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동을 앞둔 11월의 오후
권영상
건너편 산 단풍이 붉다. 아침 일찍 산에 들어섰다. 낙엽들이 많이 떨어져 있다. 집어들고 볼수록 한 장 한 장이 저마다 예쁘고 곱다. 빛깔들의 무늬가 다 다르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오묘한 무늬를 나무는 이 겨울 앞에서 그려냈다.
빨간 팥배나무 잎을 한 장 집어 드는데 보니 뒷장에 하얀 애벌레 집이 있다. 애벌레는 이 나무숲에서 살다가 겨울을 예감하고는 벌써 고치 속 세상으로 들어갔다. 팥배 잎을 내려놓는다. 이 숲에 사는 생명들은 우리 모르게 이미 월동 준비를 끝낸 셈이다.
산에서 돌아오자, 아침을 뜨고 부랴부랴 차의 시동을 걸었다. 정작 나의 월동준비를 깜박 잊고 있었다. 슈퍼에서 라면과 우유 한 통을 사 가지고 밤골에 내려온 게 점심때가 조금 못 되어서다. 마당은 떨어진 산딸나무 잎으로 어수선했다. 지난 번 갑작스런 추위에 고추며 상추, 무가 직격탄을 맞았다. 날 풀리면 다시 피겠지 하고 둔 백일홍이며 메리골드가 하얗게 말라 보기 흉하다.
차에서 짐을 내리고 삽부터 찾아들었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뜰 앞에 심어놓은 달리아다. 이태 전 고향집에서 두어 뿌리 튼튼한 놈을 얻어다 심었는데 올해는 뿌리를 나누어 네 그루나 되었다. 지루한 폭염 탓인지 진딧물 세례에 제대로 된 꽃 하나 피우지 못했다. 달리아만이 아니다. 배롱나무며 창가에 심어둔 산딸나무조차 진딧물에 시달렸다.
내년을 기다리며 삽으로 조심조심 달리아를 캤다. 짐작대로 알뿌리가 허약하다. 줄기가 번성하지 못했으니 뿌리가 실해질 리 없다. 햇볕에 신문을 깔고 알뿌리를 나란히 놓았다. 한해 꽃을 못 피우면 이듬해 더 크고 좋은 선물을 주는 게 자연이다.
달리아 알뿌리가 마르는 동안 모과를 땄다. 어린 나무에 딱 하나 달렸다. 시골 어머니였으면 첫 맏물이라며 광주리를 안고 와 ‘모과 한 광주리요!’하시며 따셨을 거다. 비록 한 개지만 한 광주리 만큼한 마음으로 받겠다는. 그 모과를 나는 장갑을 벗고 깨끗한 손으로 땄다. 여느 나무에 달린 모과보다 더 굵고 노랗다. 향이 좋다. 모과 만진 손이 코 끝을 스치기만 해도 그 향이 그대로 난다. 월동을 앞두고 빛과 향기로 모과가 빚어낸 결정품이다.
이토록 고운 빛과 은근한 향을 뿜는 건 모과만이 아니다. 모든 열매가 다 그렇겠지만 하찮아 보이는 찔레열매도 그렇다. 새빨간 빛으로 홀연히 산중에 남아 달콤한 그만의 맛을 들인다. 그것은 생명들이 완성해내는 가을 역작이다. 능금이며 산사며, 아그배, 으름, 박주가리 속에 깃든 은실 씨앗들이 그렇고, 풍차 모양을 한 단풍나무 씨앗이 그렇다. 이 무렵의 생명들은 모두 자신의 결정판을 만들어내고 길을 떠난다. 나는 어떤 향기와 빛깔로 월동을 앞둔 11월의 오후에 서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고추이랑에 박아둔 지주를 뽑아내며 보니, 그 차가운 쇠붙이 지주에 사마귀들이 거품집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고 보면 사마귀들도 이미 월동준비를 다 끝냈다.
나는 사마귀 집이 붙은 지주들을 모아 창고 대신 매실나무 곁에 세워두었다. 그들에게도 추운 겨울이 필요하다. 겨울을 나지 않고는 누구도 아름다운 생명으로 태어날 수 없고, 그 어떤 들풀도 향기로운 꽃을 피우지 못한다. 눈이 내리는 긴 삼동의 고난이 없다면 그들은 자기완성의 꿈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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