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가는 것은 떠나가는 것
권영상
창밖을 내다본다. 일몰의 시간이다. 조롱 안에서 놀던 십자매들도 다 제 집으로 들어갔다. 이 무렵이면 놀던 자리를 비워둔 채 새들은 제 둥지로 돌아간다.
이 고적한 일몰의 풍경에서 나는 옛날의 어릴 적 고향을 떠올린다. 골목길을 향해 날아오던 어머니의 ‘밥 먹어라!’ 부르시는 소리. 아쉽기는 하지만 우리는 그쯤에서 놀던 일을 골목에 두고 다들 집으로 돌아갔다. 먼 들에 나가 일하시던 아버지도 소를 앞세우고 오셨고, 읍내 수리조합에 나가시는 이웃 아저씨도 자전거를 타고 일몰을 밟아 돌아오셨다. 황새 서너 마리도 마을 하늘을 지나 인근 숲으로 날아들었다.
해가 지면 다들 집으로 찾아든다. 세상에 나가 자기 한 입을 위해 일하는 이든, 돈도 되지 않는 일에 몸을 던지며 사는 이든 다 집으로 돌아온다. 시장 각다귀들도 대지에 어스름이 내리면 저의 집으로 돌아간다. 모두 생각이 깊어질 때다. 그래서 이 무렵이면 고즈넉하다. 산골짜기를 쏘다니던 바람마저도 수풀에 들어 숨소리를 죽인다.
십자매를 분양 받아온 지 열흘이 채 안 됐다. 그 이전 이 조롱 안엔 호금조 한 쌍이 살았다. 온몸을 파스텔로 색칠해 놓은 듯 예쁜 명금류가 호금조다. 말 그대로 노래를 잘 하는 작고 귀여운 새다. 우리 집에 온 지 3년은 되었다. 대개의 명금류들 발성이 짧다면 호금조는 길고 우아하다. 그들은 우리들의 사랑을 독차지 했다. 그럴만도 했다.
그러나 그런 호금조에게도 문제는 있었다. 산란도 하고, 새끼도 부화하지만 부화한 새끼들을 키울 줄 모른다는 점이다. 그게 안타까워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게 새끼를 키워주는 보모 역을 하는 새였다. 거기에 딱 맞는 새가 십자매란 말에 십자매 한 쌍을 사다 한 조롱에 넣어주었다. 그걸 넣어주며 우리는 이 젊고 부지런한 십자매 부부에게 기대를 걸었다.
“멋진 일이 곧 벌어질 것 같아.”
딸아이는 아주 기분좋아 했다. 사실 이 일의 막후엔 딸아이가 있었다. 적극 이 일을 반대한 사람은 나였지만 멋진 일이 벌어질 거라는 말은 싫지 않았다. 호금조가 파스텔 톤의 예쁜 꿈을 가지고 그 꿈에 맞는 알을 디자인해 낳으면 성실한 십자매는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부지런히 새끼들을 키워낼 것이다.
정말 멋있는 일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려니 조롱 안의 이 네모 공간이란 것이 단지 생존만의 공간이 아닌 꿈이 이루어지는 공동체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들이 이루어낼 이후 몇 개월 뒤의 미래를 그렸다.
그러나 그 꿈도 며칠을 넘기지 못했다. 이유도 없이 호금조 한 쌍이 차례로 갔다. 작은 걸 얻으려다 큰 걸 잃은 셈이었다. 그들이 간 이 빈자리는 이제 십자매 차지가 되었다. 그런 사정 때문인지 그들이 암만 예쁘게 운대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더 어떻게 할 것인가.
잔인하긴 하지만 떠나간 호금조를 빨리 잊기로 했다. 떠나간 새는 떠나간 새다. 그가 아무리 우리의 사랑을 받았다 해도 그는 우리 곁을 떠나갔다. 그 떠나간 호금조 때문에 지금 내 곁에 와 있는 십자매를 외면할 수는 없다. 힘들다고 해도 지금 내 곁에 와 있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은 또 그들의 방식으로 이 조롱 안의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12월의 끝자락을 알리는, 아니 한 해의 끝을 알리는 일몰이 다가왔다. 다들 집으로 돌아가며 오늘 하루를 조용히 생각해 볼 시간이다. 어쩌면 성실하기로 소문난 이 십자매들도 물려받은 조롱을 어떻게 가꿀 것인지 지금 그걸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는 그들이 최선을 다하도록 도와줄 일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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