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첫눈 오는 날, 간형에게

권영상 2016. 11. 28. 12:53

첫눈 오는 날, 간형에게

권영상




간형, 잘 지내시나요? 형이 곤경에 빠졌다는 걸 알면서 이런 인사를 드리네요. 누이동생 때문에 겪는 고충이 크겠습니다. 총명하고 반듯한 줄로만 알았던 형의 누이가 어쩌다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졌는지, 그 생각을 하노라니 제 마음도 아픕니다. 저뿐이 아녜요. 형의 누이동생을 아는 분들 모두 한숨으로 나날을 보냅니다.



한때는 누이 잘 두었다고 다들 형을 부러워했지요. 보통 사람들이 올라가는 마지막 자리까지 올라갔으니 누이의 능력이 감히 대단했지요. 지금 생각하면 누이의 외모도 뛰어났던 것 같아요. 어머니를 닮으셨지요? 이목구비가 반듯해 어디 흠 하나 없는 외모였지요. 특히 머리를 뒤로 모아올린 헤어스타일은 어머니의 머리였는데 기품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형의 누이동생은 외국어에도 능통했잖아요? 누이와 함께 중국을 다녀온 친구한테 들었어요. 우연찮게 모 대학에서 특강을 했는데 중국어로 중국고사를 인용해가며 중국인 뺨치게 강의를 했다고 합디다. 참석했던 분들 모두 감탄했고, 그쪽 방송에도 나올 정도였다네요.

그 이야기를 주변사람들에게 했더니 그들은 정보도 빠르더군요. 나보다 먼저 그 소식을 들었다며 그분들 말로 그래요. 형의 누이동생이 중국어는 물론이고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일본어 등 다섯 개 말을 통달했다고 극찬을 합디다. 모 여행 잡지에서 보았는데 그때 형의 누이가 입은 옷도 누구의 도움을 받았는지 몰라도 값비싸고 좋아 보이데요.



근데 그렇게 잘 나가던 누이도 무너지려니 한 순간입니다. 세상에 흠 없는 사람이 없기는 하지만 좀 도가 지나친 것 같더군요. 들리는 말에 의하면 형의 누이의 최대의 약점이 귀가 좀 엷다는 거더군요. 귀가 엷으니 자연 간교한 이의 말에 속아 넘어갈 테지요. 최씨라는 그 여자, 보통 사기꾼이 아니데요. 더욱 답답한 건 사기꾼의 말엔 잘 넘어가면서 오히려 집안분이나 동네분들 말엔 도통 귀 기울일 생각을 안 했더군요. 누이동생을 아시는 분들이 누이를 뭐라 부르는지 아세요? 말씀 드리기 뭣하지만 다들 ‘불통공주’라 부릅니다.



간형, 여기는 한낮부터 첫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일이 있어 나가느라 전철을 탔더니 전철이 만원이에요. 광화문 촛불집회에 가는 모양이구나 했어요. 표정들이 모두 결연했어요. 저는 이런저런 일을 핑계로 촛불집회에 못 나갔어요. 볼일을 마치는 대로 가볼까도 했지만 결국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오며 생각하니 내가 참 창피합디다. 국민의 한사람으로 이런 위중한 시국에 힘을 보태야 하는데, 이젠 나도 한물갔다 했습니다. 대신 텔레비전을 켜놓고 구름처럼 모여든 분들의 분노의 함성과 촛불 행진을 지켜보았지요.



간형, 어쨌거나 형은 누이동생 일로 걱정이 많겠네요. 처음엔 사기를 당한 누이를 걱정했는데 이제는 다릅니다. 다들 누이의 어리석음을 탓합니다. 외모와 총명함에 기대를 건 동네분들한텐 실망도 컸던 거지요. 오빠로서 참 면목이 없겠습니다.

나이가 좀 있긴 해도 어쨌든 누이동생도 결혼을 해야잖아요. 한번 사람들한테 신용 잃고 밉보이면 결혼도 힘들어요. 형이 한번 전화를 걸어 동네분들한테 진심으로 사과하라 하세요. 당한 사람도 그렇겠지만 보고 있는 사람들도 마음이 심란하네요. 욕심 비우고 살아가는 형이 무엇보다 부럽군요.

모쪼록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