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그네가 다 망가졌다

권영상 2016. 12. 3. 14:55

그네가 다 망가졌다

권영상




아파트 놀이터에 그네가 있다.

평일이면 가끔 그네를 타러 놀이터로 내려간다. 그네는 어른인 내가 타도 튼튼하다. 둥그런 쇠파이프 기둥에 그네줄도 쇠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조용한 오후 그네에 앉아 빈둥거리면 좋다. 그네는 나만 타냐면 아니다. 아이들은 물론 할머니, 아파트 관리소 분들도 심심하면 상념에 빠지듯 타신다. 타신다기보다 주로 앉아계시곤 한다.



지지난 화요일이었다.

머리도 식힐 겸 그네에 몸을 싣고 바람이 흔들리는 대로 앉아 있을 때다. 저쪽 등나무 벤치에 앉아 있던 여자 한 분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머리 위에 검정 선글라스를 꽂았는데 얼굴이 둥글고 몸매는 펑퍼짐했다. 지금 생각났는데 흰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그는 한손에 쥔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다가와 내 앞에 섰다.

“그만 그네를 넘기세요.”

그녀가 그랬다. 저기서 차례를 기다린 모양이구나, 그런 생각이 불쑥 들어 얼른 그네에서 내렸다. 나는 머쓱해진 얼굴로 물러나 그녀가 앉았던 등나무 벤치에 가 앉았다.



“놀이터로 내려와! 여기 그네 있는 곳. 여기 사람들 이 그네 아직도 우리 그네란 걸 모르나봐.”

그녀가 휴대폰으로 누군가를 불러내고 있었다. 나는 실소했다. 그네는 분명 아파트 공유물이다. 그런 그네를 서너 살 애들도 아니고 자기네들 거라고 떠들다니!

놀라운 건 통화가 끝나자, 정말이지 30대 후반의 사내가 나타났다. 그녀의 조카임즉 했다. 조카, 조카라고 불렀다. 잠시 후에 또 한 명의 사내가 나타났다. 모자를 꾹 눌러썼다. 모자 벗을 때에 얼핏 보니 머리가 훌렁 벗겨져 있었다. 



그들은 돌아가며 그네를 탔다. 마치 배후 세력처럼 서로 등을 밀어주거나 앞에서 당겨주면서. 발을 굴러 그네를 세차게 공중으로 차올리거나 그네에 배를 깔고 엎드려 타기도 했다. 때로는 한꺼번에 사내 둘이 올라타고 놀더니, 나중엔 여자까지 셋이 올라타 서로 껴안고 놀기도 했다.

"그러다 그네 고장 납니다!"

내가 소리쳤지만 그들은 내 말쯤 안중에도 없었다. 하긴 그들 모두 그네가 자기네 그네라 생각하고 있을 테니 내 말이 들릴 리 없었겠다.



한동안 조용하다 싶어 고개를 드니 그들이 없다. 그네 발판이 그네 꼭대기 기둥에 걸려있다. 그들이 던져 올려놓고 간 게 분명하다. 허탈했다. 그네가 즈네들 거라고 하더니, 이번엔 아예 누구도 못 타고 놀게 저런 짓을 하고 갔다. 어처구니없었다.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아파트 놀이터에 설치된 그네라면 누구나 탈 수 있다. 근데 그 그네가 마치 자기들 소유인 것처럼 저러는 게 싫었다.



그들 행태가 저렇게 당당한 걸 보면 약간의 의구심이 들기는 했다. 정말 저들 말대로 아파트가 그네를 구입할 때 저들이 그 경비를 부담했는지, 아니면 아예 통째로 놀이터 놀이기구 전부를 기부했는지 그건 모르는 일이었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그네를 타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그런데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 가끔 놀이터를 내다볼 때가 있다. 그때마다 그들은 독점하듯 그네를 가지고 놀았다. 혼자도 아니고 셋이 함께 그네에 올라 자기들 마음대로, 마치 떡 주무르듯 그네를 주무르며 놀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놀이터를 내다보니 그네 줄이 끊어져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있다. 그렇게 그네를 가지고 놀더니 끝내 그네가 망가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