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마을에서의 하룻밤
권영상
일요일 오후에 먼 안동, 그러니까 하회마을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하회마을은 유교문화를 잘 간직한, 안동의 특성을 여전히 잘 보여주고 있는 지역이지요. 가끔은 하회마을의 고택에서 하룻밤을 머물며 오랜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있었습니다.
하회마을은 직장에 다닐 때 단체로 찾았던 적이 있지요. 어두운 밤에 도착해 단체로 밥을 먹고, 들뜬 마음으로 술을 마시고, 이튿날엔 술이 덜 깬 정신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상경했었지요. 이번만은 혼자 조용히 머물러 보자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중앙고속도로에서 서안동으로 나와 하회마을에 도착한 게 일몰이 끝나가는 무렵이었지요. 낙엽도 다 지고, 휴일의 부산한 그림자들마저 다 떠나버린, 좀은 고적한 시각이었지요. 안내인도 퇴근하고 없는 빈 안내소에서 안내 팸플릿을 집어 들고 지형을 들여다보는 사이, 늦가을의 밤 그림자가 발아래 툭 떨어졌습니다.
가게에 들러 민박에 대해 물었지요. 마을에 들어가야 찾을 수 있다는 말에 차를 몰아 깜깜한 하회마을 길로 들어섰습니다. 좁은 논두렁길을, 좁은 골목길을, 돌아 돌아 길을 헤매던 중에 우연히 찾은 곳이 덕여재. 둥근 초가집 마당귀에 나와 계시던 그 댁 바깥 주인장을 우연찮게 만났습니다.
불빛이라곤 그 댁 처마에 매달린 불그스레한 지등 하나.
소담한 마당을 앞에 둔 기역자 형의 큼직한 초가집입니다. 처마엔 깎아 말리는 곶감 줄이 여러 줄 걸려 있었는데, 나를 놀라게 한 건 그 곶감 그림자입니다. 흰 본채 벽에 붉은 곶감 그림자가 은은히 어립니다. 지등의 불빛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돌아서니 등 뒤에 이제 막 돋은 달이 하나 둥그렇게 떠있는데, 곶감 그림자는 그 달빛을 받아 만들어진 것입니다. 볼수록 참 꿈속 같은 그림이었지요.
나는 주인장의 소개로 흙담장 밑의 노란 국화꽃을 따라난 뒷채로 갔습니다. 거기가 하루 몸을 뉘일 수 있는 숙소입니다. 일요일 밤이라 그 집을 혼자 덩그렇게 차지하게 되었지요. 한지로 바른 방안은 절집의 방안처럼 간소합니다. 마른 쑥과 빨갛게 익은 꽈리 한 모숨이 하얀 벽에 걸려 있습니다.
짐을 풀고 달빛을 보러 나서려는데 그 댁 주인장께서 내일, 지붕을 이니까 아침이 좀 소란스럽더라도 참아달라는 뒷말을 남기고 가셨지요. 다른 이라면 속상했겠지만 나는 그 말에 가슴이 설렜습니다. 예전 고향집도 한 때는 초가집이었지요. 늦은 가을 아버지는 이른 아침을 이드거니 자시고 동네 분들과 지붕에 올라 이엉을 안고 집을 이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 생각을 하려니 집을 정해도 너무 잘 정했다는 생각에 열나흘 달구경을 하다가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아침에 깨었을 때는 벌써 본채 지붕 위에서 사람들 목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올 때입니다. 창호문을 타고 들려오는 나이든 남정네들의 목소리가 너무나 정겹습니다. 마치 내가 잘 아는 동네 어른들이거나 이런 일에 빠지지 않는 당숙어른 목소리를 닮았지요. 나는 따뜻한 이불 속에 누워 한참을 그 두런거리는 말소리에 빠졌습니다.
문을 열고 바깥에 나가니 생각했던 대로 인부 서넛이 지붕에 올라가 있습니다. 이엉도 여남은 두루마리가 올라가 있습니다.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가 이엉을 이시는 아버지를 보면 내가 어려 그런지 아버지가 아주 위대해 보였지요. 그 탓에 마당에 서 있는 내게 뭘 시키시면 나는 발발거리며 찾아서는 던져올려도 될 일을 괜히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아버지! 하고 드렸지요.
빵으로 아침식사를 한 후 나는 하회마을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좁고 정겨운 골목길이며 흙담장이며, 툇마루나 뜨락에 내다 말리는 무 오가리며, 간간히 만나는 외국인들이며 류시원이라는 문패며, 마을을 휘도는 낙동강을 보았지요.
그런 때에도 내 마음은 덕여재의 지붕을 이는데 가 있었다지요. 끝내 나는 발길을 돌렸지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지붕 위에 올라선 남정네들. 그들이 딛고 선 둥글고 원만한 지붕, 조락하는 가을풍경과 거기서 얻은 누런 짚이엉, 우윳빛에 가까운 흙담장과 곱게 바른 흙벽, 늙은 감나무에 아직도 남아있는 붉은 감들. 그리고 또 하나. 지난 밤, 당신이 머무는 방에 나를 받아들여 손수 하신 탁본이며 목판이며 그림들을 소개해주시던 주인장의 자분자분한 목소리…….
그 모두가 잘 빚어낸 술내음 같기도 하고, 어머니의 품에서 맡던 젖내음 같아 내 발걸음은 저절로 그 댁을 향했습니다. 나는 그 댁 담장에 기대어 일하는 이들이 주고받는 말 한 마디 한 마디, 이엉 위로 떨어지는 가을볕 한 톨 한 톨, 바람이 건듯 불 때 흔들리던 지등의 흔들림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물끄러며 바라보았지요.
오후 3시가 넘도록 이엉 이는 일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일 마치는 걸 다 못 보고 섭섭하게 돌아섰습니다. 돌아서며 생각하니 예전 아버지가 또 떠올랐습니다. 이엉을 다 이시고 나면 아버지는 용마루 끝 까치구멍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뜨거운 오좀을 누셨지요. 초가집의 화마를 누르기 위한 방편이었는데 그걸 못 보고 돌아서는 것이 아쉬웠다지요.
그 댁이 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나는 몇 번이나 차에서 내려 그 댁을 돌아다보았습니다. 그 옛날의 아버지를, 아니 그 옛날의 고향을 떠나는 듯해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부모님은 이젠 이승에 안 계십니다. 그 탓인지 고향을 가고 또 거기서 떠나올 때에도 이렇지 않던 내 몸이 그 옛날의 고향을 떠날 때처럼 갑자기 뭉클해졌습니다.
외국의 정상들이 여길 찾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네요.
이 안에 낯설지 않은 오래된 한국이 분명 깃들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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