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개가 사람을 무는 까닭

권영상 2017. 10. 23. 07:30

개는 사람을 무는 까닭

권영상




동네 산에서 만난 일이다. 오리나무숲이 있는 가파른 산비탈 길에 들어설 때다. 개 한 마리가 길 위쪽에 서서 나를 굽어보고 있었다. 제법 덩치 큰 검정개였다. 불과 4,5 미터를 사이에 두고 나는 그 와 마주 섰다. 개가 사람을 함부로 물지야 않겠지만 본능적으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개는 꼬리를 흔들어 보인다거나 그 어떤 선의도 보이지 않았다. 눈길을 피하지 말라는 말이 떠올라 개를 주시했다. 개 역시 내게서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나는 가만히 몸을 낮추어 길옆 마른 나뭇가지를 집어 들었다. 그거라도 집어 을러메어 보여야할 것 같았다. 그때였다.



“우리 개 안 물어요!”

등 뒤에서 여자 목소리가 났다.

순간, 나는 긴장했다. 이 검정개가 지금 제 주인이 보는 앞에서 나와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 두려웠다. 개는 혼자일 때는 공격하지 않는다. 주인이 있어야 주인을 배경삼아 달려든다.

그러는 사이 주인이 내 곁까지 왔다. 그제야 나는 손에 잡았던 나뭇가지를 놓았다. ‘우리 개 안 무는 데,’ 주인은 내가 버리는 나뭇가지를 보며 오히려 나를 못마땅해 했다.



몇 년 전 이른 가을쯤이었다.

아파트 뒤 느티나무 오솔길을 운동 삼아 가만가만 뛰고 있을 때다. 길옆 그늘에 자리를 펴고 앉은 가족인 듯 보이는 사람들 틈에서 갑자기 조그마한 강아지 한 마리가 날카롭게 짖으며 튀어나왔다. 강아지가 내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졌다. 이 황망한 일에 강아지로부터 벗어나려고 나는 온힘을 다해 겅중거렸다. 내가 생각해도 겁 많은 내 모습이 요란했을 테다. 80킬로그램에 182센티 키의 내가 꼬맹이 강아지한테 물려 버둥대는 모습이라니!



한참만에 강아지는 제 가족 품으로 돌아갔고, 그들은 착하기만한 강아지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미안해했다. 나도 부끄러워 얼른 자리를 비켰지만 그때 내가 얻은 게 있다. 개가 사람을 무는 까닭은 주인을 향한 충성심의 표현이라는 거다. 달리 말하면 나 이만큼 용맹한 개야!, 나 이런 개야! 를 주인에게 보이기 위한 실수(?)다. 주인 없는 개는 사람이 공격하기 전엔 물지 않는다. 개도 짐승이라 저보다 덩치 큰 사람에게 덤벼들지 않는다. 그런데 이 작은 강아지가 내게 덤빈 것은 내가 뛰어가는 모습이 제가 무서워 달아나는 거라 판단했고, 온 가족이 보고 있는 이때야말로 저의 용맹성이나 충성심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여겼기 때문이다.



물고 싶어하는 개는 사람을 문다는 모 신문에 난 어느 애완견 전문가의 말은 옳지 않다. 투견이나 사냥개를 제외하고는 물고 싶은 개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모든 개는 그런 상황, 상대가 자기보다 약자라고 여기거나 자신을 두려워한다고 판단되면 달려가 문다. 그것도 주인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럴 가능성이 높다.



요즘, 개에 물려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기사를 연일 만난다. 사람을 다치게 한 그 개들은 한결같이 ‘우리 개는 안 무는 개들’이다. 하지만 사랑을 먹고 사는 애완견은 자신이 사랑받기에 충분한 개임을 보여주기 위해 늘 사고칠 기회를 엿본다.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크는 자식이 자주 사고를 치는 까닭도 몰라 그렇지 그 자식의 입장에선 부모에게 보여주는 일종의 존재감의 표현이다. 애완견의 심리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

바보개가 아닌 이상 혼자 있는 개는 사람을 물지 않는다. 주인이 주변에 있어야 그 주인에게 존재감을 보여주기 위해 문다. 주인과 함께 있는 개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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