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옛날, 어느 산속에 도깨비가 살았지요

권영상 2016. 12. 15. 10:45

옛날, 어느 산속에 도깨비가 살았지요

권영상




옛날, 어느 마을에 한 부자가 살았지요. 부자는 도깨비가 부엉이 고기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깊은 밤, 부엉이 고기를 들고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산속 으슥한 곳에 이르러 부엉이고기 냄새를 풍기자, 정말이지 이 숲 저 숲에서 도깨비들이 모여들었지요.

“자, 똑 같이 한 입씩 주마!”

부자는 똑 같은 크기로 고기를 잘라 나누어주었지요. 공평한 것을 좋아하는 도깨비들이라 모두 맛있게 먹었답니다. 그러나 부자는 겉으로는 공평하게 나누어주는 척 하면서도 몰래 어느 한 녀석에게만 고기 한 점을 더 주었지요.



“자, 이제 끝이다. 다들 돌아가려무나.”

탈탈 터는 손을 확인하자, 도깨비들은 모두 제 집으로 돌아갔지요.

그러나 돌아가지 않고 남아 부자의 환심을 사려는 도깨비가 있었지요. 좀 전에 한 점 더 얻어먹은, 그러니까 부자의 호의를 입은 녀석이지요. 도깨비는 또 한 번의 그 짜릿한 호의를 입고 싶었던 거지요.

부자가 그걸 모를 리 없지요.

부자는 숨겨둔 고기 한 점을 더 주며 몰래 그의 이마에 빨간 점을 찍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도깨비는 금세 동료들에게 그 빨간 점을 들키고 맙니다. 그건 세상에 오염된, 사람냄새가 나는, 공평이 아닌 불공평의 표식이었던 거지요. 도깨비들은 그와 함께 살기를 거부했지요.

끝내 도깨비굴에서 쫓겨난 그는 다시 부자를 찾아갔습니다.

“이 불쌍한 도깨비를 살려주시는 셈 치고, 제 이마의 붉은 점을 지워주세요.”

부자는 붉은 점이 그의 약점이 되어 돌아올 줄을 미리 알았던 거지요.

“내가 그 점을 지워준다면 너는 내게 무얼 주겠느냐?”

“뭐든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도깨비는 이미 부자를 위해 자신을 바칠 준비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이야기가 여기까지라면, 만약 당신이 더 큰 부자가 되기를 바란다면 당신은 도깨비에게 무얼 요구했을까요? 만약 당신 얼굴이 당신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당신은 또 어떤 얼굴을 요구했을까요? 당신이 권력에 눈 먼 사람이라면 당신은 또 어떤 것을 요구했을까요?

나는 이쯤에서 읽고 있던 도깨비 이야기를 내려놓았습니다. 마치 요즘의 우리 정치상황과 비슷해 좀 우울했거든요. 남의 능력을 빼앗기 위해 몰래 고기 한 점을 더 주는 환심과 그걸 호의로 알고 힘 있는 자 앞에서 비굴해지는 도깨비의 모습이 우리네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도깨비 이야기라고 한낱 옛날이야기로 치부할 일은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도깨비는 우리나라에만 구전되어 내려오는 이야기지요. 그러니까 이 이야기 속 도깨비는 우리 민족이 만든 우리의 얼굴이며 우리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겉으로는 선한 척 하는 내 마음 속에 그처럼 비굴하고, 그처럼 교활한 피가 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나를 우울하게 합니다.



누군가가 내게 고기 한 점 더 주며 환심을 사려할 때, 나는 어떤 비굴한 모습을 보였을지, 그의 호의를 배신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를 위해 나를 속이지는 않았는지. 그를 위해 ‘뼈가 부서지도록’ 몸을 바치지는 않았는지. 아니, 나는 또 그 누군가의 재주와 힘을 가로채기 위해 그의 약점을 이용하거나 선의라는 이름의 ‘호의’를 베풀려 하지는 않았는지……. 올 겨울 우리네 정치는 그러잖아도 흠결이 많은 나를 자꾸 돌아다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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