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

이화주 시인 동시집 출간과 그 해설

권영상 2017. 10. 28. 20:08

이화주 시인의 동시집 출간과 그 해설


















이화주 시인 동시집 <해를 안고 오나봐>가 지난 9월 20일자로 <소금북>에서 출간 되었습니다. 56편의 주옥 같은 동시들과 화가 김용철님의 그림으로 어우러진 근래에 보기 드문 신선한 사랑의 동시집입니다. 우연찮게 제가 해설을 곁들이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가슴을 콩콩 뛰게 하는 시간여행

권영상



시의 뜰안에 조용히 들어선다. 뜰안의 주인은 이화주 시인이다. 그분과 함께 걷는다. 숲에서 풍겨나오는 나무냄새와 신선한 바람이 좋다. 길은 두 사람이 걷기에 딱 좋은 오솔길이다. 사람의 손이 간 뜰이 아니라 햇빛이 바람이 빗방울이 만든 뜰이라 편안하다. 우리는 나란히 걷기도 하고, 떨어져 걷기도 하고, 때로는 속도를 맞추느라 걸음을 빨리 했다가 늦추었다가, 그렇게 이야기하며 웃으며 걷는다.

함께 걸어준 시인은 따뜻하다. 정겹다. 이야기를 들려주기보다 생각을 하나 던져놓고 내 의향을 들어보는, 내 말에 귀기울이는 분이다. 훈훈한 엄마의 마음이 그렇겠다. 인내심이 많은 할머니 같기도 하고, 또 때로는 이제 파란 초등학교 3학년 같이 듣는 걸 좋아한다.



시인은 나이가 꽤 있은 듯하다. 시를 쓴 지도 꽤 오래 된 듯하다. 세상도 공들여 사시는 분 같다. 그런데도 시인의 시는 조심스럽다. 세심하다. 섬세하고 어린 영혼처럼 순수하다.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사랑이라는 샘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 아마 시인 곁에 있는 어린 영혼(손주)이 그 샘의 근원인 듯하다.

동심으로 자아올린 57편의 이 동시집 머릿말에서 이화주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시란 상상을 통해 ‘너의 마음 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일이라고 했다. 별똥별이나 노랑눈썹 솔새의 마음을 읽는 일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그럴까. 시인의 뜰안을 다 걷고 났을 때 내 마음은 샘물 곁을 지나온 것처럼 맑아졌고, 시인이 안내하는 시간 속을 다녀온 듯 푸르러졌고, 내 눈은 별처럼 또렷해졌다.



1. 누군가의 가슴을 뛰게 하는 빛



빛은 빛나기 때문에 빛이다. 빛은 밝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살리는 힘의 원천이다. 꽃이 꽃이 되는 것도, 풀이 풀이 되는 것도 빛 때문이다. 빛은 그 떨어진 자리에 생명이 움트게 하고, 제가 꿈꾸었던 그 모습 그대로 피어나게 한다. 꿈을 키워내는 일은 날마다 시인을 설레게 한다. 빛은 감동을 준다. 기쁨의 꽃을 피우게 한다.



기쁜 일은

아침 해를 안고 오나?


엄마 얼굴 좀 봐

가슴 속에 해가 뜬 것 같지.

    

                      「해를 안고 오나? 」


기쁨에 들떠있는 시다. 지금 누가 이 시 속의 엄마 얼굴을 본다면 가슴이 벅차고 설레일 테다. 아니 기쁨으로 번쩍이는 엄마 얼굴을 똑 바로 바라볼 수조차 없을 테다.

이 동시집 맨 첫 페이지에 놓인 첫 시다. 기쁨으로 가득차 있는 방안 창문을 열고 ‘나의 시의 뜰안으로 어서 들어오세요!’ 그렇게 인사하는 듯 하다.


4행 2연의 짧은 시다. 마치 소혹성에서 빛을 가지고 막 도착한 손님 같다. 이 시의 한중간에 ‘엄마’가 있다. 아침 해가 떠오르는 그 무렵 문득 나타난 엄마의 환한 얼굴을 본다. 그걸 기쁨이라고 해야 되나, 설레임이라고 해야 되나.

눈에 보이는 것은 가끔 보이지 않는 것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화자는 엄마의 기쁨에 들뜬 얼굴을 보면서 엄마의 감추어진 가슴 속에 지금 해가 뜨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빛이 에너지의 원천이듯 엄마 또한 하루를 여는 힘의 원천이며 불안과 두려움을 걷어내고 빛 속으로 나아가는 기쁨의 원천이다.



별똥별 찾으러 온 아저씨

자갈돌뿐이라며 투덜대다

자갈돌 하나 주웠다.


어쩌면 이 자갈돌도

눈 감은 별이 아닐까?

누군가의 가슴을 뛰게 하던 별.


가만히 뺨에 대본다.

      

                 「눈 감은 별」


우리 모두는 개울가에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흔하디 흔한 자갈돌 같은 존재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흔한 자갈돌도 눈여겨 들여다 보면 한 때 ‘그 누군가의 가슴을 뛰게 하던 별’이었을 지도 모른다. 세상은 새롭고 놀라운 일들로 가득찬 곳이 아니다. 오늘도 어제처럼 해가 뜨고 지고, 바람 불고 비 오는 일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곳이다. 그럼에도 오늘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이화주 시인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특별한 눈 때문이다. 개울가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자갈돌에서 시인은 먼 우주를 읽는다. 우주의 의미를 자갈돌에 부여한다. 지금은 흔한 자갈돌이지만 한 때는 빛나던 별이었을지도 모르겠다며 뺨에 대어보는 화자, 그가 바로 이화주 시인이다.



2. 피붙이를 향한 곡진한 사랑


할머니, 불러볼수록 편안하고 아늑한 말이다.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다 품어안을 듯 그 품은 마냥 따뜻하디. 그 어떤 소원도 다 들어줄 것 같고, 그 어떤 상처도 도닥도닥 두드려 아물게 해 줄 것 같다. 할머니는 살갑다. 달콤하다. 그러는 할머니에게도 말 못할 아픔이 있고, 녹여낼 수 없는 차가운 눈물이 있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하늘이 무너졌단다.

하늘이 무너졌는데

어떻게 살아났어?


무너진 할머니 하늘을

다시 높이 올려 세웠지.

누가?


바로 너

네 안의 웃음 씨앗이.

      

                   「웃음 씨앗」



2013년에 출간된 이화주 시인의 「내별 잘 있나요」에는 수많은 친구들 이름이 나온다. 혜진, 은섭, 미경, 경환, 경준, 호철, 미영 ....... 그때는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일 때다. 그때 시인은 ‘나의 시들은 내가 만났던 아이들이 접어준 별이거나 노래였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때와 사뭇 다르다. 시인은 시를 가르치던 학교에서 물러나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그런 시인의 마음 안엔 단 한 사람이 있다. 사랑하는 손주다. ‘손주’라는 말은 차마 하지 않으려 했는데 결국 하게 됐다.



이 동시집에 나타난 ‘할머니’라는 시어를 세어봤다. 무려 60회나 등장한다. 이 시집은 이제는 할머니가 된 시인과 피붙이 손주 간의 사랑을 테마로 하고 있다 해도 지나치지 않겠다. 시 속의 할머니는 손주의 동무이고, 묵묵히 그의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말벗이다. 또한 손주는 시의 모티프이며 시인의 동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시집 속의 손주는 누구인지 모른다.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할머니의 손주일 거라는 추측만 가능하지 그에겐 특정한 이름이 없다. 어쩌면 그는 이 세상 모든 할머니들의 손주이고, 모든 어른들의 내면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일지 모른다. 따뜻한 가정을 살려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등장시킨 인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그 점에서 할머니와 손주를 소재로 하는 여느 시들과 분명 다르다.



이 시 역시 할머니와 그 할머니의 피붙이 손주의 대화로 이루어졌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할머니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에 빠졌다. 그 할머니의 슬픈 생애를 다시 일어서게 해준 이가 시속 화자 ‘너’인 손주다. 생명의 샘이 돌게 하는 그의 웃음 때문이었다.

그 어떤 눈물도 다 받아주실 것 같은 할머니에게도 하늘이 무너질 만큼의 절망이 있었다. 그 절망의 늪에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너’때문이다. 할머니와 ‘너’ 사이는 그만큼 심리적 으로 가깝다. 육친에 대한 애틋함, 소중함, 살가움과 생에의 기쁨이 우러난다.



3. 문명이 가야할 길


이화주 시인은 엄마와 할머니, 그리고 아기가 만들어내는 가족 안에만 머무는 시인이 아니다. 제 2부까지 읽은 분들이라면 그런 의구심쯤 품어볼만도 하겠다. 그러나 가정의 밖에서 무서운 속도로 변화해 가는 문명과, 그리고 그것의 나아갈 바를 고민하고 제시하는 모습을 제 3부에서 곧 만나게 될 것이다.



너도 해볼래?

스마트폰 아주 대단해

이 보이지 않는 거미줄에는

세상의 온갖 것이 다 걸려.


아침 이슬도 걸리니?

햇살에 반짝이는.

          

                            「거미의 대답」



손들고 벌서던 동생

장난감 로봇 가져와

곁에 세운다.


장난감 로봇도

손들고 같이 벌선다.

          

                      「함께 벌서기」



문명을 대하는 두 모습을 보여준다. 「거미의 대답」에선 스마트폰이야말로 거미줄을 능가할 만큼 세상의 모든 정보를 사냥하는 위대한 사냥꾼이라는 거다. 이러한 화자의 말에 ‘너’는 조금 독특한, 소행성에서 온 외계인처럼, 아니 정결한 자연주의자처럼 ‘아침 이슬도 걸리니?’하고 묻는다. 이 질문에서 우리는 시인의 사물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이 ‘아침 이슬’이다. 아침 이슬은 영롱하다. 밤새도록 별이 잠들다 떠났고, 풀벌레 울음이 배어있다. 아침 이슬은 단지 아침 이슬이 아니라 우리의 순수한 감성과 영혼을 눈 뜨게 하는 결정체다. 아주 대단하다는 스마트폰에게 그런 힘이 있는가. 이것이 이화주 시인의 문명의 가치를 분별하는 눈이며 척도이다.



문명이 가야할 두 번째 길이「함께 벌서기」이다. ‘동생’에게 있어 장난감 로봇은 한 시도 떨어져 지낼 수 없는 절친한 친구다. 다들 거절하는 부끄럽고 창피한 벌서기조차 선뜻 함께 해준다. 좀 더 지난다면 로봇은 머리를 기대도록 동생에게 어깨를 내줄 거고, 아플 때면 밤새도록 동생 곁을 지켜주며 이마에 젖은 땀을 닦아줄 것이다. 어쩌면 동생을 위해 뜨거운 눈물을 흘려줄지도 모른다. 문명을 거부하는 일은 어리석다. 문명은 적어도 동생의 장난감 로봇처럼 인간의 아픔을 함께 하거나 진정으로 동행할 수 있어야 한다.



4. 동심을 향한 변함없는 테마


이화주 시인의 시집 <해를 안고 오나>엔 동심의 향기가 솔솔 난다. 깊은 산속 홀로 피는 백합향이 아니다. 그 향기는 멀지도 않은, 그다지 깊숙하지도 않은, 그다지 은밀하지도 않은 우리가 사는 평범한 골목, 그 안에서 피어난다. 거기에 향기나는 동심 마을이 있다.



단풍잎 줍던

중국집 주인아줌마

방긋 웃으며 내게 말했다.


이렇게 단풍 고운 가을날에는

유리창에

아주 커다랗게

써 붙일까?


우동 한 그릇은

단풍잎 두 장

탕수육 한 접시는

은행잎 다섯 장

아이들이 좋아하는 애기 자장은

감나무 잎 한 장

    

                「가을날에는」



간밤에 일어난 소혹성의 이야기가 아니다. 집 앞 골목길, 발코니에 치자나무 화분이 있는 이층집을 꺾어 돌면 단풍나무 아래에 숨은 중국집. 가을이 깊어가는 어느 날, 중국집 아줌마는 바람에 날리는 단풍잎을 줍다가 단풍잎이 너무 고와 더는 참지 못하고 ‘내’게 말한다. 우동 한 그릇 값에 단풍잎 두 장, 탕수육 한 접시는 은행잎 다섯 장을 받고 거래하겠다는 거다. 나도 모르게 동화작가 폴 빌라드의 ‘이해의 선물’이 떠오른다. 아직 거래가 뭔지 모르는 ‘나’는 사탕 한 봉지를 고르고, 그 값으로 은박지에 소중히 싼 체리씨 여섯 개를 사탕가게 할아버지 손에 올려놓는다.



오래도록 잊을 수 없었던 ‘체리씨 여섯개의 동심’을 이 시에서 다시 만나는 기분이다. 사탕가게가 아닌 이 중국집에 들어서면 ‘감나무 잎 한 장’으로 ‘애기 자장’ 한 그릇을 파는 아줌마를 보겠다. 어서 오세요, 하고 맞아주는 그분의 웃음띤 인사를 받을 수 있겠다. 그분은 자장면을 먹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안다. 고소한 자장냄새에 코를 발름대며 가는 아이들의 가벼운 주머니도 안다.

감잎 한 장을 받고 식탁 위에 자장면을 놓아주는 그분은 누구일까. 혹시 이 시를 쓰신 이화주 시인은 아닐까. 단풍잎 곱게 지는 가을날, 감잎 한 장 손에 들고 시인이 살고 있을 그 골목을 찾아가 보고 싶다. 고소한 자장면이 먹고 싶다.

이제 이화주 시인의 시의 뜰안을 나설 때가 됐다.



그동안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사과 맛도 보고, 꼬마 마법사도 만나고, 비단길 개울을 건너고, 할머니가 아기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도 들었다. 생각의 불이 꺼지지 않는 그곳은 엄마의 품처럼 아늑하고, 쉼 없는 대화가 오가는 곳이다.

위태로운 가정을 염려하고,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문명에 대한 고민과 공부에 휘둘리는 아이들의 영혼을 걱정하는 분이 있다. 그분이 이화주 시인이다. 그분과 함께한 시간 여행으로 나는 새로워졌고, 내 가슴은 더욱 푸르러졌다. 이 여행을 오래 오래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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