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놓치고 사는 것들
권 영 상
토요일이다.
토요일을 알고 화장실 세면대가 망가졌다. 아파트 나이가 십여 년쯤 되고 보니 집기들도 맥이 없다. 사람을 불렀다. 수리하는 분이 와 이것저것 둘러보더니 고치는 김에 현관문도 번호키로 바꾸라 한다. 손잡이 뭉치에 핀이 빠졌단다.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아내보다 내가 더 먼저 대답했다.
꼼꼼히 챙기지 못하는 내게 있어 열쇠키는 불편하다. 열쇠를 두고 출근해 집에 들어오지 못한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학교 일이 일찍 끝나는 날엔 꼭 열쇠를 잊고 나간다. 그럴 때면 아내가 퇴근할 때까지 어디서 기다려야 한다. 구두를 신은 채 동네 산에 올라가거나 골목 카페에 들어가 무료히 커피를 마신다. 그러면서도 나는 열쇠키를 바꾸지 못했다.
“이공계 남편과 사는 집은 얼마나 편리할까.”
아내는 그렇지 못한 내가 늘 불만이었다.
보수적으로 살아온 나는 바뀌는 세상에 빨리 적응하지 못한다. 남들 다 승용차를 가질 때도 나는 그 대열의 맨 후미에서 간신히 운전면허를 얻었다. 휴대폰도 그랬다. 나 때문에 주변사람들이 불편하다 불편하다 해도 나는 휴대폰을 사지 않았다. 휴대폰이나 승용차에 대한 특별한 저항감이 있어서가 아니다. 없어도 불편함을 모르기 때문이다. 내게는 불편한 대로 그냥 사는 그런 재능(?)이 있다. 그런 재능이 내게 풍부히 있다 해도 망가진 세면대를 그냥 둘 수 없고, 현관문 손잡이를 그냥 둘 수는 없었다.
바깥일을 보고 돌아오니 멋진 번호키가 달려 있고, 세면대도 번듯한 놈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내는 나를 데리고 문 여닫는 법을 알려주었다.
“이렇게 편하고 좋은 게 있다는 걸 여태 몰랐네!”
나는 소리쳤다.
그러고 보니 마주하고 사는 옆집이 창피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번호키 아닌 우리 집을 구식 집이라고 또 얼마나 비웃었을까. 나는 그길로 내 가방에 넣어다니던 집열쇠를 버렸다. 현대적인 것, 문명의 이기란 사람을 이토록 편하게 한다. 문을 열고 나가 닫으면 문은 저절로 잠겼고, 번호만 누르면 문은 또 저절로 열렸다. 예전 같으면 잠깐 운동을 하러 나가거나 볼일을 보러 갔다 들어올 때도 초인종을 누르거나 문을 두드려 사람을 불러냈다. 아내가 슈퍼에 가든가 은행일을 보러갈 때면 하던 일을 놓고 굳이 뒤따라 나가 문을 잠그어야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게 한방에 날아갔다.
근데 번호키가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내 방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하던 일을 놓고 "누구세요?" 하며 나갔다. 바깥에서 “나!” 하는 소리가 났다. 아내다. 문을 열어주자 아내가 들어왔다.
“왜 번호키를 두고 초인종을 눌렀어?”
내가 물었다.
“당신이 나를 맞아주기를 바라서.”
아내가 대답하며 웃었다.
맞았다.
번호키가 아닐 때 우리는 주로 이런 식으로 살았다. 식구 중에 누가 집으로 돌아오면 문을 열어주기 위해서라도 현관에 나가 이제 오느냐며 인사를 하며 맞았다. 누가 나갈 때도 문을 잠그기 위해 집을 나서는 이의 뒷모습을 내다보았다. 그런데 번호키로 바꾼지 일 주일만에 우리는 이런 문화의 결핍을 번호키에서 느끼기 시작했다. 현관문 여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앉은 자리에서 “가냐?” “오냐?” 하는 인사가 편하긴 하지만 사는 재미는 아닌 듯했다.
열쇠 없이 출근한 날, 아내가 퇴근할 때까지 아파트 벤치에 앉아 책을 읽으며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 열쇠를 받으러 아내의 학교로 찾아가던 때도 있었다.
이제는 그런 일들마저 다 잃게 됐다. 편리를 위해 그 좋은 것들을 이렇게 놓치며 산다. 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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