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레박 4

비 내리는 날의 호박된장국

비 내리는 날의 호박된장국 권영상 하루 종일 비 온다. 이런 날은 뜨끈한 국물이 땡긴다. 저녁엔 호박된장국이 좋겠다. 생각난 김에 바구니를 들고 나간다. 파밭에서 실궂한 파 두 뿌리를 뽑아 다듬어 담고, 들깨 포기에서 연한 들깻잎 대여섯 장을 딴다. 손을 움직일 때마다 들깻잎 딴 손에서 화아한 들깻잎 냄새가 난다. 바구니를 들고 부추 이랑에 가 앉는다. 가위로 비를 맞고 있는 부추를 삼박삼박 자른다. 부추의 초록 향기가 속속 올라와 코 안을 자극한다. 아직 손도 대지 않았는데 엉덩이 뒤에 있는 당귀 이랑에서 당귀 냄새가 난다. 당귀는 꽃 보려고 올 봄 모종 열 뿌리를 사서 심었다. 근처에만 가도 설악산 천불동에서 마시던 당귀차 향이 난다. 두어 잎 따 담는다. 한약 같이 진한 당귀 향이 좋다. 길다란 작..

우물물이 좋으면 살구나무 살구꽃빛도 좋다

우물물이 좋으면 살구나무 살구꽃빛도 좋다 권영상 아직도 고향엔 우물이 있다. 우물턱이 허리께까지 오는 제법 근사한 원형 우물이다. 그 곁엔 석조 목간통이 있고, 우물을 빙 돌아가며 넓직하니 너래반석이 깔려있다. 그게 그대로 보존되는 것은 모두 큰댁 종조카의 우물에 대한 신념 때문이다. 고향 아랫말은 불과 여섯 집이 모여사는 집성촌이다. 처음 이 마을에 내려오신 할아버지는 마을앞 이 우물터 수맥을 보시고 여기에 아랫말을 세우셨을 테다. 그리고 우물에 기대어 자손을 이으셨겠다. 그러니 이 우물이야말로 아랫말이 지금껏 건재하는 생존의 근원이다. 아무리 상수도가 편하기로소니 할아버지들께서 만드신 우물을 묻어버려선 안 된다는 종조카의 신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우리가 어렸을 때의 우물은 신성한 곳이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