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김동극
달팽이는 달팽이는
집을 지고 다니는
달팽이는
집 볼 사람 필요 없네.
자물쇠도 필요없네.
달팽이는 달팽이는
집을 지고 다니는
달팽이는
비가 와도 걱정 없네.
저물어도 걱정 없네.
간밤엔 달팽이가 장미허브 잎을 타고 지나갔습니다. 달팽이는 지나가면 꼭 지나간 표를 합니다.
“아빠, 달팽이가 은하수 길을 냈어요!”
아이들은 보는 눈이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잔별을 뿌려놓은 은하수 길처럼 하얗고 반짝반짝 빛나는 띠를 그려놓았습니다. 비록 걸음이 느릴지라도 달팽이가 지나간 뒷자리는 그 무엇과도 비교가 안 될 만큼 눈부시지요. 그걸 보면 허둥지둥 달려 남보다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한다고 다 좋은 건 아닙니다. 자신의 길을 얼마나 잘 가꾸면서 가는가도 중요합니다.
달팽이가 사는 우리집 베란다엔 장미허브 말고, 향수나무, 고무나무, 아이비 그리고 파를 심어놓은 화분도 있지요. 심심하면 달팽이는 고무나무 넓은 잎을 타기도 하고, 파를 타고 올라 이제 갓 피운 파꽃에 슬그머니 올라앉아 있기도 합니다.
달팽이는 베란다 어디쯤에 살고 있을까. 가끔 그게 궁금했는데, 언젠가 화분갈이를 해주다가 알았지요. 화분 밑바닥에 세 마리나 붙어 있는 걸 보았답니다. 햇빛을 싫어하는 달팽이에겐 컴컴하고 축축한 그곳이 숨어지내기에 딱 맞았겠지요. 그때 나는 이 달팽이 색시들이 가끔 밥이나 한 상 차려주었으면, 하는 싱거운 생각을 했지요.
<소년 2017년 6월호, 글 권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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