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씨와 도둑
피천득
마당에
꽃이 많이 피었구나.
방에는
책들만 있구나.
가을에 와서
꽃씨나 가져가야지.
어느 날, 도둑이 외딴집 담장을 넘었지요. 사람이 없다는 걸 안 도둑은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먹다가 둔 밥상이 눈에 들어왔어요. 밥상엔 알뜰히 긁어먹은 작은 밥그릇 하나에 숟가락이 다섯, 그리고 싸늘하게 식은 방바닥. 아무리 없어도 도둑이 가져갈 건 있다는 말은 거짓이었습니다. 도둑이 보기에도 집은 너무나 가난했지요.
도둑은 다섯 식구가 밥 한 그릇 앞에 둘러앉아 서로 눈치 보며 한 숟갈씩 밥을 떠 넣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러다가 말없이 손목에 찬 시계를 벗어놓고 그 집을 나왔다네요.
어렸을 적 가끔 할머니에게 들던 이야기지요.
배 고파본 도둑이라 배고픈 사람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테지요.
이 시 속에도 착한 도둑이 들어왔네요. 도둑은 담장을 휙 타넘어 마당에 들어섰습니다. 희둥그레 눈을 뜹니다. 집 주인이 어떤 사람이길래 마당엔 꽃이 가득 합니다. 뭐가 좀 없나 하고 방안을 살핍니다. 옷장도 열어보고 금부치가 있을만한 서랍도 열어봅니다. 아무 것도 없네요. 있다면 도둑에겐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책들만 쌓여있습니다.
“가을에 꽃씨나 훔치러 와야겠다.”
도둑이 손을 털며 집을 나섭니다.
어쩌면 이 집이 시인의 집인 듯합니다.
(소년 2017년 9월호 글 권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