버지의 부재가 있었으며 인도를 비롯한 여행에서 얻은 폭넓은 시각의 변화가 있었다.
정형시와 자유시가 외형적이건 내재적이건 간에 어떠한 율적인 성분을 갖는데 비해 권영상의 시들은 그러한 형식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의 이러한 변화는 처음에 어린 독자들에게는 어렵게 읽혀지다가 고정관념의 틀을 벗어나게 되면서 비로소 어린이들에게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다.
평범한 일상, 누구나 느끼는 자연의 순환이 권영상 시인의 사유를 통해 나왔을 때 서정시로, 서사시로 그리고 관념시로 동화시로 변화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렇듯 시의 형식을 탈피하면서 그가 추구하는 새로운 아름다움, 그것이 변화되어 나타나는 그의 시가 아동문학사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독자들에게 달려있다고 본다.
<흙빛문학>40호, 2004년 여름호, 흙빛문학회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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