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 4

나무 그늘을 밟아 돌아오다

나무 그늘을 밟아 돌아오다 권영상 치과에 들락거린지 오래 됐다. 이 나이에 거길 가는 이유야 뻔하다. 임플란트 때문이다. 가까이 있던 치과가 점점 멀어지더니 지금은 전철을 타야 하는 선릉역 주변에 가 있다. 늘 받는 치료지만 받을 때마다 그 고통이 아찔하다. 그럴 때면 음식을 먹는다는 일에 질릴 때가 많다. 치료가 끝나면 나는 그 얼얼한 턱을 감싸 쥐고 눈물을 쏟곤 한다. 오늘은 채 눈물이 마르지도 않은 눈으로 병원을 빠져나왔다. 햇빛에 어지럼증이 온다. 그런데도 또 무슨 나이답게 않은 오기가 발동했는지 전철역을 코앞에 두고 발길을 돌렸다. ‘집까지 걸어가 보자!’ 전철로 가자면 세 역을 가 환승까지 해야 한다. 멀다면 걸어가기에 먼 길이다. 어지럼증에 살갗을 파고드는 늦여름 햇빛까지 빤히 보면서도 나는..

「밥풀」과 제 5공화국

「밥풀」과 제 5공화국 권영상 밥상을 들고 나간 자리에 밥풀 하나가 오도마니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바깥을 나가려든 참에 다시 되돌아보아도 밥풀은 흰 성자의 모습으로 그 자리에 앉았다 바쁜 발걸음 아래에서도 발길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밟히면 그 순간 으깨어지고 마는 두려움, 그런 두려움도 없이 이 아침 분주한 방바닥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나이 어린 성자의 얼굴로..... - 「밥풀」 전문 이 작품은 여섯 번째 동시집 『밥풀』(1991. 동화문학사)에 수록된 표제 동시다. 이해인 수녀님께서 중앙 모 일간지 ‘나를 흔든 시 한 줄’(2014. 1. 18)에 이 동시를 소개함으로서 널리 알려졌다. 방바닥에 떨어진 밥풀이 발길에 밟힐지 모르는 두려움을 떨치고 성자의 모습으로 깊은 생각에 잠겨있다는, 제법 ..

문학비평 2021.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