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칸나와 바람과 가을비

권영상 2017. 10. 6. 18:15

칸나와 바람과 가을비

권영상

 

 


가을비 내린다. 시골집이 고즈넉해진다. 뜰앞의 모과나무며 배롱나무, 느릅나무가 툭툭 힘없이 잎을 떨어뜨린다. 한 해를 살아내느라 지친 표정들이다. 머지않아 나무들도 한 해의 삶을 접고 겨울로 들어서야 한다.

좀 으슬거린다. 혼자 머무는 집이란 새털 같은 빗소리에도 오한을 느낀다. 참다 참다 겨울 파카를 꺼내 입는다. 벌써 이렇게 추워지는 계절에 와 있다.



비 오는 오후 내내 창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 열면 소르르 넘어오는 바람이 싫고, 닫으면 또 바깥이 궁금하다. 비 오는 마당에 푸른빛을 띠고 있는 거라곤 칸나다. 사월에 심어놓고 5월에 나오리라 했는데 6월에 들어서서야 나왔다. 늦게 나온 때문인지 달리아 꽃 지고도 여태껏 제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다.

헤아려 보건대 칸나의 삶이란 고단하다. 그는 뜰 마당으로 들락거리는 크고 작은 바람 모두를 상대했다. 그가 가진 거라곤 넓은 잎뿐인데 그는 그것으로 내가 집을 비울 때나 있을 때나 마치 이 집의 가장처럼 제 자리를 지켰다. 어린 바람에서부터 활달하고 호방한 바람까지, 아니 간교하거나 음흉한 바람까지 놓치지 않고 대적했다.




그러느라 칸나는 저도 모르는 사이 바람을 대하는 품이 능수능란해졌다. 외로운 바람은 품어주거나 놀아주거나 달래고 감싸주지만 넘보는 바람과는 격전을 피하지 않았다. 때로 그가 바람과 대적하는 걸 보면 놀랍다. 쓰러지는가 하면 휙 돌아서고, 눕는가 하면 일어서고, 꺾이는가 하면 또 유연히 비켜서며 바람과 싸운다. 그것은 때로 강호 고수들의 무예를 보는 것처럼 탁월하고 아름답고 신비롭기까지 하다.

칸나는 방어에만 능한 게 아니다. 그 넓고 큰 잎의 뾰족한 촉수로 바람의 허를 찾아 날카롭게 공격할 때도 있다. 아무 대비책도 없이 성급하게, 또는 음흉하게 덤벼드는 바람은 늘 그 의 일격에 무릎을 꿇었다. 간교한 바람도 그러했고, 교만한 바람도 그랬다. 칸나의 간결하면서도 날카로운 공격에 고꾸라졌다.




칸나는 아무리 다급해도 발을 떼지 않았다. 발 한 걸음 떼지 않고 그토록 유연히 바람을 대적해내는 기교는 고수를 자처하는 협객을 닮아서이겠다. 풀잎바람에서부터 거칠게 불어오는 태풍에 이르기까지 한 발짝의 미동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오직 그가 서 있는 자리를 고집했다. 그것은 칸나의 쉼 없는 자기 수련의 결과이다. 텃밭에서 일을 하다가도, 혹은 걸려오는 전화를 받다가도 얼핏 바라보면 칸나는 수련에 몰입한다. 사심을 버린 듯 바람에 전신을 맡긴다. 그리고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마냥 바람과 한들거리며 논다. 나풀대기도 하고, 너울거리기도 하고 하느작대기도 하면서 춤추듯 장난하듯 논다.




경지에 이른 연기자의 매임없는 연기가 저렇겠다. 도학의 경지에 이른 이의 사유가 저러할 테다. 고수들의 명문장 또한 저런 몰입에서 나왔을 테고, 장인의 예술 또한 저런 경지에서 나왔을 테다. 세상의 불의를 꼬누는 강호 고수 또한 저런 한들거리는 몰입에서 태어났겠다.

나는 한들거리는 칸나를 바라볼 때가 좋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자유로워진다. 내가 마치 티 하나 없는 무욕의 바다에 들어서는 듯 해 한없이 좋다.



세상이 조락하는 이 무렵, 칸나만이 푸른빛을 누릴 수 있는 까닭도 그 때문이 아닐까. 봄과 여름과 가을을 사는 단 한해 동안 고수의 꿈을 이루어내는 그의 부단한 삶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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