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념의 종교, 나무
권영상
텃밭 토마토 곁가지를 따고, 김을 매주고 방에 들어왔습니다. 덥습니다. 물 한 컵을 들이켜고 숨을 돌리는데, 창가에 심어놓은 으름덩굴이 흔들거립니다. 그 사이 바람이 부는가 봅니다. 열어놓은 현관문이 두둑두둑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납니다. 커튼이 가벼이 흔들, 합니다. 열려있는 방문이 비긋이 움직입니다.
나는 창가 의자에 앉아 창밖을 내다봅니다. 건너편 산에서 쏴아쏴아 숲 흔들리는 소리가 이쪽으로 건너옵니다. 산이라 해 봐야 고추밭 건너에 있는 작은 언덕입니다. 그 언덕에 키 큰 참나무 숲이 있지요. 5월의 숲은 아직 초록보다는 연두에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아직 봄의 태가 남아있는 빛깔의 참나무들이 바람에 휩싸여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그렇게 부딪히며 내는 나무들의 소리가 마치 해조음처럼 낮으면서도 깊고 또 울림이 크게 날아옵니다.
여기, 내가 앉아 있는 집의 바람이란 어릿배기 바람입니다. 그저 커튼자락이 가볍게 흔들, 하고, 방문이 비긋, 움직일 뿐인데 건너편 숲의 바람은 다릅니다. 넘어질 듯 일시에 한쪽으로 휩쓸려 가다가는 관성이 좋은 너그러운 인품의 사람처럼 되돌아섭니다. 어찌 보면 나무들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산언덕이 통째 섬처럼 바다 위를 가고오고 하는 듯합니다. 물론 나도 거기에 올라타 무임승차의 즐거움을 누립니다.
나는 이것저것 일을 다 놓고 물끄러미 바람과 노는 참나무 숲을 봅니다.
숲 뒤쪽은 산비탈을 깎아 만든 크고 넓은 고구마 밭입니다. 그 너머는 논벌입니다. 그러니 산언덕 참나무 숲은 거기에서 겅중겅중 달려오는 바람과 직접 만나는 셈입니다. 그러니 이쪽은 고요한데도 나무숲은 아주 요란히 호들갑을 떱니다. 마치 산 구비를 돌다가 난데없이 폭포수를 만나는 듯, 어촌의 한 골목을 빠져나올 때 갑작스러이 격랑의 파도를 만나는 듯 숲의 아우성에 놀랄 때가 많습니다.
바람이 또 한 차례 불어오나 봅니다. 숲에서 조금 비켜난 참나무 두 그루가 흔들흔들 온몸을 좌우로 흔듭니다. 이웃나무와 서로 부비고, 부비다가는 물러서고, 물러서다간 다시 돌아오고, 돌아와선 다시 몸을 부비고, 춤을 추듯 한가하게 건들거립니다. 일신을 바람에 다 맡기고 자신은 자신 몸의 1할쯤이나 보일락 말락 지니고 있는 듯 합니다.
술 한 잔 걸친 기분좋은 사내의 다 풀어진 몸처럼 유연합니다. 살아온 몸을 세상에 다 준다해도 아무 후회할 것 없는 그런 걸음걸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 지켜오던 이념이고 도덕이고, 신의며 우정까지 다 벗어버린 모습입니다. 사내 중에서도 인생을 말할 줄 아는, 달관이라면 지나치겠지만 생의 비밀 정도는 알고 있는, 이만큼 살아져 있는 것만도 아름답게 여기는, 그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알만한 중년을 넘어선 사내를 닮아 있습니다. 화난다고 그 화를 맞받아칠 그런 나이가 아닙니다. 자신의 성질을 못 이겨 함부로 자신을 학대하는 그런 어리석음의 나이도 아닙니다. 안에 쌓인 화를 흔들흔들 자연에 맡기며 풀어내는 초연한 나이의 나무입니다.
몸 안에 욕심이 가득하다면 저렇게 꼭 할 일없는 사람처럼 바람을 따라 흔들릴 리 없겠지요. 나무도 한 때는 세류를 따라 줏대 없이 흔들리는 일을 하찮게 보았을 테지요. 그러나 지금은 그것조차도 다 안아 들여, 나의 것으로 녹여내는 성숙한 나무가 되어 있습니다. 제 발 아래에 놓인 사람 사는 세상을 조망하면서도 저러는 걸 보면 나무는 오랜 여행자의 모습 같기도 합니다. 그러지 않고야 저렇게 태평할 수 없습니다. 그 너머의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일렁이려면 일렁이고 멈추려면 또 멈추어 때로는 고요한 사색에 들어갑니다.
바람이 부는 오월에 창문을 열어놓고 숲을 보는 일만큼 행복한 일은 없습니다. 넋을 놓고 바라보는 순간만큼만은 일상을 잊을 수 있고, 촉박하게 흘러가는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그게 행복이지요.
그런데 나무가 거저 저렇게 되었을까요? 이 세상에 내려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혹독히 살면서 얻은 경험의 결과일 테지요. 덩치만 불리다가 고사한 나무도 보았을 테고, 키만 키우다가 강풍에 부러지는 나무들을 보았을 테지요. 어쭙잖은 신념과 오만 때문에 뿌리째 뽑혀 사라진 나무들도 보았을 테지요. 나무가 저럴 줄 아는 데는 다 그만한 과거를 나의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겠지요.
천둥과 모진 가뭄과 병고의 아픔만 견뎠겠나요. 봄밤의 외로움을 견디고, 별과 달과 보이지 않는 천체와 무수한 시간 동안을 대화했을 겁니다. 그리고 길고 오랜 묵상과 새들이 전해준 더 큰 세상의 길로 가는 예언자들의 이야기도 충분히 들었을 겁니다. 그것이 나무를 저렇게 만들었겠지요.
또 한 차례 바람이 붑니다.
흔들흔들, 나무들이 바람에 몸을 맡깁니다. 저것이 꼭 성자의 몸짓 같기도 하고, 일견 무념의 종교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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