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가을볕에 숯을 말리다

권영상 2012. 6. 21. 13:46

가을볕에 숯을 말리다

                                       권 영 상

 

 

처럼만에 가을볕이 난다.

하늘이 목마르게 파랗다. 창을 열어 축축한 방안 공기를 뺀다. 이렇게 빛나는 일요일, 책상 밑에 놓아둔 숯상자를 꺼낸다. 요 몇 년 전에 사다둔 것인데 그걸 볕에 좀 내놓아야지, 했었다. 숯 상자를 움찔해 본다. 상자가 커서 그런지 여간 무겁지 않다.

 

그래도 그 일은 내가 해야한다. 간신히 안고 아파트 놀이터에 나갔다. 놀이터 조용한 귀에 가져간 신문을 폈다. 그리고는 그 위에 참숯도막을 쪽 고르게 줄을 맞추어 뉘였다.

“아하, 귀한 숯이네.”

지나가는 할머니 한분이 아는 체를 해주신다.

“이 볕에 장독을 열어 두면 좋을 텐데......”

 

불현 지나간 오래 전의 일이 떠오르시는 모양이다. 잃어버린 세월을 건너다보려는 듯 걸어오신 저쪽 방향을 뒤돌아보다가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신다. 할머니가 사셨던 먼 세월의 언저리를 나도 떠올릴 수 있다. 고향 어머니도 오늘처럼 볕 좋은 날이면 뒤란 장독대의 장독뚜껑을 열고 눈이 가는 천으로 아구리를 팽팽히 덮던 때가 있었다.

 

신문 위에 검정 숯을 가득히 널어놓고 이쯤 떨어져서 바라보니 아름답다. 이 가을에 흰색과 검정색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없다. 아파트 나무 울타리 사이로 소소소소 불어오는 마른 바람 탓에 숯이 탁탁 터진다. 바작바작 쏟아지는 따가운 볕과 볼볼볼 기어가는 바람이 숯을 더 강한 숯이게 해주는 모양이다. 숯도 오래 쓰면 그 효능이 떨어지는 데 그 효과를 재생시키려면 햇볕에 말리는 게 좋다고들 한다. 숯 주위를 어슬렁거려 본다. 사나운 계집아이처럼 가을볕이 목덜미를 꼬집어댄다.

 

나는 다시 집에 들어가 책을 들고 나왔다.

놀이터 등나무 벤치에 가 앉았다. 나무 그늘은 역시 그늘답다. 촉촉한 초록 그늘이라 들어서니 짧은 바짓단에 내놓은 허벅지며 종아리가 서늘하다. 저쯤 혼자 마르고 있는 숯을 두고 책을 폈다. 방안에 둔 책인데도 바깥에 나오니 느낌 탓인지 손 끝에 물빛 냄새가 돈다. 아, 예전 선비들은 장마 끝이면 눅은 서책을 모두 들고 나와 볕에 말렸다던 말이 생각난다. 그분들에게 있어 책은 목숨 만큼 귀한 것이었을 테니, 하루 공부를 접더라도 책 말리는 일이 소중했겠다. 근데 나는 부끄럽게도 책 대신 숯을 들고 나왔다.

 

초록빛 그림자 위에 책을 펴고 글을 읽는다.

엊저녁부터 읽던 차 향기 나는 중국 수필집이다. 볕이 뽀송뽀송 나는 이런 날엔 오래 앉아 있기 힘들다. 책을 간간히 서너 줄씩 읽다 놓았다 하는 게 좋지 싶다. 나이를 먹으면 힘을 들여 책을 읽기보다 시간을 들여 책을 읽게 된다. 몇 줄 읽고 잠시 쉬는 그 생각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다.

 

 이 나이엔 뭐든 허겁지겁 받아들일 수 없다. 느긋이 시간을 들여가며 무슨 일을 해도 해야한다. 등나무 잎 사이로 막혔던 볕이 툭, 터져 나온다. 엉덩이를 들썩하여 옆으로 옮겨 앉는다.

  

“점심 먹어요.”

한참을 책을 읽는데 아내가 일부러 마당까지 나왔다. 널어놓은 숯을 한번 쓰윽 보더니 얼른! 하고는 돌아들어간다. 나는 책을 두고 일어나 차례차례 숯을 뒤집었다. 그러고는 아내 뒤를 따라 성큼성큼 눈부신 빛속을 건넜다. 집에 들어오니 사방 문을 다 열어 통바람이 부는데, 식탁에 잘 만든 국수 두 그릇이 놓여있다. 아내와 나의 것이다.★